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부들이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배에는 수십 년 동안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노련한 어부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고기가 있을 만한 곳에 그물을 던졌지만, 번번이 허탕이었습니다. 여러 곳을 돌며 수없이 그물을 던졌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바닷속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이들은 힘이 빠지고 허탈해졌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운이 없는 날이야. 이런 날은 뭘 해도 안 되는 법이지.”

  낙담한 어부들은 뱃마루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죠.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가야 했습니다. 베테랑 어부 여럿이 온종일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그냥 돌아가야 했기에 마음이 무겁고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뱃머리를 막 돌리려던 찰나였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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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큰 다랑어 한 마리가 배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무엇엔가 쫓기다가 배에 부딪히며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어부들은 얼른 다랑어를 붙잡아 배 밑창에 있는 수조에 가두었습니다. 다랑어는 살이 붉고 아름다우며 횟감으로 가장 좋은 커다란 물고기입니다. 그물질 한 번 안 하고 이런 물고기를 잡게 된 것이죠. 어부들은 신이 나서 돌아왔습니다. 어시장에서 비싼 값에 다랑어를 판 어부들은 돈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날은 어부들에게 운이 없어 헛고생한 날이 아니라 행운이 가득한 운수대통한 날이었습니다.

  유난히 뭔가 잘 안 풀리는 날이 있습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거나 컨디션도 좋지 않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한 날도 있죠. 그런 날은 공부도 안 되고, 일도 잘되지 않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평소답지 않게 허둥대서 중요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운동선수나 예술가에게는 징크스나 기벽 같은 게 있습니다. 축구선수가 특정 색깔의 유니폼이나 양말을 신었을 때는 좋은 경기를 펼치지만, 싫어하는 색깔의 유니폼이나 양말을 신었을 때는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케이트 선수가 안쪽 라인에서 출발할 때는 기록이 좋은데, 바깥쪽 라인에서 출발할 때는 기록이 좋지 않은 사례도 있고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도 자기가 늘 사용하거나 선호하는 악기가 아니면 연주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도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서 유난히 글이 잘 써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징크스나 기벽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도 징크스나 기벽의 방향을 따라 실제 그렇게 되어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사용했던 볼펜이 있어야 시험을 잘 치른다고 믿는 학생이 어느 날 급히 나오느라 집에 그 볼펜을 두고 왔을 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어 시험 점수가 형편없게 나오는 겁니다. 다 아는 문제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틀리는 것이죠. 그 학생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볼펜 없이 시험을 잘 본 적이 없어. 그러니 오늘 분명히 시험을 망칠 거야. 난 망했어.’

  소개팅할 때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만 만나면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불안정해져서 번번이 결과가 좋지 않았던 여성이 있습니다. 그런 남자에게서 한 번도 애프터 신청을 받아 본 적 없는 여성은 자신은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와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남자는 자기 같은 여성을 싫어한다고 믿게 된 거죠.

  어느 날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가 키 크고 잘생긴 남자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이상형이었습니다. 역시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서 대화를 잘 나누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나 마나 애프터가 오지 않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수줍어하는 여자가 마음에 들었죠. 그래서 다음 날부터 여자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잘못 건 걸 거야. 내게 애프터 신청을 할 리가 없지. 다 끝났어. 마음을 비우자.’

  여자는 남자보다 자신의 징크스를 더 믿은 결과 좋은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의 학생이나 뒤의 여성 모두 자기가 믿고 있던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일이 잘될 거라고 기대하면 기대한 대로 잘 풀리고, 영 운이 없는 날이라 여겨서 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예단하면 그만큼 일이 안 풀리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감정 등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예측에 몰입하게 되면 그에 맞춰 행동하게 됨으로써 기대와 예측이 실제 현실이 되는 겁니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 말이 생각을 지배하게 되고, 굳어진 생각이 행동을 규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한 대로 되고 마는 것이죠. 여기서 말이란, 미래에 대한 예상이나 예언을 의미합니다. ‘어쩐지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아.’하고 되뇌면서 이를 믿으면 정말 예상대로 나쁜 일이 벌어지고,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말하며 행동하면 실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카페에서 타로점을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운세를 들여다봅니다. 장난 삼아 봤다느니, 심심해서 한번 들어가 본 거라느니 하지만, 거기서 듣고 본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큰 행운이 찾아올 것만 같고, 나쁜 말을 들으면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안 좋은 일이 닥칠 것만 같습니다. 학자들이 혈액형과 성격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진단을 내렸음에도 많은 사람이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예단합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과를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믿음에 맞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제 사실보다 상황에 부여된 의미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객관적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석한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죠. 이런 반응이 모이면 해석한 대로 상황이 전개됩니다.

  땀의 원리는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대가를 거두는 것입니다. 징크스나 기벽과 상관없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매사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리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최선을 다한 땀의 대가이기에 많든 적든 결과에 자족하며 삽니다. 최선을 다해 땀 흘리며 노력한 결과가 늘 좋은 건 아닙니다. 뜻하지 않은 불운과 재난이 겹쳐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땀의 원리에 충실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땀 흘려 노력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주하지 않아도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가를 얻는 겁니다. 이런 걸 행운이라고 합니다. 노동의 결과가 아닌 행운의 결과는 더 달콤하고 짜릿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운이 언제 어떻게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학수고대한다고 해서 흥부에게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가 매번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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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행운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어떤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드는 걸까요?

  미국 작가 줄리아 월튼은 『오늘의 자세: 행운을 부르는 법』이라는 소설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레오는 남들보다 억세게 운이 나쁜 소년입니다. 엄마는 유방암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그리스에서 오신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빠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친구들은 짓궂기만 합니다. 그래서 레오에게는 불안장애에 공황장애까지 찾아왔습니다. 레오는 스스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왜 남들보다 운이 나쁜 걸까?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이 운을 바꿀 수 있을까?’

  모든 걸 불운의 징조로 여기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우울한 기분으로 살아가던 레오는 요가를 배우면서 차츰 자신을 돌보는 방법과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알아 갑니다. 레오는 ‘오늘의 자세’를 취하며 하루하루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불운으로 여겼던 지난 일들이 모두 행운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행운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이 우리에게 가뿐하게 손짓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불운과 행운을 가르는 차이는 할머니의 이 한마디 말속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할머니는 불운을 되받아치는 유일한 방법이 뜻밖의 친절이라고 했다. 그것만이 삶이 구렁텅이에 빠질 때 우리가 무너질 거라고 믿는 악마를 혼란스럽게 할 거라고.”

  내 삶이 구렁텅이 빠졌다고 느꼈을 때, 내가 불운의 깊은 골짜기를 헤매고 있다고 생각될 때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뜻밖의 친절을 베푸는 겁니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뜻밖의 친절이란 삶을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대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 땀을 흘리는 겁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는 겁니다.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겁니다. 아프고 힘들어도 더 많이 사랑하는 겁니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바닷속을 손바닥 보듯 하던 베테랑 어부들이 종일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어떤 어부는 전날의 흉흉한 꿈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떤 어부는 오늘 입고 나온 옷 색깔이 불운을 불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지독하게 운이 없는 날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부들은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자기 자신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오늘은 지지리 운 없는 날이니 다 때려치우고 일찌감치 들어가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바다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때 갑자기 다랑어 한 마리가 배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죠. 이것이 노동의 대가일까요? 아니면 일확천금의 행운일까요? 땀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기막힌 행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행운은 뜻밖의 친절이 가져다준 거라는 사실입니다.

  예상치 않았던 누군가의 도움도, 기적처럼 찾아온 믿기 힘든 행운도 알고 보면 치열한 노력과 힘겨운 땀방울 그리고 뜨거운 눈물의 대가 혹은 결과일 경우가 많습니다. 행운도 노력하는 자에게 따르는 법입니다.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린 채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행운이 찾아들지 않습니다. 만약 찾아든다 해도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 될 공산이 큽니다. 뜻밖의 친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은 땀과 운의 원리를 잘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나는 지독히도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뜻밖의 친절을 베풀어 보십시오. 모든 징크스와 불운은 날아가고 행운이 찾아올 겁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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