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일요일(2019년 10월 27일)에 대한정서인지행동의학회에 오랜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아침 세션에서 ‘다윈주의와 정신의학’이라는 주제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달여 전부터 스케줄에 기입을 해두었습니다.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빠질 수가 없었죠. 세션이 끝나고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갔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진화론에서는 동성애와 최근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고 있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연자이신 박한선 선생님께서 답변을 잘 해주셨지만, 추가로 제 생각이 있어 오늘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질문하신 부분들이 진화론에서 아주 큰 맹점으로 자리하고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진화론에서 ‘종족 번식’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는 자손 생산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인류에도 여전히 그러한 유전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설명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진화심리학에서도 관련하여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아직 합의된 이론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최근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현상’은 또 다른 문제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 유전적인 성향이 있지만, ‘아이를 적게 낳아야지 하는 마음’은 선천적인 요소보다는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영향받는 마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현상은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이를 보면 즐겁고 좋은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회에 자리 잡는 시간이 점점 늦춰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에 따라 결혼도 늦춰지고, 자연히 출산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입니다. 또한, 경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에 따라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래서 예전처럼 많은 자식을 낳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분명 우리의 마음은 몇 십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마음, 그로 인해 성관계를 가지게 되고, 임신이 되고, 출산이 되는 이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식을 통해 느끼는 기쁨, 반대급부로 자식을 키우면서 힘든 마음, 이 두 가지 마음도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이라고 자식 키우는데 힘들지 않았을까요? 똑같습니다. 더 힘들면 더 힘들었지, 덜 힘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야생 환경에서 인간 자손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자손 생산’과 연관되어 있는 마음은 ‘진화 압력’이 무척이나 크기 때문에 잘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출산율이 1명도 채 되지 않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화심리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Time lag’라는 현상인데요. 말 그대로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고칼로리 음식에 끌리는 이유인데요. 우리는 성인병의 주범이고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대표적 적인 고칼로리 음식에 왜 끌릴까요? 수명을 단축시키면서까지요. 종족 보존, 유전자 보존에 맞지가 않지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칼로리 음식에 끌리는 마음은 종족 보존, 유전자 보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탑재된 것입니다.

몇 백만 년 전 우리 조상의 입장에서 한 번 보지요. 그 시절에는 식량이 무척이나 부족했습니다. 굶어 죽는 일도 다반사였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 조상이 고칼로리 음식을 만났을 때, ‘아~ 이건 성인병의 원인이니까 많이 먹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 조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대로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지 했던 조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후자가 많이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조상이 자손을 남겨 우리가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고칼로리 음식에 끌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분명 적응적인 마음이었으나, 현재는 부적응적인 마음이 된 것입니다. 시간차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갑자기 먹을 것이 풍족한 환경으로 바뀌었거든요. 몇 백만 년의 진화 역사에서 백 년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먹을 것이 풍족한 환경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지요.

 

출생률이 떨어진 것도 똑같은 ‘Time lag’ 현상입니다. 성욕은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강력합니다. 과거에는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자손 생산을 이루어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피임법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성욕은 자손생산과 바로 연결되는 커다란 마음의 힘으로 몇 백만 년 동안 잘 작동을 했었죠. 그런데 최근 역사에서 피임법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어설픈 피임법까지 포함을 하면 그 역사가 몇 천 년이 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피임법은 그 역사가 몇 백 년 밖에 되지가 않습니다. 몇 천 년으로 보든, 몇 백 년으로 보든 몇 백만 년이라는 기간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수치에 불과합니다. 앞 설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은 피임법이 잘 갖추어진 환경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Time lag’ 현상이지요. 유전자로 인한 진화 속도는 무척이나 더디기에 이 ‘Time lag’ 현상은 우리 삶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을 이해하는데 이 부분은 아주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혹시 이쯤에서 ‘출생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피임법을 없애야 하는구나.’로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과학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가치 판단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냥 사실을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 사실과 가치를 구별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진화 심리학이 많은 오해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도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거든요. 진화 심리학을 잘못 이해해서 우생학으로 빠지는 것도 사실과 가치를 혼동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에서는 남녀의 심리 차이도 많이 설명(사실)을 하고 있는데, 이를 남녀 차별(가치판단)로 오해를 해서 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사실과 가치는 분명 구별해야 할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윈주의와 정신의학’ 세션이 끝나고 연자이신 박한선 선생님과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박한선 선생님께서 외롭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 마음을 저도 오랫동안 느껴왔던지라, 크게 공감이 되었었습니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많은 사람들과 시원하게 진화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도 외롭네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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