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발칙한 이솝 우화> (11)
다 가지려다가는 다 잃기가 십상이다 - 두 마리의 수탉과 독수리

 

 닭을 많이 키우는 집이 있었습니다. 닭들은 자유롭게 집 안팎을 다니며 벌레도 잡아먹고 시냇물도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중 힘센 수탉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여쁜 암탉들을 독차지하려고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심하게 결투가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쫓겨난 패자는 멀찍이 도망가서 으슥한 곳에 숨어버렸습니다.

  승리한 수탉은 의기양양했습니다. 경쟁자를 물리쳤으니 이제 자신에게 도전할 닭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제왕이 된 것이죠. 어여쁜 암탉들은 전부 자기 차지였고, 모든 닭이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수탁은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꼬끼오! 꼬끼오!”

  수탉은 양쪽 날개를 높이 쳐들고 위용을 자랑하며 한껏 목청을 돋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진_ African Storybook
사진_ African Storybook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지붕 위에서 요란스레 소리치고 있는 수탉을 날쌔게 채서 날아갔습니다. 수탉은 연신 바둥거렸지만,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몸부림칠수록 깃털만 허공에 흩날릴 뿐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패자 수탉이 으슥한 곳을 벗어나 살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패자의 초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수탉은 자신에게 모욕을 안긴 경쟁자가 사라진 안전한 곳에서 여유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여쁜 암탉들도 모두 자신의 차지였죠. 

  이솝 우화를 읽다 보면 저절로 혀를 차거나 무릎을 칠 때가 많습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오늘날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아울러 동물들의 희로애락이나 술수를 쓰고 서로 각축하는 형태 역시 사람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집단생활을 하는 생명체가 갖는 공통분모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중 하나가 승자독식(勝者獨食, Winner Takes All)입니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나 대상은 적고, 그걸 소유하려는 사람은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가치 있는 자원이나 수단의 희소성이 클수록 가지려는 욕망의 크기 또한 커집니다.

그러나 경쟁이 항상 정정당당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겨루다 보면 편법이나 반칙이 동원됩니다. 이전투구, 즉 개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긴 쪽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승리의 기쁨을 누립니다. 반면 진 쪽은 모든 것을 잃고 패배의 눈물을 흘립니다. 승자가 경쟁 과정에서 저지른 편법과 반칙은 묻히기 일쑤지만, 패자가 저지른 편법과 반칙은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긴 쪽이 모든 것을 다 갖는 승자독식의 원리입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일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살벌합니다.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더 값진 것을 차지하기 위해 매번 각축해야 하니 인간관계는 메마르고 딱딱해지죠. 성공 지상주의가 판을 칩니다. 성공은 곧 선이고, 실패는 곧 악으로 취급됩니다. 

 

  그렇다면 경쟁에서 이긴 사람, 성공을 쟁취한 사람은 마냥 기쁘고 행복할까요? 원하는 것을 얻고, 누리고 싶은 걸 누리고 있을 테니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승리자의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명백한 성공에 대해 어떤 사람은 역설적인 우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상상도 하지 못한 성공과 승리가 갑자기 주어졌을 때, 더 많은 책임감이나 의무감 등을 불러일으켜 우울과 불안이 찾아올 수 있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맛본 사람들은 흑백논리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해 인생의 목표를 성공에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이분법적 강박은 성공에 대한 강한 갈망과 집착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성공에 이를 수는 있지만, 그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고독감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성공에는 끝이 없고, 만족이 없으며, 작은 성공 앞에는 더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순간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성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든 실패를 맛볼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따라서 성공에 대한 극단적인 강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언제 다시 실패할지 모른다는 강렬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반대로 경쟁에서 진 사람, 성공을 얻지 못한 사람, 실패의 쓴맛을 본 사람은 어떨까요? 많이 아프고 힘들고 괴롭겠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누리고 싶은 걸 누리지 못하니 비참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할 겁니다. 역시 우울과 불안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깊은 상실감과 비애감을 느낄 수 있겠죠.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경쟁하면 항상 자기는 패배하고 실패할 거라는 생각에 지레 주눅이 드는 것이죠. 열등감이 점점 심해지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자기혐오 또는 근거도 없이 자기를 계속해서 비하하고 학대하는 자학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패배와 실패를 잘 견디고 극복하며 이를 거울 삼아 다시 도전하고 도약하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경쟁이 없는 사회,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나 대상이 넘쳐 나고, 소유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면 경쟁이 필요 없겠죠. 모두가 승자가 되고, 모두가 성공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나 세상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가치 있는 자원이나 수단은 늘 제한적이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차고 넘칩니다. 좀 더 안락한 삶, 편안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질 겁니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본다면 경쟁 없는 사회나,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세상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경쟁은 피할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을 겁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경쟁을 없애고,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면서 양보하고 절제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며, 실패하지 않으려고 애쓰되, 편법이나 반칙을 쓰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겁니다. 그런 다음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을 경우, 승자독식에 취해 다 가지려 하지 말고 적절하게 나누는 것이죠. 패자를 배려하는 겁니다. 승리자의 몫을 함께 나누면 내 것이 줄어들어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 가지려는 마음, 더 가지려는 마음, 나만 가지려는 마음을 좀 절제하고 양보하며 적당한 선에서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승자독식의 폐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겼는데, 승리자의 자리에 앉았는데, 성공의 기쁨을 맛봤는데, 욕망을 억제하고 양보하며 절제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과 지성과 양심의 힘에 의지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 문화가, 이 세상의 약육강식 원리가 약간씩이라도 순화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정신건강에도 대단히 유익합니다. 승자독식 문화와 약육강식 원리에 함몰되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다 보면 우리의 몸도 마음도 점점 더 지치고 피곤하고 황폐해져 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두 마리의 수탉과 독수리’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내 이야기입니다. 내 힘만 믿고 눈에 보이는 것을 독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보면 언젠가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됩니다. 승자는 모든 걸 다 가졌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뿐입니다. 자만과 교만은 화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독수리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채갈 수 있습니다. 경쟁자가 사라지자 패자였던 수탉이 나타나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나 그도 승자독식의 논리에 취해 살아간다면 곧 화를 당할 게 뻔합니다. 싸우지 않고, 혼자서 독차지하려 욕심부리지 않고,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 기를 쓰지 않고, 사이 좋게 양보하고 절제하고 배려하면서 살았더라면 두 마리의 수탉은 얼마든지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승리한 수탉이 피투성이가 된 채 쫓겨난 수탉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미안하다. 나도 오기가 생겨서 물불 안 가리고 싸웠어. 하지만 같은 수탉끼리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야. 우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많이 아프냐? 치료하러 가자.”

 

  그러면 싸움에 진 수탉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아냐. 욕심부린 건 나도 마찬가지야. 미안하다. 너는 확실히 나보다 힘이 세. 너를 도와서 이곳의 모든 닭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할게. 손 내밀어 줘서 고마워.” 

 

  이렇게 양보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독수리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겠죠? 독수리는 자만과 교만에 빠진 사람에게만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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