[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학병원 근무 시절, 응급실 동료 간호사 선생님들은 종종 나를 ‘소설가’ 라 불렀다. 다급한 증상을 처치하기 위해 해당 증상의 경과, 과거력, 동반 질환 등을 간결하게 파악하고 빠르게 적절한 의학적 처치를 시행하는 장소가 응급실이다. 정신과의 경우에도 물론 자살이나 자해 등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에 대해 다급한 신체적 조치를 하는 것이 선행되겠지만, 이후 환자의 인생 전체 이야기를 청취하고 또 이를 기록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추가된다.아무리 평범한 삶이라도 몇십 년이 쌓이면 그 분량이
* 환자로서의 삶 (1) 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던 4월 중순이었다. 토요일 오전의 병원은 카페처럼 밝고 아늑했지만, 내 불안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심장은 단거리 경기를 뛴 선수처럼 펄떡거렸고, 긴장감으로 몸은 덜덜 떨렸다. 결국에는 기절 직전의 상황까지 마주했지만, 지척에 의사가 있으니 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겨우 대기시간을 버텼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의 기다림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우울증 상태에서 반복되는 자조와 자기비난은 끔찍하다. 비난과 자조가 순식간에 오가는데 이는 서로에게 쉼 없이 서브를 주고받으며 공격 기회만 엿보는 탁구게임처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이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난한다. 비난 속에는 좌절감, 무력감, 우울함, 분노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있고, 그런 모든 감정이 한 번에 올라오는 때면 뇌는 마치 불을 지른 것처럼 화를 내며 날뛴다.실제로 불을 질러 보면 이게 나아질까 싶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회사가 강남대로에 있던 때였는
[정신의학신문 : 이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세일즈맨인 K 씨는 평소 건강한 편이었습니다. 다만, 업무량이 상당히 많아 늘 피곤했고 밤늦게까지 회식과 접대가 있었기 때문에 수면이 불규칙적이었고, 때때로 과음과 흡연으로 인한 몸의 부담을 느꼈습니다. K 씨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이러한 생활패턴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운전하고 가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장 부근에 통증도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일요일(2019년 10월 27일)에 대한정서인지행동의학회에 오랜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아침 세션에서 ‘다윈주의와 정신의학’이라는 주제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달여 전부터 스케줄에 기입을 해두었습니다.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빠질 수가 없었죠. 세션이 끝나고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갔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진화론에서는 동성애와 최근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고 있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연자이신 박한선 선생님께서 답변을 잘 해주셨지만, 추가로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박준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 아이는 ADHD는 아닌데요. 혹시 ADHD 치료제를 먹으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자녀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공부를 잘하게만 할 수 있다면 값비싼 보양식이나 약도 마다하지 않는 높은 교육열이 존재한다. 이런 부모들에게 'ADHD 치료제가 ADHD 아동의 집중력을 좋아지게 한다면, 정상 아동의 집중력도 더 좋아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김선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생활습관도 두통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두통을 더 악화시키는 생활습관은 어떤 게 있을까요?A. 우선은 불규칙한 식사습관, 수면 습관이 영향을 줄 수 있고요. 그리고 과도한 카페인 복용, 운동 부족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그러면 두통을 조절할 수 있는 좋은 생활습관이 있을까요?A. 우선 규칙적인 식사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혈당이 떨어졌을 때 두통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식사나 간식을 규칙적으로 복용함으로써 두통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4시간 이상
[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환자들에게 상실에 대한 애도반응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천천히, 그리고 사려 깊게’라고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한 사람의 일을 언론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유명인 혹은 연예인으로 지칭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배려라고 여깁니다.제 의견이나 글을 쓰지 않고 조용히 애도하는 것이 그녀와 유가족에 대한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했기에 ‘연예인 자살’이니 ‘아이돌 우울증’ 같은 자극적인 주제의 칼럼과 인터뷰는 송구스럽게도 대부분 거절한 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
[정신의학신문 :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설리 씨가 떠난 후의 풍경은 슬프게도 최진실 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와 유사하다. 악플로 고통받던 유명 스타와, 악플이 그들을 어떻게 괴롭혔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최진실 씨가 세상을 떠난 것은 2008년. 11년이 지났다. 악플러들이 달라지지 않은 만큼, 우리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11년 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레 악플에 대한 비판 또한 사그라들어갔다.악플들은 분명 두 사람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많은 경우 악플들은
[정신의학신문 : 이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에 어떤 음식이 도움될까요?"정신과 의사로 30여 년 진료실에서 보내면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인데 시간에 쫓기면서 가볍게 대답하고 넘어가는 적이 많습니다. 막상 이런 질문을 접하고 생각해보면 의과대학과 수련 과정에서 우리는 별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개업하고 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대학서 배우지 못한 질병, 증상, 환자들을 만납니다. 우스갯소리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막 전문의가 된 동료들의 공통된 푸념은 교과서에서 배운 질병만 보면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정신의학신문 : 김영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우리는 누구나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는 건강한 인성을 만들어주고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적절한 칭찬은 아이들의 지능과 정서발달에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과제라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신감을 높여줍니다. 새로운 모험에 도전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유아기의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칭찬은 부모와 긍정적인 유대감과 애착형성에
[정신의학신문 :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료를 통해 우울증은 회복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질환들처럼, 치료가 곧 완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울 증상은 재발할 수 있다. 재발이란 우울증 증상이 사라지고 적어도 4개월이 지난 후 다시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재발은 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모든 사람의 50%가량은 여생 중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우울증 기간을 다시 겪는다고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우울증 유지 치료 종료 시점을 신중하게 잡아야 한다. 우울증은 한 번 걸린 사람이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8, 19일 “전환의 시대, 마음과 뇌”라는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했다. 총 40개의 역대 최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번 학술대회에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성 소수자 진료 관련 이슈들”에 관한 심포지엄은 이른 시간에 시작됐음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에 비해 정신의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기조를 보여 왔으며, 이는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적
[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비만클리닉을 처음 시작한 때는 2001년. 다이어트가 평생이라고 하는 분들과 울고 웃으면서 지냈었다. 비만클리닉을 오는 분들은 3세부터 88세까지 다양하다. 소아비만,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중고생들, 외모에 가장 민감한 여대생, 살찌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식이장애 여성들, 지친 일상에 허덕이다가 술과 폭식으로 버티는 직장인, 출산 후 산후 비만으로 우울해진 엄마들, 사춘기 자녀와 전쟁을 치르는 갱년기 여성들, 빈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육십 대 어머님들, '이 나이
[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김선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머리가 아프면 약부터 먹는데, 약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자주 먹어도 되나?’ 걱정이 되기도 해요. 약을 자주 먹어도 되나요? A. 그 질문이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 거 같아요. 머리가 자주 아프신 분들은 ‘아플 때마다 먹어도 되는지’ 이런 것들을 자주 물어보시는데, 필요하다면 아플 때마다 드셔도 됩니다. 다만 주의하셔야 할 점은, 남용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두통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의존성이나 내성이 생기는 일부 약물도 있기 때문에 약에 따라서는
[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보통의 사고와 이해 범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캐릭터의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사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은 어느 정도, 얼마만큼 힘들겠다는 계산이 서는 범위에 있지만, 사람으로 인한 황당함과 분노는 도저히 예측하기 힘든 것이라 이직이나 퇴사를 결정케 하는 중요한 트리거가 되기도 한다.‘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만큼 성격이나 행동이 이상한데도, 버젓이 직장에 잘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는 불안, 슬픔, 화 등의 부정적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간다.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슬픔에 공감하고 일상생활을 해나가도록 돕지만 사건 자체를 바로잡지는 못한다. 일상이 무너진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듣기’다. 자신이 무엇으로 인해 힘든지 본인도 모르니 함께 찾아가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이런 ‘듣기’ 기술은 일대일 상황이 아닐 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필자는 4년
[정신의학신문 :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하정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 이름을 죄다 알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얼굴을 봐도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갑자기. 현관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나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최근 기억력 저하로 병원을 찾는 환자분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기억력 저하가 치매로 진행되지 않을까 걱정하시면서, 지금부터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에 지금부터 실천에 옮기시면 좋은 간단한 세 가지 원칙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나이가 들면서 뇌가 노
앤드류 솔로몬은 그의 저서 한낮의 우울(The Noonday Demon)에서 자살에 대해 ‘그릇된 힘과 불행한 용기’의 결과라고 썼다. 그릇되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본능 중에 제일인 생의 의지에 반하는 그릇됨이라는 것일 테다.한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만큼 커다란 불행이 있을까? 자살을 시도하고 자살에 도달하기까지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외로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래서 자살은 보통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엄청난 용기가 스스로를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이루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송지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너 아직 안 일어났니? 또 지각이야!""동생이랑 그만 좀 싸워!""너, 그게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아침마다 반복되는 잔소리와 전쟁, 형제나 친구와의 잦은 말다툼이나 갈등, 부모에 대한 버릇없는 말투와 반항, 오후에 스마트폰만 붙잡고 늘어져서 숙제를 밤늦게까지 미루는 행동이 나아질 수 있을까? 예전에 꽤 시청률이 높았던 “우리 **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전문의 선생님이 나와서 부모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코칭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