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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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심리학의 선구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행복한 삶에 대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2011년, 웰빙(well-being)의 10가지 요소를 완성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에서 공통점을 도출한 것이었죠. 셀리그만은 이 10가지 요소 중에서도 ‘5개’가 행복한 삶의 필수 요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삶에 몰입하는 태도(engagement) △의미(meaning) △긍정적인 정서(positive emotion) △긍정적인 대인관계(positive relationship) △성취감(competence)입니다.

셀리그만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셀리그만은 심리학계의 이러한 경향을 지적하며, 학문의 관심을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회복하길 요청합니다. 그는 1998년 미국 심리학회(APA) 회장 취임사에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극명하게 드러냈는데요. 당시의 심리학을 ‘반쪽짜리’라고 비판하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질환이 아닌 인간의 강점, 즉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셀리그만은 웰빙의 주요 다섯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의 세 가지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즐거운 생활(the Pleasant Life)’, ‘좋은 생활(the Good Life)’, ‘의미 있는 생활(the Meaningful Life)’입니다. 그는 이 세 가지로 연결되는 거대한 삶의 흐름이 행복한 사람의 시그니처라고 설명했습니다.

‘즐거운 생활’은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성공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좋은 생활’은 삶의 주요 영역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풍부한 만족을 얻어가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생활’은 즐거움 너머의 의미 있는 것을 향해 나의 강점과 미덕을 활용하여 나아가는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흔히 ‘즐거운 생활’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삶으로, 행복한 감정의 깊이가 짧고 얕은 편입니다. 쾌락적인 삶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쾌락은 매우 강렬한 기쁨을 안겨 주지만, 찰나의 순간 사라지고 말죠.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 갑작스레 불행을 맞닥뜨렸을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생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두 가지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호주 심리학 저널에 실린 한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475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동일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더라도 삶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발현해 나가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우울도가 낮았습니다.

미국 정신 의학회(APA)에 실린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됐습니다. 전쟁 참여 경험이 있는 미국의 퇴역군인 3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고 있더라도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사는 퇴역군인들은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확률이 낮았습니다. 이 두 개의 실험은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추구할수록 행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즐거움이나 잠시 동안의 쾌락이 아니라 그 너머의 목표를 향해 우리의 잠재력, 그리고 강점을 발휘할 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삶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강점을 사용함으로써 깊은 성취감과 이로 인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볼 수 있을 텐데요.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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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매우 소소한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점심 메뉴로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는 것이나, 마음에 드는 이모티콘을 사는 것 등 간단하지만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겁니다. 자신의 욕구를 쫓아갈 때 동기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동기와 목표는 의미 있는 삶을 향해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② ‘만약에…’를 생각해 보세요

‘친한 친구를 당장 내일부터 못 보게 된다면?’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여러분은 그 친구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나요? 이때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이 여러분의 진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미는 이미 우리의 내면에 존재합니다. 단지 그것을 떠올리지 못할 뿐이죠. 이럴 때는 ‘만약에’가 유용합니다. 만약에 지금 당장 나의 묘비명을 정해야 한다면? 사망하기 한 시간 전, 유언장을 작성해야 한다면? 여러분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보다 쉽게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③ 자주 휴식하세요

흐드러지게 핀 꽃과 노을빛으로 물든 단풍.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일상에서 불쑥,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현미경으로 꽃잎을 세세히 관찰하면 오히려 감동을 느끼기 어렵지요. 바쁜 하루를 보내다 문득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을 때 벅찬 감정이 밀려오곤 합니다.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바쁜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휴식을 취해 보세요.


④ 내면을 가꿔 주세요

삶의 의미는 결국 자신의 가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잠재력과 강점을 더 큰 목표를 위해 발현할 때 의미 있는 삶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중요합니다. 재능을 찾아보거나 흥미 있는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3년간 수감됐던 빅터 프랭클린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자 역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자신을 생존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이들의 생존 비법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은 것’이지 않을까요? 의미 있는 삶이란 행복의 열쇠일 뿐만 아니라, 삶의 의지를 되살릴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참고도서: 긍정심리학(마틴 셀리그만, 물푸레)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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