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에 어떤 음식이 도움될까요?"

정신과 의사로 30여 년 진료실에서 보내면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인데 시간에 쫓기면서 가볍게 대답하고 넘어가는 적이 많습니다. 막상 이런 질문을 접하고 생각해보면 의과대학과 수련 과정에서 우리는 별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개업하고 진료실에 앉아 있다 보면 대학서 배우지 못한 질병, 증상, 환자들을 만납니다. 우스갯소리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막 전문의가 된 동료들의 공통된 푸념은 교과서에서 배운 질병만 보면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교과서는 그저 전형적인 질병을 설명할 뿐, 현실에서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질병과 질환, 증상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결국, 무지와 의문에서 출발해서 환자들을 통해 배우고, 환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책과 외국 저널 등을 찾아보면서 실제 경험 있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과 정신질환의 관련성도 그런 부분 중 하나입니다. 고민을 통해 정신의학과 영양학, 정신질환과 음식, 음식과 심리학 등 외국 문헌을 찾게 되고 환자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그렇게 다시 공부하게 됩니다. 정신의학에서 음식은 대부분 비만과 관련한 이슈, 약물의 부작용이나 음식과 약물의 상호작용 등에 대한 것이 더 많습니다. 우울증이나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음식, 해가 되는 음식에 대한 것은 환자분들에게는 아주 실용적인 정보임에도 이제야 관심이 생기고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 아직 논쟁이 있는 부분이긴 해도 음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거나, 반대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영양 불균형을 결과적으로 초래한다고 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말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운동이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에 아주 좋은 효과가 있듯이, 음식도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생활에서 작은 변화를 통해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어 제 경우에는 진료실에서 이런 토론을 자주 하고 환자분들에게 종종 의견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선 현대인들은 높은 스트레스를 빠르게 해소하는 방식으로 커피, 설탕 등 당분이 높은 음식, 고지방의 음식 등을 자주 찾고 있습니다. 이런 음식은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감, 집중력의 감퇴, 짜증, 권태 등 심리적 증상을 아주 빠르게 교정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편의점의 초코바 등이 잘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다만 이런 효과는 아주 일시적이고 중독적이며 장기적으로는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비만은 물론이고 이런 음식이 몸의 면역체계에 영향을 주어 염증 반응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염증 반응은 노화는 물론 우울 증상과도 연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움이 되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사진_픽사베이

 

첫째는 세로토닌이라고 하는 기분과 관련된 뇌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도움이 되는 음식들입니다. 흔히 트립토판이라고 하는 아미노산이 세로토닌의 원재료이니 이런 물질이 많은 음식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캐슈너트나 땅콩, 호두 같은 견과류와 호박씨 등 식물의 씨앗 종류, 통밀 같은 곡류입니다. 따라서 빵이 식생활에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면 정제된 밀가루를 사용한 당분이 높은 빵보다는 견과류 등이 들어간 통밀빵이 좋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장내 미생물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 등이 요즘 너무 유행하고 광고가 많아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장의 건강이 뇌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실제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유산균 등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유지하는 것은 소화 기능뿐 아니라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인에겐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을 통해 섭취할 수 있으나, 이를 통해 충분한 양을 섭취하려면 다량의 염분 섭취가 문제가 되므로 덜 짠 채소 발효음식, 요구르트 등의 음식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음료수 문제입니다. 충분한 물을 섭취하는 것은 탈수나 수분 부족 상태에서 느끼는 짜증, 예민함, 피로감 등을 예방하기 위해 제일 중요합니다. 이런 증상은 우울증의 증상과 많이 겹치는 증상들입니다. 커피는 여러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 본인의 체질이 카페인에 예민한 분이라면 과도한 커피 섭취가 심박동을 증가시키고 수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루 몇 잔의 맛있는 커피는 집중력을 증가시키고 활력을 주며, 심리적으로 잠시 이완시키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음주는 이득보다는 해가 훨씬 많은 음식으로 특히 우울증 환자에게는 처음에는 수면에 도움을 주는 듯해서 조금씩 시작하다가 중독상태가 될 수 있어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환자에서 대부분의 비극적인 자살은 음주와 관련이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울증 등 정신과 질병에서 약물치료와 심리상담 등 두 축의 중요한 치료 방법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운동, 원예 등과 같은 비약물적 치료 방법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효과가 있다고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더해 매일매일 식습관에서도 작은 변화를 준다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예방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진료실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음식 얘기도 편하게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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