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떤 아버지에게 두 딸이 있었습니다. 장성한 두 딸은 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큰딸의 남편은 원예사였습니다. 꽃을 좋아하고 식물 가꾸는 일에 취미가 있던 큰딸이 자기에게 딱 맞는 원예사를 만난 것이죠. 작은딸의 남편은 도공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그릇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살림에 재미를 붙인 작은딸은 그릇을 참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큰딸이 시집가서 잘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큰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래, 남편과는 사이가 좋으냐? 사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고?”

  아버지가 큰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큰딸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남편도 잘해주고 시부모님도 예뻐해 줘서 아무 어려움이 없어요. 다만 한 가지…….”

  “한 가지가 뭐냐? 무슨 힘든 일이 있는 게야?”

  “애써 가꾼 식물과 꽃이 시들거나 죽지 않으려면 날씨가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아야 해요. 해가 너무 쨍쨍 내리쬐면 식물과 꽃이 말라버리거든요. 그러면 내다 팔 수가 없어요.”

  “그렇구나. 내가 틈나는 대로 비를 내려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마.”

  얼마 후 아버지는 작은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작은딸을 만난 아버지는 정성껏 차려준 밥을 먹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작은딸 역시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잘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우리 예쁜 딸이 걱정할 일이 뭐가 있어?”

  “어렵사리 빚어 만든 그릇들이 잘 말라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데, 비가 오면 제대로 마르지 않아 상품 가치가 점점 떨어져요.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겠구나. 내가 매일 신에게 비를 내리지 말고 해를 쨍쨍하게 비춰달라고 기도하마.”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작은딸 얼굴이 떠올라 걱정이었고, 햇볕이 화창한 날은 큰딸 얼굴이 떠올라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흐린 날은 흐려서 걱정, 맑은 날은 맑아서 걱정이었죠. 아버지 얼굴에 근심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신에게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비를 내려달라고도 해를 비춰달라고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사진_ https://watvmedia.org/ko/media/straw-shoe-umbrella-seller
사진_ https://watvmedia.org/ko/media/straw-shoe-umbrella-seller

 

  우리 구전 동화 중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금 장수와 우산 장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어머니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소금 장수였고, 다른 아들은 우산 장수였죠.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은 소금 장수 아들 걱정을 하고, 쾌청한 날은 우산 장수 아들 걱정을 했습니다. 비가 오면 소금이 팔리지 않았고, 날이 맑으면 우산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어머니 역시 걱정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중국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이야기입니다. 중국 산시성에 있는 남선사라는 절 근처에 한 노파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비가 오는 날도 밖에 나와 울고, 화창한 날에도 밖에 나와 울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할머니를 보고 한 스님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게 딸이 둘 있는데, 큰딸은 짚신 장수에게, 작은딸은 우산 장수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큰딸 걱정에 눈물이 나고, 날이 좋으면 작은딸 걱정에 눈물이 납니다.”

  이 할머니 또한 자식 걱정에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날마다 걱정을 달고 살았던 겁니다.

 

  왜 여러 시대와 나라에 걸쳐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걸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의 자식 사랑은 대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자기 자식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바로 부모입니다. 내가 사고뭉치이고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불효를 거듭해도 끝까지 나를 믿고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오직 부모뿐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아무 조건도 없고, 한계도 없고 기한도 없습니다. 거의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낳고 기른 내 분신이자 또 하나의 나인 까닭입니다. 

  이 같은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 걱정이라는 감정으로 표현됩니다. 밥을 안 먹어도 걱정, 너무 잘 먹어도 걱정, 집 밖으로 안 나가도 걱정, 눈만 뜨면 집 밖으로 나가도 걱정, 걸어가면 넘어질까 걱정, 차를 타면 사고 날까 걱정, 공부를 안 하면 안 해서 걱정, 열심히 공부만 하면 건강 해칠까 걱정, 친구가 없어도 걱정, 친구가 워낙 많아도 걱정…… 자식 걱정은 평생 끝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장성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고 머리가 하얗게 돼도 부모 눈에 비친 자식은 마냥 어리기만 합니다. 그러니 걱정을 그만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식이 여럿이더라도 다 잘되고 반듯해서 걱정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자식이 많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제는 장남 걱정, 오늘은 큰딸 걱정, 내일은 막내 걱정, 모레는 둘째 걱정이 이어집니다. 동기간이 보통 대여섯 이상은 되던 예전에는 정말 그랬습니다. 그러면 자녀를 하나 아니면 둘만 낳는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안 그럴까요? 자식 키우는 환경과 세태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부모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오히려 양육비와 교육비가 워낙 많이 들고,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세상이 험악하니 걱정거리가 더 늘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우화 속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가감정(Ambivalence)은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의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좌절, 슬픔, 혐오 등의 부정적 감정이 희망, 기쁨, 연민 등의 긍정적 감정과 함께 뒤섞여 있는 상태를 가리키죠. 1910년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블로일러가 소개한 개념으로, 프로이트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정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행동, 의견, 감정 사이에서 동요하는 경향성입니다. 당연히 서로 다른 행동, 의견, 감정 간에 충돌이 일어나겠죠.

  아침에 일어났는데, 날이 화창하고 해가 쨍쨍합니다. 소금 장수 아들 생각이 난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오늘 우리 아들 장사가 참 잘되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잠시 후에 우산 장수 아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장사 공치는 날이네,’ 하는 생각에 기분이 급격히 우울해졌습니다. 하루 내내 감정이 좋았다 나빴다 오락가락했습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집니다. 지나가는 비인가 했더니 예사롭지 않게 내립니다. 아버지는 큰딸 생각이 났습니다. ‘비가 오니 꽃과 식물이 잘 자라겠구나. 큰딸이 아주 좋아하겠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작은딸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정성껏 빚은 그릇이 마르지 않을 텐데 걱정이네. 딸아이가 마음고생이 심하면 어쩌나.’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낯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태양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반갑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죠. 비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맙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웃다가 울기를 반복합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 큰딸과 작은딸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이기는 하지만, 이런 심한 감정 기복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걱정부터 하는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특정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걱정하면 뭔가 해결되거나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걱정하는 동안 문제가 해소되거나 심각한 정도가 조금 나아질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죠. 전혀 근거 없는 기대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어닌 젤린스키는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걱정 유형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걱정 대부분이 하등 쓸모없는 걱정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사소한 것들이라고 하네요. 또한 4%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걱정해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불가항력에 관한 것이죠. 그러면 나머지가 4%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걱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걱정을 달고 살아도 걱정하고 염려하고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건 고작 4%뿐인데, 우리는 이보다 훨씬 많은 96%의 걱정까지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이미 일어난 일, 사소한 일,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인 96%의 걱정 때문에 우리는 걱정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토록 해결되지도 않을 수많은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없을까요?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이야기에 나오는 할머니에게 인근 절에 있는 스님이 말했습니다.

  “두 딸 걱정에 맑은 날은 맑아서 울고, 흐린 날은 흐려서 울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맑은 날은 짚신이 잘 팔리니 큰딸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흐린 날은 우산이 잘 팔리니 작은딸을 생각하며 기뻐하면 되지 않습니까? 좋은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눈물을 거두고 웃으며 살 수 있게 되었죠. 파체위소(破涕爲笑, 눈물을 거두고 웃음을 지음)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죠. 부정적인 것만 보고 걱정거리를 떠올리면 걱정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을 먼저 보고 좋은 것을 떠올리면 날마다 웃으며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차피 걱정해 봐야 해결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고, 이웃이나 지인들을 위해 걱정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우선입니다.

 

  가수 전인권 씨는 2004년에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한참 뒤인 2015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OST로 삽입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죠. 걱정 많은 세상, 걱정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준 노래입니다. 가사를 찬찬히 읽어 보면 우리가 왜 이렇게 걱정만 하며 살았는지 후회도 되고 반성도 하게 됩니다. 노래처럼 지난 기억과 아픔은 훌훌 다 털어 버리고 좀 더 사랑하면서 걱정 없이 살면 좋겠습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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