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무직인 상태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우울감을 느꼈고, 타인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게 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출신 대학도 지방이라서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 진학할 때 입학은 과 하나만 보고 갔는데, 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력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습하면서 알게 되었고, 현재 시점에서는 더 절감하고 있고, 너무 후회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 학교나 직장에서 잘 다니기보다는 실패한 경험이 있다 보니 과거에 사람들로부터 당한 기억이 저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A병원에 근무했을 당시, 제 의도와 상관없이 6개월 될 즈음에 갑자기 다른 부서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고 상심해 있었는데, 한 언어치료사가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서 저한테 비꼬듯이 “선생님 좌천 되셨어요? 나도 잘못해서 쫓겨나면 어떡해.”라며 제가 잘못해서 나가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병원에서 하는 조치보다 그 언어치료사가 저에게 했던 말이 제 마음속에는 더 큰 상처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그 언어치료사는 명문대 대학원을 나오고 처음부터 집도 서울이고,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과거 일에 사로잡혀 있고, 더 상기되어 저를 괴롭히고, 매우 후회하고 있고, ‘나도 처음부터 서울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부러움과 함께 내 인생이 실패했다는 것에 더 우울합니다. 최근에 알고 싶지 않은, 제가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좋은 소식까지 듣게 되었는데, 대학 때 저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막말하던 사람들이 직장에서 자리를 잘 잡고,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과 A병원에 있던 언어치료사가 A병원보다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주말마다 좋은 곳에 놀러 다닌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경력을 쌓아 자리를 잡고 더 좋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데, 저는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현재 집에서 쉬고 있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도 의욕이 안 납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죽지 못해 산다’ 딱 이런 마인드입니다. 그리고 일해서 돈을 벌어도 남는 거 없이 모두 집세, 관리비 등 고정비로 나가는 게 많아, 제가 먹고 싶고 입고 싶은 데 잘 못 쓰고, 남들은 제주도, 해외여행 등 20대 때 누릴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무것도 못 누리고, 아무 경력도 없는 현실이 암담합니다.

서울로 왔을 때 집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이사도 여러 번 해야 했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었는데, 하필이면 천장에서 물이 계속 떨어져서 갑작스러운 공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해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서울에 산다고 모두 다 잘 살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제가 대체적으로 느꼈을 때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삶의 질도 훨씬 좋고, 좋은 직장,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무엇을 해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시내 한 번 나가기 힘든 곳,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컴퓨터 상설 시험을 보러 갈 때도 하루 종일 걸려 보러 가야 하고,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고, 교육 시설도 제대로 없는 지방에 살게 한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부모님께 전화 오는 것도 너무 싫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낳지나 말지 왜 낳아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살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가 후회되고, 지방에 산 것도 매우 후회합니다. 요즘은 밤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이런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우울감을 느끼고 있고, 타인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크다고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아 주셨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연자님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용기 있는 분 같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과거에 학교나 직장생활에 있어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은 기억 때문에 상처받고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요, 다른 사람들이 사연자님께 했던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은 결코 사연자님의 탓이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일들로 인해 자신을 괴롭히거나 자책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시다면, 그 부분에 대한 원망이나 책임은 가해자들에게 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연자님을 괴롭히는 것은 타인의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만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는 서울에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상태이지만,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과 옆에 친구들이 쥐고 있는 것들을 비교하게 됩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은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할 지경입니다. 막상 내 손에 들린 사과와 옆에 친구가 쥐고 있는 사과의 크기와 빛깔이 확연히 차이가 날 만큼 친구의 것이 좋아 보인다면, 나도 모르게 그 사과에 눈길이 가면서 내 사과는 한없이 형편없어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가 나고 속이 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솔직한 마음이자, 욕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과는 과연 누군가가 친구와 내 손에 임의로 쥐어 준 것일까요? 아니면 친구와 내가 각자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잠시 뒤에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사연자님께서는 서울이라는 인프라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살아올 기회조차 갖지 못한 데 대한 아쉬운 감정을 넘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사연자님께서는 단지 지방의 소도시에서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 성장하시는 과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거나 어쩌면 애정에 대한 욕구 또한 채워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비록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올라와 남들처럼 잘살아 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지만, 여전히 시내 한 번 나가기 힘든 곳,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녔던 사연자님의 어린 시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만 같은 좌절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거에 사연자님께 상처 주는 말을 했던 언어치료사는 고향도 서울이고, 명문대 대학원을 나와서 현재도 좋은 직장을 가지고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부족함 없이 산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더 말입니다. 

이렇게 주변에 나를 힘들게 했던 얄미운 사람조차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자연스레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현재 사연자님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더 비교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연자님의 좌절감과 박탈감, 원망스러운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 지역, 성별, 부모님 등등이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결정되는 것들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한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들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잠깐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사과’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나와 친구의 손에 쥐어진 그 사과는 누군가가 쥐어 준 것일 수도, 나와 친구가 각자 농사를 쥐어 직접 수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에는 누군가가 마음대로 내 손에 아무 사과나 올려놓았을지언정, 내가 열심히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고 실행한 이후부터는 내가 수확한 맛있고 탐나는 사과를 직접 내 손에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농사가 잘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 실력 있는 농부의 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시행착오, 성실과 인내를 통해 농부의 실력이 무르익었을 때 자연이 허락하는 좋은 날씨와 맞아떨어지면 그제야 한 해의 농사가 성공하고, 맛있는 사과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들과 절대로 비교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어쩌면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많은 것들과 비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교란, 나보다 좋은 것, 뛰어난 것처럼 항상 위를 보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보다 조금 모자란 것, 부족한 것, 뒤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를 보고 현재의 상황에 감사한 부분은 없는지 만족할 만한 것은 없는지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또 위아래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다각도로 비교해 보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다양한 요인과 특징들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구성됩니다. 사는 곳, 직업, 나이, 성별, 능력, 성격, 취향, 생김새, 꿈, 취미, 특기와 같이 수많은 요인들이 조합되어 유일한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바로 ‘너’와 ‘나’를 구분짓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의미입니다. 그러니 좋은 환경이나 부모님의 능력과 같은 것도 개개인의 ‘나’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인일 뿐입니다. 태어날 때 이미 규정된 것들을 아무리 부정하고 원망해 봤자, 달라지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닙니다. 좋은 환경의 가정, 능력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또 다른 측면에서 결핍이 있어 나와 다른 어려움을 겪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는 자신보다 더 조건이 좋은 사람들과만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평과 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입니다. 아마도 더욱 잘하고 싶고 더 잘되고 싶은 마음에서 의욕이 많이 앞서고, 또 그만큼 노력을 기울여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따른 충분한 성과나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 듯하여 답답한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이나 콤플렉스, 후회의 감정에 갇혀 나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고, 부모나 세상을 향해 원망을 돌리는 것으로는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더 부정적인 사고의 패턴이 반복되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제는 사연자님이 가지고 계신 콤플렉스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삶의 동력으로 삼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나에게는 이러한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시각과 태도로 자신과 삶을 바라보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시각과 태도를 갖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고 계속해서 우울감이 심하고, 무기력해서 무언가 시작할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 상태라는 판단이 드신다면,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어 전문가 분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면밀한 상담을 받으시면서 사연자님의 인생의 중심을 잡아 나가신다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언젠가 세상 그 누구보다 탐나고 맛있는 열매를 수확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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