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많은 분들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반면 세상에 급할 일이 뭐가 있냐는 듯 유유자적, 천하태평인 분들도 있죠. 어떤 분들은 내일의 영광을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고, 또 어떤 분들은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양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그리고 하루는 대체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일과의 많은 시간들은 주로 자고, 먹고, 일하는 시간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그 일과의 틈 사이는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를 즐기거나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간은 항상 현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어떤 기억은 수십 번, 수백 번 머릿속에서 플래시백flashback 되며, 우리의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또 어떤 시간은 미래에 닥쳐올지 모를 불운을 걱정하거나 희망 찬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할애하기도 하죠.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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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각 시점을 대하는 마음과 인식하는 방식을 가리켜 ‘시간 조망time perspective’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 조망이란 용어는 개인이 특정 시간대에 자기 마음을 얼마나 쏟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시간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 기억과 같은 여러 심리학적 견해에 근거해 시간 조망 유형을 1) 과거 부정, 2) 과거 긍정, 3) 현재 쾌락, 4) 현재 숙명, 5) 미래 지향 등 다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과거의 시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면, ‘과거 부정’ 시간 조망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실제로 힘든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사건도 부정적인 관점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 시간 조망이 높은 사람은 실수에 민감하고 신중한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안 좋은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은 ‘과거 긍정’ 시간 조망을 가진 사람에 속합니다. 이러한 분들은 과거 경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좋았던 추억을 쉽게 떠올리는 반면, 변화에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과거나 미래보다 당장의 즐거움과 만족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현재 쾌락’ 시간 조망이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모험심이 강하고 창의적인 편이지만 때때로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실수가 잦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현재 숙명’ 시간 조망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운명론적으로 바라보면서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끼며, 낙관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은 물론 세상에 대해서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편이죠. 

마지막으로, ‘미래 지향’ 시간 조망 유형은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이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힘들어도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또 자신이 노력한 데 대한 합당한 보상을 중요시하며,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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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누군가의 시간은 과거에 붙들려서, 또 누군가는 현재에 존재하며, 다른 누군가는 미래를 향해 더 많이 열려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 조망 유형이 짐바르도가 분류한 것처럼 뚜렷이 구분되거나 한 가지 조망 유형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요한 두세 가지 시간 조망을 가지며, 상황이나 나이에 따라 우세한 시간 조망 유형이 달라지기도 하죠.   

늘 시간에 쫓기며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인 사람도,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허송세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한 시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척이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24시간이며,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또 이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허락되지만, 우리의 시간이 저마다 다르게 흘러가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태어날 때부터 입에 물고 나오는 수저가 정해진, 좀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뿐인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한 번뿐인 인생을 살다가, 종국에는 누구라도 늙고 결국 죽음이라는 같은 종착점에 다다른다는 점에서 삶의 본질은 참으로 공평하다는 정신 승리도 해 봅니다. 

삶과 죽음 사이, 그 연장선상의 무수한 점들을 이루는 우리의 하루도,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24시간이라는 점에서도 말이죠. 우리 모두에게는 억만장자가 억만금을 주어도 절대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낼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시간 속에 살고 계신가요?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참고 도서: 이고은(2019). 마음 실험실.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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