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https://kidshyundai.tistory.com/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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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기회에 시골에 사는 쥐와 도시에 사는 쥐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골 쥐가 도시 쥐에게 식사나 하자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도시 쥐는 시골 쥐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선물을 가지고 도시 쥐가 방문하자 시골 쥐는 친구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자, 들판에 있는 보리와 곡식들이 다 먹을 거라네. 아무 눈치 보지 말고 실컷 먹게.”

  시골 쥐는 도시 쥐에게 먹을 걸 권했습니다. 하지만 먹을 거라곤 거친 보리와 곡식들이 전부였죠. 도시 쥐는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내색할 수는 없었습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척했습니다. 돌아가면서 도시 쥐가 시골 쥐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정말 유쾌했네. 자네는 참 착하고 성실한 친구야. 그에 비해 너무 열악하게 생활하는 것 같아 안타깝네. 우리 집에는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 다음에 꼭 놀러 오게.”

  얼마 후 이번에는 시골 쥐가 도시 쥐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시골 쥐의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집이 으리으리했습니다. 게다가 식탁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했습니다.

  “자, 자네를 위해 준비한 음식일세. 천천히 많이 먹고 가게. 나는 늘 먹는 음식이라네.”

  “와~ 정말 대단하군. 고기, 치즈, 과일, 꿀, 케이크까지…… 왕의 밥상이 따로 없구먼.”

  시골 쥐는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도시 쥐가 부러웠죠. 좋은 친구를 둔 덕에 호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거친 음식만 먹고 사는 자기 신세가 한탄스러웠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쥐들이 식사하는 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습니다.

  “여보게, 빨리 숨게! 어서!”

  도시 쥐는 재빨리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며 시골 쥐에게 외쳤습니다. 시골 쥐는 그 말을 듣고 날쌘 동작으로 탁자 뒤에 숨었습니다. 잠시 뒤 사람이 방을 나갔습니다. 그러자 도시 쥐가 쥐구멍에서 나와 이리저리 살피더니 시골 쥐에게 어서 식사를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이해하게. 도시 쥐는 사람 집에 사는 게 숙명이니까.”

  시골 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먹다 만 치즈를 입에 넣었습니다. 한없이 달콤했습니다.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가끔 놀랄 일이 생겨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호두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또다시 문이 휙 열렸습니다. 이번에도 도시 쥐와 시골 쥐는 쏜살같이 몸을 피했습니다. 식사하는 동안 이러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시골 쥐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아무래도 체한 것 같았습니다.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도시 쥐는 식사를 더 하자고 권했지만, 시골 쥐는 통 밥맛이 나질 않았습니다. 시골 쥐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도시 쥐에게 말했습니다.

  “잘 먹고 가네. 자네는 좋은 친구지만, 나는 도시에서는 못 살 것 같네. 아무리 맛나고 기름진 음식이 많아도 이렇게 불안하고 위험해서야 어찌 살 수 있겠나. 나는 어떤 구애도 없이 편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골이 좋네. 비록 거친 보리와 곡식을 먹더라도 말일세.”

 

사진_ https://kidshyundai.tistory.com/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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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쥐와 집쥐’. 이 우화의 원제목입니다. 들쥐가 시골 쥐로 집쥐가 도시 쥐로 바뀌었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우화입니다. 많은 걸 소유하고 누리지만 불안하고 불편한 삶,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지만 넉넉하고 평화로운 삶, 이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겁니다.

  도시 쥐의 삶은 오늘날 도시인의 삶과 많이 닮았습니다. 성공 지상주의, 출세 지향주의,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이기에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과외 공부와 학원 수업으로 내몰립니다. 열성적인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더 일찍 조기교육과 영재교육으로 투입되기도 합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거의 전쟁이죠. 그렇게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자격증을 따거나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싸매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취업, 승진, 창업, 결혼 등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할 관문은 즐비합니다. 

  목표한 대로 성공과 출세를 이뤄낸 사람들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낙오하거나 실패의 쓴맛을 본 후 상처 입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면 성공과 출세의 관문을 잘 통과한 사람들은 원하는 행복과 만족을 얻었을까요? 중간에 낙오하고 실패한 사람들은 불행하고 불만족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우화 속에서 볼 수 있듯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청년 중에 가족이나 사회에 대해 분노와 불만을 품고 있는 이들이 상당합니다. 자신을 무한경쟁 사회로 내몬 가족과 능력이 있으면 우대받고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성공과 출세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열등감이 분노와 불만으로 표현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출세하지 못하면 소외당하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짓밟힌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는 겁니다. 지금 청년 세대의 부모들은 경제가 고속 성장할 때 대학과 직장을 다녔습니다. 경쟁이 요즘처럼 치열하지 않았죠. 조금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성취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들의 시각으로 자녀들에게 성공과 출세를 강요하게 되면 청년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숨이 탁 막힐 지경이 되는 겁니다.

  성공, 출세, 능력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면 자기 효능감을 강조하게 됩니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란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뜻합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에 의해 소개된 개념이죠. 자신감과 비슷한 것 같지만, 자기 효능감은 개인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도전할 목표가 생겼을 때 포기하지 않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반면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어려운 과제를 맞닥뜨리면 쉽게 포기하거나 도전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죠. 몇 번의 성공 경험은 자기 효능감을 높임으로써 더 큰 목표가 세워졌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게 만듭니다. 만약에 실패했을 때도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그 원인을 자기 자신보다 외부 상황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능력이나 노력 부족 등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삶을 통제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자기 삶을 결정한다고 믿지만,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삶이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 출세, 능력을 목표로 살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맞게 자족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은 자아 존중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자아 존중감(Self-Esteem)은 자신이 가치 있고 소중하며, 유능하고 긍정적인 존재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입니다. 줄여서 자존감이라고 하죠. 자아 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배척당할 가능성이 적다고 여기므로 타인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반면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거절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 내가 무엇을 원하고 할 수 있는지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더 민감하게 생각합니다. 뭔가를 추구하다가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자아 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발견한 장점과 능력에 초점을 맞춰 긍정적인 감정을 지속시키려 노력합니다. 한데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좌절과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입니다.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비행에 빠질 가능성도 크죠. 이처럼 높은 자아 존중감은 삶의 만족도, 행복,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성공과 출세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자기 효능감이 높아야 합니다. 한 번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달성하고야 마는 탁월한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효능감이 높다고 해서 자아 존중감도 높은 건 아닙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고,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도 자신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아 존중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존재 가치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 누구의 마음이 더 편안하고 행복할까요?

  우리는 진지하게 행복에 대해 정의해 봐야 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어떤 상태를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좀 더 좋은 집, 좀 더 많은 수입, 좀 더 비싼 차를 얻게 되면 행복해질까요?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일주택자에서 다주택자로 점점 소유를 불려 나가는 게 행복일까요? 

  행복은 누군가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찾아서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맛보고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있다면 그걸 충분히 즐기며 만족해야 합니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행복을 발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과 나를 비교해서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내 삶을 충실히 살면 됩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고, 나는 내 삶이 있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면 그 집은 아무리 작아도 스위트홈이지만, 가족끼리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하고 데면데면 무관심하다면 그 집은 아무리 크고 멋져도 하우스일 뿐입니다. 작은 집에 산다고, 자가가 아닌 전셋집에 산다고, 부부끼리 또는 자녀가 부모에게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넓은 집이나 비싼 집에 살게 되더라도 새로운 원망과 불평거리가 생겨날 겁니다.

 

  도시 쥐는 시골 쥐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소유는 빈약했고 음식은 거칠었기 때문입니다. 도시 쥐는 자신의 성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쥐를 초대했습니다. 집은 으리으리했고 음식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과연 도시 쥐는 성공한 쥐였습니다. 그러나 곧 반전이 일어납니다. 도시 쥐가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은 그 집 주인의 것이었지 도시 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이 오자 도시 쥐는 필사적으로 숨어야 했죠. 집 안에 쥐가 있는 걸 두고 볼 리 없을 테니까요. 도시 쥐의 집은 불안과 불편과 위험으로 가득했습니다. 시골 쥐는 도시 쥐가 더는 부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쌍해 보였습니다. 너른 들판에서 자유롭게 살며 거친 음식이지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도시 쥐가 아무리 붙잡아도 시골 쥐는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십시오.”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그의 눈에 비친 성공은 성과나 소유가 아니라 가치였습니다. 조금 달리 해석하면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보다 자아 존중감이 높은 사람이 되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믿고 존중하고, 내 가치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공과 출세는 보장될 수 없을지라도 행복과 평화만은 보장될 수 있을 겁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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