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https://www.youtube.com/watch?v=509qdupJgxU            화면 캡쳐
사진_ https://www.youtube.com/watch?v=509qdupJgxU 화면 캡쳐

 

  까마귀 한 마리가 먹을 걸 찾아 날아다니다가 커다란 고기 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쏜살같이 낚아채서 안전한 나뭇가지에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신선한 고기 향이 코를 자극했습니다. 오랜만에 포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여우가 이 광경을 봤습니다.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막 고기를 먹으려던 찰나였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어진 여우는 고개를 쳐들고서 까마귀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거기 까마귀로군. 자네 풍모는 언제 봐도 멋있어. 특히 그 까만 깃털은 정말 우아해.”

  까마귀는 나무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여우의 갑작스러운 칭찬이 듣기 싫지 않았습니다.

  “겉모습만 봐서는 위풍당당한 자네가 새들의 왕이 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

  여우는 숲속의 다른 동물들이 다 들을 수 있게끔 큰소리로 까마귀를 칭찬했습니다.

  까마귀는 우쭐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내 진가를 제대로 알아봐 주는군. 새들이 나를 왕으로 추대해도 이상할 게 없지.’

  여우는 잔뜩 기분이 좋아진 까마귀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목소리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아. 아름다운 풍채에 고운 목소리까지 갖추었다면 새들의 왕으로 충분하니까. 어디 노래 한번 들려주지 않겠나?”

  여우의 말을 들은 까마귀는 한껏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깍~ 까아악~ 깍~”

  순간 입에 물고 있던 커다란 고기 한 점이 나무 아래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여우는 얼른 고기를 낚아챈 후 자리를 뜨면서 까마귀에게 말했습니다.

  “아깝다. 네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새들의 왕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구나 인정받고 칭찬받는 걸 좋아합니다. 욕을 먹고 비난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땀 흘립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가 쓴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Whale Done!: The Power of Positive Relationships)』가 전 세계에 걸쳐 그토록 많이 팔린 이유도 칭찬이 가져다주는 긍정의 에너지에 관해 많은 사람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샴’이라는 이름을 가진 범고래의 현란한 공연을 본 저자가 거대한 포식자인 범고래가 어떻게 저렇게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됩니다. 조련사와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그 비밀이 칭찬에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몸무게가 3톤이 넘는 범고래가 관중들 앞에서 기막힌 쇼를 과감하게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건 고래를 대하는 조련사의 긍정적인 태도와 칭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저자는 칭찬이 가져다주는 변화와 인간관계 그리고 동기부여에 관해 깊이 연구한 결과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칭찬의 힘이란, 바로 칭찬이 긍정적인 힘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에 집중해서 그것을 강조할수록 더 잘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지만,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적절한 칭찬을 하게 되면 갈수록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칭찬을 받으면 왜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인간의 뇌에 있는 보상체계(Brain Reward System) 때문입니다.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거나 즐거운 행위를 하게 되면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 보상이 이루어집니다. 생존에 필요한 이런 감정은 보상 효과와 연결되어 행동을 반복하도록 동기부여를 합니다. 보상체계의 주요 부위는 쾌락의 중추라고 불리는 복측피개 영역(VTA, Ventral Tegmental Area)과 중격측좌핵(NAc, Nnucleus Accumbens) 그리고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피질입니다. 복측피개 영역의 뉴런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중격측좌핵과 전전두엽 피질로 분비되는 것이죠. 자연 보상뿐 아니라 인위적인 자극에 의해서도 도파민이 분비됨으로써 기쁨과 쾌감을 맛보게 합니다. 이처럼 보상을 느끼도록 분비되는 물질이 도파민입니다. 

  칭찬 역시 보상체계를 움직이는 자극입니다. 뇌영상기법을 통해 칭찬이 뇌에 미치는 효과를 탐구한 결과, 칭찬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게 우리 뇌의 보상체계를 자극하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으면 인간의 뇌에서는 도파민을 마구 분비하며 쾌락을 유도합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것이죠. 보상은 범고래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만듭니다. 좋은 결과를 통해서도 칭찬을 받지만, 그 과정에서 적절한 칭찬을 받으면 보상 효과에 의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됩니다. 만약 실패했더라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노력과 열정을 다 쏟았다면 마땅히 칭찬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살맛 나게 만드는 보상입니다.

  심리학 용어 중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뭔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나 기대 또는 예측이 실제 그대로 일어나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 다음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자 여신 아프로디테가 이에 감동해 여인상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사람이 되었다는 신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면 결국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칭찬은 피그말리온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칭찬받는 사람은 인정받고 있다는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면서 활동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칭찬받은 대로 행동하려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대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게 되므로 그에 걸맞은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런데 칭찬이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다주는 건 아닙니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른바 칭찬의 역효과입니다. 칭찬을 들으면 더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겁니다.

  “와, 이번에 95점 받았다면서? 정말 잘했다. 대단해. 다음에는 100점 받겠구나?”

  “피아노 경연에서 장려상 받았다고? 멋지다. 더 열심히 해서 금상 한번 받아야지?” 

  “김 과장, 진급 축하해. 역시 능력자야. 동기 중 진급이 가장 빠르다며? 곧 차장 되겠네?”

  이런 식의 칭찬은 살면서 흔히 주고받는 칭찬입니다. 그러나 이런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나타난 결과와 성과만을 가지고 하는 칭찬이라서 그렇습니다. 결과와 성과가 좋지 않으면 칭찬은 언제든 비난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최소한 현재 수준의 결과와 성과를 늘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는 칭찬입니다. 차라리 아무런 칭찬을 받지 않는 게 홀가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칭찬을 많이 받게 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자꾸만 의식하게 되어 불안해집니다. ‘다음번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목표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지?’ 초조한 마음이 생깁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하거나 일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그러다 보면 하는 일에 대한 흥미와 열의가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칭찬받는 게 즐겁고 칭찬받기 위해 더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는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열정이 식어버립니다.

  칭찬은 강력한 동기부여 요인입니다. 하지만 밖으로부터의 동기부여가 지나칠 경우, 안으로부터의 동기부여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동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외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와 내면에서 생겨나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입니다. 범고래가 관객을 위해 열심히 공연하는 이유는 조련사가 주는 먹이 때문이고, 직장인이 회사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유는 회사가 주는 월급 때문입니다. 먹이나 월급은 범고래가 춤을 추는 동기이고, 직장인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기입니다. 이것이 외적 동기입니다. 반면 산악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산을 오르는 이유는 자기만족과 성취감 때문이고, 아이들이 날이 저물도록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은 즐거움과 행복감 때문입니다. 자기만족과 성취감은 산악인이 험한 산을 오르는 동기이고, 즐거움과 행복감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동기입니다. 이것이 내적 동기입니다. 이 두 가지 동기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칭찬 같은 외적 동기가 강해지면 스스로 하고 싶은 내적 동기가 약해질 수 있는 겁니다.

   

  칭찬의 부정적인 효과가 또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칭찬을 자꾸 받다 보면 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과도한 칭찬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변에서 계속 추켜세우고 칭찬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자만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늘 자신을 경계하고 처신을 신중히 해야 하는 것이죠. 칭찬받는 일이 습관이 되어 우쭐해지고, 자신을 향한 칭찬이 당연하다고 여겨져 무감각해지면 교만한 태도가 몸에 밸 수 있습니다. 한순간 건방지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칭찬을 많이 받더라도 항상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외적 동기가 강해지더라도 내적 동기를 잃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닌데, 누군가 자꾸 나를 칭찬하고 거북할 정도로 과분한 찬사를 늘어놓는다면 그 진의를 의심해 보는 게 좋습니다. 아첨이나 아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상대방의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는 겁니다. 마땅히 그럴 만한 일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죠. 이에 반해 아첨은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입니다. 아부도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것이고요. 뭔가 목적을 가지고 객관적이지 않은 태도로 상대방을 과하게 추켜세우는 겁니다. 여기서 목적이란 드러내지 않은 자기만의 이익입니다. 상대방에게 아첨하고 아부해 환심을 사거나 비위를 맞춤으로써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객관적이지도 않은 사실을 부풀려 지나치게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지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을 칭찬으로 여겨 끌려가게 되면 결국 낭패를 보게 됩니다.

 

  까마귀는 풍모가 멋있지도, 깃털이 우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칭찬을 여러 번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날 여우에게 처음 들은 칭찬일 겁니다. 게다가 전에는 여우가 자신에게 그런 칭찬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아첨이나 아부가 뻔합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여우의 아첨과 아부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여우의 음흉한 계략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죠. 숲속의 어느 새도 까마귀가 자신들의 왕이 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여우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유독 까마귀만 여우의 사탕발림에 넘어갔습니다. 칭찬에 눈이 먼 까마귀는 이성을 상실한 채 교만과 자만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 결과 입에 물고 있던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여우에게 고스란히 상납하고 말았습니다.

  여우의 칭찬을 들었을 때 까마귀가 현실을 직시하고 이렇게 대답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여우야, 칭찬 고마워. 나머지 이야기는 고기 다 먹고 나서 하는 게 좋겠어. 안녕!”

  그런 다음 다른 나무로 날아가 오붓하게 식사를 즐겼다면 정말 행복한 하루였을 겁니다. 간교한 여우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도 있겠네요.

  “새들의 왕은 필요 없어. 그냥 이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면 돼. 어떻게 먹는지 지켜봐 줘.”

  그러면서 여우가 목 빠지게 올려다보며 침 흘리는 걸 즐기면서 그 자리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어 치우는 겁니다. 아마도 여우는 속에 열불이 나서 팔짝팔짝 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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