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너무 더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도 개미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식량을 많이 모아 둬야 했기 때문입니다. 땡볕 아래 일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개미들은 꾹 참고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베짱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흥얼거리며 놀기만 했습니다.

  “어이, 개미들. 한여름에 그게 무슨 고생이야? 나처럼 쉬엄쉬엄 놀면서 하라고.”

  베짱이는 개미들을 보며 놀려 댔습니다. 그러면서 종일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개미들은 여전히 바쁘게 일했습니다. 곧 추운 겨울이 닥칠 걸 알았으니까요. 그러나 베짱이는 변함없이 노래하며 노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베짱이야, 너도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해야지. 머지않아 추위가 다가올 거야.”

  개미들은 베짱이에게 충고했지만, 베짱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난 지금 놀기에도 바쁘다고!”

  마침내 추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습니다. 밖에서는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뜻한 집 안에서 모아둔 양식을 먹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짱이에게는 따뜻한 집도 모아 둔 양식도 없었죠. 먹을 것을 찾아 헤맸지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굶어 죽을 지경이 된 베짱이가 개미집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개미야, 내가 너무 춥고 배가 고프다. 먹을 것 좀 줄 수 있겠니?”

  개미들이 문을 열고 초라한 행색으로 떨며 서 있는 베짱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너는 왜 여름에 양식을 모아 놓지 않은 거야?”

  베짱이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온종일 노래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어.”

  그 말을 들은 개미들이 베짱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여름에는 노래를 불렀으니 겨울에는 춤이나 추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결국 베짱이는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진_ https://www.youtube.com/watch?v=7ktGgfcijZw 캡쳐 화면
사진_ https://www.youtube.com/watch?v=7ktGgfcijZw 캡쳐 화면

  이 우화의 원제는 ‘매미와 개미들’입니다. 베짱이 대신 매미가 등장합니다. 터키어로 매미와 베짱이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오역된 거라는 설이 있고, 매미는 지중해 기후인 그리스에서는 서식하지만, 유럽 북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곤충이라서 그리스에서 알프스 북부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흔한 곤충인 여치로 번역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우화 덕분에 베짱이는 일 안 하고 게으른 곤충의 대명사가 되었고, 개미는 근면하고 성실한 곤충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로부터 베짱이처럼 살면 굶어 죽기 딱 좋으므로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저축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베짱이는 밤새도록 베, 즉 삼으로 짠 천을 만드는 부지런한 벌레로 여겨졌습니다. 베짱이 울음소리는 베를 짜는 베틀이 움직이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직조충(織造蟲)’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베짱이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성충 시기를 보내다가 알 상태로 월동하는 곤충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수명이 다 되어 생을 마감하는 것이죠. 그러니 베짱이가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개미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성립하기 힘듭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개미에게 먹이를 구하러 간 게 아니라 개미를 사냥하러 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베짱이는 주로 다른 곤충을 먹고 사는 육식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베짱이로서는 자신이 일은 안 하고 노래만 부르는 게으름뱅이로 묘사된 데 대해 상당히 억울할 수 있습니다. 개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건 일개미일 뿐, 여왕개미는 편히 누워 일하지 않고 놀고먹으니까요.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방대한 그의 책 제5권 매미 연구 편에서 이솝 우화 가운데 매미가 베짱이로 와전된 부분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한 원문에서 매미가 먹지도 못하는 곡식이나 죽은 벌레를 구걸하는 것은 오류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매미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까지 밝혀 두었습니다. 베짱이로서는 둘도 없는 지원군을 만난 셈입니다.

  배경이나 생태에 관한 논란 외에도 이 우화만큼 무수한 비판을 받으며 각기 다른 버전이 등장한 우화도 없을 겁니다. 열심히 일만 하며 살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되고, 개성에 따라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면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된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건 맹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먹을 것을 달라고 찾아온 베짱이를 야멸차게 쫓아냄으로써 마침내 굶어 죽게 된다는 결말은 권선징악을 넘어 너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는 것이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현실에 더 충실하며 지금을 행복하게 보낼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지 사회적으로 강요할 사항은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원작자인 이솝이 아닌 다른 작가들은 이 우화를 어떤 방식으로 패러디했을까요?

  장편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천재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거꾸로 읽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여기서 개미와 베짱이의 모습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식품점에서 일하는 개미는 겨우내 먹을 것을 들여옵니다. 그렇지만 여름이 되도록 오랫동안 음식이 팔리지 않습니다. 급기야 모아둔 음식에 파리와 벌레가 모여들죠. 개미는 한 가지 꾀를 냅니다. 베짱이를 찾아가 겨울을 대비해 미리 음식을 사 두라고 제안한 겁니다.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사실 개미는 초조하기 짝이 없습니다. 반면에 베짱이는 느긋합니다. 

  시큰둥한 베짱이의 태도에 실망한 개미는 빌려줄 테니 음식을 들여놓으라고 강권합니다.

  “먹을 것을 빌려 드릴게요. 빌린 음식은 이자를 쳐서 가을 즈음에 주시면 돼요.”

  그런데도 베짱이는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개미에게 되묻습니다.

  “겨우내 뭘 하신 건가요?”

  개미는 자신이 얼마나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먹을 것을 모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대단하네요. 그럼 이제 싸게 팔면 되겠군요.”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대꾸한 베짱이는 여전히 춤추며 노래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베짱이의 통쾌한 복수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요?”

  내게 주어진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가 아니면, 오늘은 다소 불편하고 힘겹더라도 내일을 준비하며 사는 게 좋은가 하는 질문이죠. 답은 각자의 몫이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은 지금의 행복을 택한 것 같습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외쳤던 그녀니까요. 그녀에게 베짱이는 자족하면서 현재의 삶을 즐기는,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주인공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폴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한 소설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은 『개미와 베짱이』라는 단편소설을 남겼습니다. 작품에는 두 형제가 등장합니다. 동생 톰은 전형적인 베짱이입니다. 20대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평생을 방황과 탕진 속에 보냅니다. 이에 반해 형 조지는 착실하기 이를 데 없는 개미입니다. 형은 동생 빚을 대신 갚아 주는 일을 하느라 등골이 휩니다. 2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중년이 된 형 조지가 동생 톰에게 말합니다. 

  “나는 평생 3분의 1을 저축하며 살았다. 50세가 되면 3,000파운드가 모인다. 빈털터리 톰은 그때야 알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빈둥빈둥 노는 것 중 어느 게 정말 이득인지.”

  그러나 현실은 조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동생 톰이 자기 어머니뻘 되는 귀부인과 재혼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사망한 것입니다. 그녀가 남긴 재산은 엄청났습니다. 무려 50만 파운드의 현금과 호화로운 요트 한 척과 런던에 있는 커다란 저택 등……. 횡재한 톰은 졸지에 갑부가 됐습니다. 형 조지의 분노와 함께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건 공평치 못해. 공평치 않단 말이야, 제기랄.”

  조지는 동생 뒤치다꺼리를 하며 성실하게 돈을 모아 3,000파운드를 마련했지만, 사고뭉치로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톰은 본인의 노력과 전혀 무관하게 형이 모은 돈의 수백 배가 넘는 일확천금을 거머쥐었습니다. 부지런한 개미의 일생이 게으른 베짱이의 홈런 한 방으로 한순간에 역전된 것입니다. 조지의 절규는 어쩌면 평범한 모든 개미의 절규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서머싯 몸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노력한 만큼 공평하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행복일까요? 인생이 노력의 대가라면 그 결과에 모든 사람이 만족할까요?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톰이 될 수도 있고, 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솝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비교할 수조차 없이 달라졌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 대한 해석도 바뀌었죠. 개미가 인생의 모델이고, 베짱이가 경계의 대상이던 시절은 흘러갔습니다. 지금은 개성 있고 삶을 즐길 줄 아는 베짱이가 더 인기를 끕니다. 개미처럼 밤낮없이 일만 하는 ‘일 중독자(A Workaholic)’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으로 점점 도태되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기 쉽습니다. 번아웃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어느 날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개미처럼 일에 푹 빠져 살던 사람이 갑자기 나가떨어지는 것이죠.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며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따라 하루하루를 즐기는 삶, 즉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현재에 모든 걸 소진하며 사는 것도 위험하고, 행복은 전부 내일로 미뤄 놓고 현재는 괴로운 게 당연하다며 참기만 하는 것도 위태롭습니다. 균형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건 바람직스러운 일이지만,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 대해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불안(Anxiety)과 걱정(Concern)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과도한 불안과 걱정은 정신질환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정답은 개미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베짱이에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할 때는 개미처럼 일하고, 놀 때는 베짱이처럼 노는 것, 미래를 위해 희망을 품고 준비하되 현재 주어진 하루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려 애쓰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삶 아닐까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일 겁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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