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로서의 삶 (1) 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던 4월 중순이었다. 토요일 오전의 병원은 카페처럼 밝고 아늑했지만, 내 불안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심장은 단거리 경기를 뛴 선수처럼 펄떡거렸고, 긴장감으로 몸은 덜덜 떨렸다. 결국에는 기절 직전의 상황까지 마주했지만, 지척에 의사가 있으니 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겨우 대기시간을 버텼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의 기다림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입술은 달달 떨렸고,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목소리를 끄집어낸 나는 현재 겪고 있는 증상들과 최근에 가장 힘들었던 사건을 간략하게 말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겠어요."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엄마조차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네가 아프면 세상 사람 중 약 안 먹을 사람 없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며 내 절규를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었다. 입을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정말 잘 해오셨는데........ 혼자 너무 힘들게 하셨어요. 이젠 제가 도와드릴게요. 약을 먹으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근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약은 오래 드셔야 해요."

"네? 제가 약을 꼭 먹어야 하나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만 여전히 정신질환이 생겨 약을 먹는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 나에게 약을 오래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설득에 희망을 품고 약을 처방받기로 결정했다.

약을 먹은 지 하루 만에 공황발작은 잦아들었고, 초조와 불안에서 벗어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울은 여전했지만, 자극에도 덜 민감하고 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약을 먹을 가치는 충분했다. 내가 이렇게 약발이 좋을 줄 몰랐기 때문에 더 허무했다. 진작 치료를 받았다면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한다는 것과 아픈데도 치료를 받지 않고 버티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둘의 차이점을 잘 몰라서, 그 힘든 걸 죽기 직전까지 버텨냈다. 억울하고 스스로가 밉고 싫었다.

 

사진_픽사베이

 

하지만 나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환자들이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길 바란다. 비난은 치료에 도움을 주지도, 미래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하면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누군가나 치료자의 말도 비난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치료를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비난이라는 심리적 자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 스스로도 종종 나를 비난하기에 이걸 그만두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같이 내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치료를 받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과거의 나와 달리,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치료를 열심히 받는 나를 좋아하려 노력한다. 때로는 이 시간과 돈을 들여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도 완치를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싫지만, 적어도 이전에 느끼던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 기뻐한다. 내일이 되면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에게 영원한 안녕을 고하며 병원에 오지 않는 것을 꿈꾸겠지만, 어쨌든 오늘 밤은 약을 먹고 깊이 잘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한다. 그리고 용감하게 치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치료를 이어나가고 있는 내가 누구보다 멋지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내 정신건강을 함께 고민해주고 나에게 맞는 약을 처방해 줄 치료자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치료받기를 결심한 이상 내 미래는 과거와 달리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내가 평생 이렇게 고통받다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슬프고, 이렇게 화가 난 상태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할 거라 생각했다. 정확한 때와 방법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서른 살이 되기 전 어느 날에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죽을 거라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계획을 수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른 살 생일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기대해 보기도 하고, 마흔 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내 치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내 병이 완치될지 다시 재발할지는 알 수 없다. 반년 이상 치료를 받으며 좋았던 때가 있었으면 나쁠 때도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 치료의 과정은 ‘기대했다, 좋았다, 짜증 났다, 실망했다.’의 반복이었으니 좋은 때가 있으면 분명 나쁠 때도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분명 달라졌다. 죽음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시간보다는,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은 시간보다는, 기쁘게 삶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삶에 집중할수록 내가 우울과 불안, 고통에서 멀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자라난다. 약을 빼놓지 않고 먹었던 건 아마 나 스스로가 몸소 변화를 인지하고 있어서일 거다. 나는 여전히 나지만, 이전과 달리 나에겐 힘이 생겼다. 나로 하여금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게 하는 힘, 조금은 낯선 이 변화를 통해 나는 새롭게 성장하고 있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