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의 학용품을 몰래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서 난 물건이냐고, 왜 이런 걸 가져왔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훔쳐 온 거 아니냐고 캐묻거나 나무라지도 않았죠. 오히려 아이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아이가 다른 사람의 겉옷을 훔쳐다가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출처를 묻거나 혼을 내지 않았습니다. 쓸모 있는 좋은 옷을 가져왔다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남의 것을 가져다 어머니께 드리면 매번 칭찬을 받았으니까요. 아이는 자꾸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댔고, 더 과감해졌으나 죄책감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면 더 좋은 물건, 더 값어치 있는 것을 훔쳐야만 했습니다.

  청년이 된 아들은 부잣집에 침입해 비싼 물건을 마구 강탈하는 대담한 도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붙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죠. 저지른 죄가 워낙 많은 데다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기에 재판관은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얼마 후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습니다. 청년은 처참한 얼굴로 포승줄에 묶여 형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아들을 따라가며 목놓아 울었습니다. 멀쩡한 아들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어머니를 본 아들이 자신을 끌고 가던 집행인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습니다.

  “어머니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잠깐만 시간을 내 주십시오.”

  집행인의 허락을 받은 아들은 귀엣말하고 싶다며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어머니는 죽기 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하고 아들의 입에 귀를 댔습니다. 이때 아들은 어머니의 귀를 사정없이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어머니의 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흉악한 도둑놈이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의 귀를 물어뜯는 패륜까지 저질렀다며 당장 사형을 집행하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어머니를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죽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에요. 어린 시절 친구 학용품을 훔쳤을 때 어머니가 나를 야단치고 회초리를 들었더라면 내가 뉘우치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 어머니가 칭찬해주는 바람에 도둑질에 재미가 들려 결국 내가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도둑질하는 어린아이를 칭찬하는 어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요? 어머니가 원망스러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양심에 크기가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자그마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어쩔 줄 모르며 괴로워하고 자책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비판에도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사람이 있고, 엄청난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전혀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심의 크기가 달라서라기보다는 양심의 소리에 민감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덕과 윤리에 관한 판단력과 대응력에 그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죠. 선천적으로 이런 차이를 타고 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성장 환경과 교육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아 형성됩니다. 도덕성과 윤리 의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 투명하고 건강해지지만, 무신경하고 무감각한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점점 부패하고 병들어 갑니다.

  남의 돈이나 물건을 훔치는 걸 도둑질이라고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충동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 것을 훔치는 행위를 ‘도벽(盜癖, Kleptomania)’이라고 하죠. 도둑질하는 버릇이라는 뜻입니다. 돈이 없거나 먹을 게 부족해서 혹은 당장 필요한 물건인데 구할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돈과 물건에 손을 대는 게 아니라 도벽 충동을 참지 못해 도둑질을 반복하는 증상을 가리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이를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파악합니다. 도벽은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훔치는 게 아닙니다. 돈이나 물건이 목적이 아니라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죠. 도둑질하기 직전에 느끼는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성공했을 때의 쾌감과 충족감이 도벽을 끊지 못하는 요인입니다.

  도벽의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병적 도벽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등 대인관계에 중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또는 가정이나 학교, 회사 등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뇌 질환이나 지적 장애와 관련이 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의지가 약하거나 유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 지능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람이 도벽에 빠지기 쉽습니다. 환자의 가족 중에 강박장애나 기분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전적 요소도 관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여성의 경우, 생리 중 강한 도벽 충동을 느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른바 생리도벽입니다. 월경전증후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한 충동 때문에 긴장감이 증가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과 남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특징인 정신질환을 충동조절장애(Impulse Control Disorders)라고 합니다. 충동조절장애는 간헐성 폭발 장애, 병적 도벽, 병적 방화, 병적 도박, 충동적이고 강박적인 성행위, 자해 등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이들 장애는 강박증이나 중독과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양심이나 이성의 힘으로 참거나 절제하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죠. 충동적 행동을 하기 전에 긴장이나 각성이 고조되고, 행동으로 옮기고 난 후에는 일시적인 쾌감이나 긴장의 해소를 경험합니다. 여기에 맛을 들이면 충동과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빠져들게 됩니다. 다른 정신질환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책, 후회, 죄책감이 없는 편입니다.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인 병적 도벽은 성장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결손가정이나 갈등이 많은 가정 그리고 부모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부도덕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병적 도벽에 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거나 잘못된 양육 방식 속에 자라난 아이들, 부모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 존재감마저 부정할 수 있습니다. 바른 도덕성과 윤리관을 미처 확립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것이죠. 그러다 학교에서 교우 관계를 잘못 맺게 되면 더욱 불량한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병적 도벽에 빠지면 언제든 잘못이 발각되거나 경찰에 붙잡힐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에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보이거나 성격적인 결함이 드러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여러 가지를 두루 종합해 봤을 때 결국 병적 도벽은 당사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부모나 어른들의 옳지 못한 교육 그리고 건강하지 않은 열악한 성장 환경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도둑인 사람은 없다는 것이죠. 교육과 환경에 의해서 도둑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도둑 아들과 어머니’는 바로 이걸 강조하고 있는 우화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게 있었습니다. 어떤 초등학생 아이가 엄마 돈 만 원을 몰래 훔치다가 들켰습니다. 엄마는 당황했습니다. 아이도 물론 깜짝 놀랐겠죠. 엄마가 자신을 회초리로 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를 때리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문을 쓰게 한 다음 그걸 들고 파출소에 가서 경찰관 아저씨에게 보여준 후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반성문을 썼습니다. 파출소에서 만난 경찰관이 받아 본 반성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돈을 만 원 가져갔습니다. …… 너무 후회되고 너무 엄마,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 이 일 때문에 경찰서 가서 경찰관님 사인, 이름 받아오기 벌을 받았습니다.”

  반성문 밑에는 ‘바쁘신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말까지 쓰여 있었습니다. 파출소에 있던 경찰관 아저씨는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따뜻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남의 돈을 몰래 가져가는 것은 정말 나쁜 행동이야. 이번 한 번만 믿고 사인하는 거야.”

  아이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 아이가 또 남의 돈이나 물건에 손을 댔을까요? 아마도 두 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잘못을 충분히 뉘우치면서도 공적인 과정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그릇된 행동이었는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매를 들거나 욕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부모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이를 무조건 오냐오냐 기르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기 죽이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놔두는 게 좋은 부모가 아닙니다. 올바른 도덕성과 윤리관을 심어줌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게 훈육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큰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배만 채우면 그만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라 세금이나 공적인 돈을 제 돈인 양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릴 때 ‘도둑 아들과 어머니’ 우화에 나오는 어머니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아닐까요? 맨 처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발견한 부모나 어른들이 따끔하게 혼을 내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뉘우칠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반복하다가 끝내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어 큰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산출한 2022년 1분기 한국 사회 세대 갈등 지수가 2018년에 비해 5.2퍼센트 증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족 간에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셈입니다. 노인 세대는 젊은 세대를 그저 버릇없는 철부지로만 여기고,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를 앞뒤 꽉 막힌 꼰대로만 여깁니다. 어른은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높은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모범을 보이는 게 어른입니다. 어른의 권위란 거기서 나오는 것이죠. 집 안이나 마을이나 사회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따끔하게 훈계하고 야단을 침으로써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어른이 많다면 젊은 세대도 나이 든 세대를 존중하고 존경하지 않을까요? 아이를 낳기는 쉬워도 제대로 된 부모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나이 먹는 건 쉬워도 본받고 싶은 어른이 되는 건 어렵습니다.

   

  소도둑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늘 도둑을 만들지 않는 겁니다. 아니 바늘 도둑을 발견했을 때 스스로 뉘우치게 해서 소도둑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는 겁니다. 도둑 아들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화 속 어머니처럼 하면 안 되고, 위 사례에 나오는 초등학생 어머니처럼 해야 합니다. 훈계와 깨달음은 쓰고 눈물겹지만, 그 결과는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가정과 마을과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하고 건강해집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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