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Allaboutkiids
사진_ Allaboutkiids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가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팀을 이뤄 사냥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여우가 꾀를 내어 유인하고 당나귀가 사냥감을 몰아가면 사자가 덮쳐서 해결하는 방식이었죠. 매우 적절한 역할 분담이어서인지 사냥이 수월했고 많은 먹잇감을 얻었습니다. 

  “수고 많았다. 당나귀야, 네가 잡은 짐승들을 세 몫으로 나눠 봐라.”

  사자는 당나귀에게 사냥에 성공한 먹잇감들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분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나귀는 셋이서 사냥을 했으니 짐승들을 공평하게 삼등분해서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사자야, 오늘 사냥한 짐승들을 셋으로 나누었어. 각자 골라 가지면 돼.”

  당나귀가 나눈 몫을 본 사자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게 공평하게 나눈 거라고? 짐승을 많이 잡은 게 다 내 덕이지 네 덕인 줄 알았냐?”

  그러면서 당나귀를 덮쳐 먹어버렸습니다. 사자의 본능이 발휘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그런 다음 여우를 쳐다보며 사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여간 조금 잘해주면 제 분수를 모른다니까. 이번에는 여우 네가 짐승들을 나눠 봐라.”

  여우는 자기 몫으로 조금만 떼어놓은 다음 나머지 짐승들을 한군데 잔뜩 쌓아두었습니다.

  “사자님, 다 나누었어요. 이게 제 것이고, 저것이 사자님 몫입니다.”

  “오, 대단히 지혜롭게 나누었구나. 이렇게 분배하는 걸 누가 가르쳐주더냐?”

  여우는 사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당나귀가 당한 불행을 보면서 이런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의 요소가 뭘까요? 다시 말해 행복의 조건이 무엇일까요? 많은 돈, 높은 지위, 대단한 명예, 빼어난 외모, 깊은 학식이나 지혜, 멋지고 아름다운 연인과의 사랑……. 물론 이 모두가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상대적인 겁니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행복의 요소가 있어서 그걸 쟁취해야만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거나 혹은 덜 불행하다고 여겨질 때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상대적으로 자신이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될 때 행복한 감정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월급의 두 배에 달하는 돈을 특별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돈을 받게 되는 그는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달려가 아내에게 소식을 전하며 기쁨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이때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옆집 남자는 회사에서 보너스를 천 퍼센트나 받았다네? 그 말을 들으니까 좀 심란해.”

  행복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던 남자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머쓱해졌습니다.

 

  두 친구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한 친구는 시험을 그다지 잘 보지 못했기에 원하는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을 가야 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 친구는 시험을 잘 치렀다며 원하는 대학에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했습니다. 친구의 자랑을 들으며 다른 친구는 기분이 비참했습니다. 그 친구의 합격자 발표일이었습니다.

  “떨어졌어. 지원자가 몰려 합격선이 대폭 올라간 것 같아. 나 어떡해야 하냐? 미치겠다.”

  뜻밖에 낙방한 친구의 전화를 받은 다른 친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거나 남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룸으로써 능동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이 불행에 빠지거나 뜻하지 않게 위기에 처했을 때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 안도하면서 수동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겁니다. 사촌이 괜찮은 땅을 샀다는 소식을 듣고 배가 아프다가도 그 땅이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묶여 값이 폭락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해지는 것이죠. 이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심리를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합니다. 독일어로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뜻입니다. 손해를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라는 의미의 ‘프로이데(freude)’를 합성해 만든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2009년 2월 미국과학진흥협회에서 발간하는 종합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일본 교토대 의학대학원 다카하시 히데히코 교수팀의 연구 논문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샤덴프로이데가 생기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다카하시 교수팀은 평균연령 22세의 건강한 남녀 19명에게 가상의 시나리오를 주고 읽으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주인공은 능력이나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면에서 평범한 사람이며, 그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 세 명은 모두 대학 동창입니다. 시나리오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학 생활과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뇌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강한 질투를 느끼는 사람에게 급작스레 불행이 닥쳤을 때 실험 참가자의 뇌가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특히 평소 나보다 잘났거나 많은 것을 가졌거나 내게 없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돼 질투를 느끼던 상대방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더욱 강한 쾌감과 환희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샤덴프로이데가 생기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이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있을 때입니다. 즉, 나와 무관하게 자기 스스로 벌인 일 때문에 당하게 된 불행이죠. 자업자득으로 해석되는 불행입니다.

  둘째는 불행 정도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때입니다. 힘들지만 극복할 수 있을 만한 불행이라는 것이죠. 회복 불능의 극단적인 불행 앞에서 샤덴프로이데가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셋째는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다시 말해 그 사람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심이 크지만, 그 차이가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서 따라잡을 수 없을 때 샤덴프로이데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을 당해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대놓고 기뻐한다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을 겁니다. 인정 없는 나쁜 사람이라고 다들 피하겠죠. 그러니 대놓고 즐거워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불행이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기며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본능적 심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가까운 사람의 불행을 보고 행복해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약간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의외로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주변에 자신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곧바로 자신과 비교하며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을 바꿉니다. 나는 불행하다고 여기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걸 소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환경보다 열악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 비하면 한없이 행복할 만한데도 자신보다 더 가진 사람과 더 나은 환경에 놓인 사람만 바라보기에 항상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끝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게 없는 것, 내게 부족한 것을 찾다 보면 어느 한순간 행복하다고 느낄 사이가 없습니다.

 

  사자와 당나귀와 여우가 친구가 되었을 때 당나귀와 여우는 우쭐했을 겁니다. 초원의 제왕인 사자와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마음껏 으스대며 사냥에 나섰습니다. 많은 먹잇감을 얻었습니다. 정말 행복했을 겁니다. 다른 동물들 역시 당나귀와 여우를 부러워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이후 이들에게는 엄청난 불행이 들이닥쳤습니다.

  당나귀는 정말 자기가 사자와 동급이 된 줄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냥한 짐승들을 삼등분해서 똑같이 나눴습니다. 사자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죠. 사자는 착각에 빠진 당나귀를 그 자리에서 응징했습니다. 순식간에 행복과 불행이 뒤바뀌었습니다. 이를 숨어서 지켜본 많은 동물이 샤덴프로이데를 느꼈을 겁니다. 당나귀처럼 사자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부러워했던 동물들이 사자의 친구가 되지 않길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겠죠. 

  여우는 당나귀의 불행을 목격하며 자신이 똑같은 불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금방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결코 사자와 동급이 아니었던 거죠. 사자의 기쁨이 곧 자신의 행복이었고, 사자의 분노가 곧 자신의 불행이었습니다. 사냥해서 얻은 먹잇감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게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사자에게 더 많은 짐승을 배분하는 게 행복이었죠. 남이 당한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행복이 어디 있는지를 제대로 발견한 것입니다.

  여우가 당나귀의 불행을 보고도 짐승에 눈이 어두워 먹잇감을 똑같이 둘로 나누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많은 소유를 통해 행복해지려다가 당나귀처럼 모든 것을 잃는 불행을 맛봐야 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신은 아무것도 갖지 않을 테니 사냥해 온 짐승 모두를 사자가 가지라고 양보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또한 사자의 자존심을 건드려 화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자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화를 면해 가장 행복해지는 최선의 길을 찾아낸 겁니다. 이 모두가 당나귀의 불행을 보고 자신과 비교하면서 깨닫게 된 지혜입니다.

 

  행복을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고,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처럼 느끼는 겁니다. 이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내 인생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우울증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지고, 늘 주눅이 듭니다. 나보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은밀한 샤덴프로이데를 느낍니다. 그러나 샤덴프로이데는 건강한 행복이 아닙니다. 남들이 불행해져야만 내가 행복한 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죠.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주체적인 행복을 찾아 이를 온전히 느끼고 즐기는 것이 건강한 행복입니다. 나도 남도 다 같이 행복한 것이 참 행복이 아닐까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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