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늙고 병든 사자가 굴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의 용맹스러운 위용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낸 늙은 여우 한 마리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사자가 말했습니다.

  “커다란 사슴의 싱싱한 내장과 심장이 먹고 싶어. 그걸 먹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사냥을 할 수 없으니 네가 사슴을 잘 꼬드겨서 굴속으로 데려와 줘. 부탁한다.”

  여우는 사자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친한 사자가 건재한 것은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니까요. 숲속을 돌아다니다 멋지게 생긴 사슴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어. 내가 사자의 친구인 건 알지? 그런데 사자가 병이 들어 곧 죽게 될 것 같아. 그래서 후계자를 세우려 해. 사자의 뒤를 이을 숲속의 왕 말이야. 누가 적합할까? 멧돼지? 곰? 표범? 늑대? 아니야. 잘생긴 외모에 뿔이 우아한 사슴이 제격이라고 생각해. 사자도 내 말에 동의했어. 그러니 지금 나랑 같이 사자에게 가서 임종을 지키는 게 어때?”

  여우의 말에 솔깃해진 사슴은 왕이 될 부푼 꿈을 꾸며 여우를 따라갔습니다. 굴속으로 들어가자 사자가 누워 있었죠. 자신을 왕으로 삼는다는 말을 듣기 위해 다가간 순간, 사자는 사슴을 덮쳤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공격에 사슴은 귀만 찢어진 채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사자는 아쉬움을 달래며 여우에게 한 번 더 사슴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여우는 사자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여우는 수소문 끝에 귀가 찢어져 피 흘리는 사슴을 찾아갔습니다. 사슴은 여우를 보자마자 욕을 퍼부으며 꺼지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침착하게 사슴을 달래주었습니다.

  “너는 수려한 외모와 달리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게 탈이야. 사자가 임종을 앞두고 너를 왕으로 삼은 뒤 왕의 위엄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세히 조언해 주기 위해 귓속말을 하려던 것인데, 지레 겁을 먹은 네가 발버둥질하는 바람에 귀가 찢어진 것 아냐? 그러다 사자가 왕의 자리를 다른 동물에게 넘기면 어쩌려고 그래? 다시 가서 사자에게 정중히 사과해. 무서워하지 말고. 왕이 될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야. 자, 마음 다잡고 어서 가자고.”

  듣고 보니 여우의 말에 일리가 있었습니다. 사슴은 이번에도 여우를 따라나섰습니다. 굴속으로 들어간 사슴은 단단히 준비하고 있던 사자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자 밥이 된 것이죠. 사자는 싱싱한 사슴의 골수와 내장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다 심장이 몸 밖으로 튕겨 나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여우는 재빨리 사슴 심장을 낚아채 먹어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식욕을 마음껏 채운 사자가 여우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정말 잘 먹었다. 그런데 이 사슴은 왜 심장이 없는 거지? 아무리 찾아도 없단 말이야.”

  사자의 포식을 지켜보던 여우가 능청스레 대답했습니다.

  “찾지 마세요. 분명히 없을 거예요. 아무리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도 그렇지 한 번 죽다가 살아놓고서 또다시 제 발로 사자 굴속을 찾아온 녀석에게 심장이 있을 리가 없지요.”

 

사진_ Allaboutkiids
사진_ Allaboutkiids

 

  불교에서는 인간의 다섯 가지 근본적인 욕망을 오욕(五欲)으로 설명합니다.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싶은 재욕(財欲), 이성에 대한 성적 욕망인 색욕(色慾), 맛있고 화려한 음식을 탐하는 식욕(食慾), 피곤하면 자고 싶은 수면욕(睡眠欲), 남들보다 높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명예욕(名譽欲)이 그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지만,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이면 과도한 욕망을 하나씩 내려놓거나 접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젊었을 때 왕성하던 색욕, 식욕, 수면욕이 늙어 가면서 점점 줄어드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재물에 대한 욕망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없어지거나 감소하지 않습니다. 소유의 허망함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 혹은 지인과 가족에게 훌륭한 사람, 멋있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바람은 끝까지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명예(名譽, Honor)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를 가리킵니다. 현학적으로 정의하자면 자기의 도덕적 혹은 인격적 존엄에 대한 자각 및 타인의 그것에 대한 승인이나 존경이나 칭찬을 의미합니다. 명예를 가진 사람은 큰 자부심을 느끼기 마련이고,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은 명예를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명예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명예에 대한 욕망은 재물에 대한 욕망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돈은 노력하면 벌 수 있지만, 명예는 노력한다고 해서 다 얻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내가 번 돈은 자식에게 상속해서 대물림할 수 있으나 내가 가진 명예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명예는 자신이 성취하는 것이고 오직 자신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더 가치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한국인이 명예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는 이 속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수성가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라는 칭찬도 좋지만, 주경야독으로 유명 대학 교수가 된 학자라는 칭송이 더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기는 건 이런 까닭입니다. 부자는 사업에 실패하면 모든 걸 잃습니다. 부자라는 지위도 없어지죠. 하지만 국회의원은 딱 한 차례만 했어도 언제나 의원님으로 불립니다. 장관은 며칠만 하고 그만둬도 평생 장관님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닙니다. 은퇴한 교수에게도 늘 교수님이라고 부르죠. 그 자리를 명예롭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도,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유도 원하는 지위에 올라 부자가 되려는 목적보다는 그를 통해 명예를 얻으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명예는 자발적 노력과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외부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지 불법과 편법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자연스럽게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명예를 얻으려다가는 원치 않는 불명예를 얻게 됩니다. 지나치게 명예에 집착하다 보면 자기기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 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자기기만(Self Deception)이란 사실과 다르거나 진실이 아닌 것을 방어기제를 통해 합리화하면서 사실로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정신의학 용어입니다.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자기 마음에 들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진실인 것처럼 믿는 것이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이를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도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000년에 캐나다 맥길 의과대학의 정신과학 교수인 애슐리 와자나는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의대생들에게 정치인이 로비스트로부터 뇌물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당연히 85% 이상의 학생들이 부적절한 일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와자나 교수는 이번에는 같은 의대생들에게 의사가 제약회사로부터 향응을 대접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응답이 나왔을까요? 놀랍게도 46%의 학생들만이 부적절한 일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똑같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을 거라는 식으로 방어기제를 통해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이죠. 자신의 명예가 걸린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방어벽을 치는 것입니다.

  자기기만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마음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자기를 과신하거나 합리화합니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죠. 번듯한 직업도 있고 어느 정도 재산도 모았으면 이제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무슨 회장, 대표, 총재 이런 그럴싸한 자리에 앉고 싶어집니다. 남에게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이타적 삶을 산 적도 없는 사람이 존경받고 싶은 허영심과 훌륭하게 보이려는 공명심이 생기면 자기 마음이나 삶과는 다르게 보이려 애쓰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이 명예를 얻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음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희명자필다원(喜名者必多怨)’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명예욕이 너무 많은 사람은 남의 원망을 많이 산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살지도 않은 사람이 분수에 넘치게 명예를 탐할 때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힘들어집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다른 이들에게 추앙받아 자연스레 명예로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추앙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명예를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리게 되면 도리어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명예에는 그만한 품격이 따라야 하는 겁니다.

 

  ‘사자와 여우와 사슴’ 우화에서 사슴은 자기기만에 빠져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동물의 왕인 사자를 대신해서 왕이 될 동물이 사슴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사슴은 여우의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고 여겼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죠. 명예욕에 빠져 자신이 그럴만한 동물이라고 믿은 겁니다. 그래서 바보처럼 거침없이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사자 굴을 나왔습니다. 그러면 자기기만에서 깨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우의 감언이설에 또 속아 넘어갔습니다. 명예욕에 눈이 멀어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죠. 다시 한번 사자 굴을 찾아 들어가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번에는 살아서 사자 굴을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는 사슴은 심장이 없는 동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자는 심장을 찾았지만, 그 심장은 여우의 몫이었습니다.

  그리스어로 ‘심장’을 뜻하는 단어인 ‘카르디아’에는 ‘생각’, ‘사고’라는 뜻도 있습니다. 명예욕에 눈이 멀어 두 번이나 속아 사자 굴속을 찾아간 어리석은 사슴에게는 ‘생각’이란 게 없을 테니 ‘심장’ 또한 없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심장은 생명의 상징입니다. 심장이 뛰어야 살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고,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기만에 빠져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매한가지입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산다는 건 생각하는 겁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제대로 생각할 줄 알아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요. 생각이 없다면 심장이 없는 것처럼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우화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심장은 항상 지베르니에 머물고 있소.”

  수련의 화가인 프랑스의 클로드 모네가 한 말입니다. 파리 서쪽에 있는 지베르니는 모네의 작품 ‘수련’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그는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생을 마쳤습니다. 모네의 집과 그가 꾸민 정원이 있는 이곳은 그의 예술혼이 피어난 현장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 심장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속에는 그가 본 풍경과 이를 해석한 그의 생각이 담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심장이 항상 지베르니에 머물고 있다고 했습니다. 심장은 삶이고 생각입니다. 내 심장을 뜨겁게 뛰게 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면 명예를 얻든 못 얻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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