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2012년에 재수를 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대학 동기 한 명과만 주로 어울리고, 열등감으로 인해 학창 시절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2014년에는 연천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어리바리해서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인간관계에 많이 지쳤던 것 같습니다. 2016년 1월에 제대했는데 제대 당시 후임들이 저를 매몰차게 대했습니다. 2년 동안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대하니 저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대 후에는 친구들과 일절 연락을 끊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이 들었으며, 열등감과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2020년,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는 이때 이후 대학 동기랑도 연락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기업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했는데 일 년 반 가까이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스터디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학벌을 가지고 비웃을 것만 같았습니다. 학원을 몇 번 다니긴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작년 10월에 대기업 사무직 알바를 6개월 했습니다. 그때는 동료랑 제법 즐겁게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올해 4월 퇴사 후 현재 사기업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 이후로 대인관계를 거의 맺지 않았습니다. 전화 통화도 없었습니다. 주로 어머니랑 같이 카페나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주말에는 부모님이랑 외식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 켠에는 부끄러움과 외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친구가 그리웠고 학창 시절, 군 시절 웃고 떠들던 상황이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거리는 많이 멀어졌고, 어색해진 상황이었으며, 만나기도 부끄러웠습니다. 제 처지가 좋지 않아서요. 마마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울하고, 괴롭고, 외로웠습니다.

현재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60통의 원서를 제출했고, 여섯 번의 화상 면접을 보았으며, 두 번의 대면면접을 보았습니다. 몇 번인가 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은 회사 근처에서 면접도 보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어서 회피하는 것 같은데… 나이는 차고, 걱정은 되는데… 자꾸 도망가려고 하니 답답합니다.

저는 명상을 하는데 명상을 하면 명치 쪽이 아픕니다. 스트레스가 올라오는 게 느껴지는데 화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회피성 성격장애 같기도 하고,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주에는 우울하고 자살 충동이 들다가 또 어떤 주에는 멀쩡하고. 친구 없는 생활은 익숙해져서 사회생활이 걱정되지만, 사무직 알바를 할 때는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했고 문제가 없어 보이고….

우울증일까요? 어떤 진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나요? 자존감이 낮아서 나타나는 문제인가요? 정신과를 가는 게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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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의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사연자님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지면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올려 주신 사연글에 근거해 작게나마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취업을 준비 중이신 상황이시네요. 과거 학창 시절에는 열등감으로 인해 교우 관계에서 그리고 군 생활 당시에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신 듯합니다. 또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경험하시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회의감과 배신감을 느끼신 것 같네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때로 의도치 않은 오해가 생기거나 갈등을 겪기도 하고 상처를 받는 일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는 비단 사연자님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상호작용이나 따뜻한 관계, 정서적 교류보다 부정적 피드백이나 엇나가는 관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마음의 문을 닫고, 다시 누군가와 친밀해지기 위해 노력하거나 다가서는 데 주춤거리게 됩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그러한 상태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또 젊은 시절에는 한창 외부 세계나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면을 확장하고, 부대끼며 갈등을 다루어 보면서 성장해 나가는 시기이기에, 계속해서 홀로 고립되거나 외부 세계 혹은 사람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은, 이러한 성장과 능력의 계발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학창 시절에 열등감으로 인해 교우관계를 거의 맺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사연자님께서 열등감에 빠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아니면 오랜 기간에 걸쳐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서 사로잡히게 된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열등감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모자라고 뒤떨어졌으며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열등감은 신체적 · 정신적 · 사회적 문제 등에 따라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의 열등감의 뿌리는 이 중 어디에 가까운지 생각해 보시고, 그 열등감이 과연 근거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오랜 시간 사연자님을 괴롭게 하고 정신을 결박했던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곰곰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과 직관력이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정말 열등감과 외로움의 뿌리가 깊은 분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인식하거나 인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철저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지내시는 분들은 자신의 외로움이나 세상과의 연결을 바라는 욕구조차 자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잘 인지하고 또 그것들을 잘 다루어 내고 싶은 소망이 있는 분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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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한없이 부족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에 한없이 무가치하기만 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사연자님께서는 혹시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강아지 흰둥이가 골목길 담 밑 구석에 눈 강아지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슬퍼하던 강아지똥이 민들레 뿌리에 스며들어 고운 꽃을 피우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모두 다른 외모만큼이나 다른 개성과 성격, 특징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굉장히 소모적일 뿐입니다.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찾아 인생이라는 항로를 여행하는 ‘여행자’라고 본다면, 각자의 여행 경로나 눈에 담은 풍경이 다를 뿐 ‘누가 더 좋은 여행을 했다.’, ‘누가 더 나은 여행을 했다.’를 판가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 눈에 보이는 모습이 우리 개개인의 가치를 멋대로 규정하도록 나둬서는 안 됩니다.

또 세상에는 장점만 있는 사람도, 단점만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사연자님께도 분명 자신만의 장점과 자아의 긍정적인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머릿속에 ‘나만의 장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이 부분을 잊고 지내셨거나 아직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사연자님께 내재한 장점과 잠재력, 가능성들을 탐색하고 더 키워 나가시면 됩니다.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더 이상 확대해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는 연습을 해 보세요. 그럴 때 콤플렉스도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콤플렉스가 더 이상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특성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요. 이것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편하게 대할 수 있을 때 타인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과거에 사람들이 자신의 학벌을 가지고 비웃을까 봐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의 학벌과 관련해 함부로 말하거나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연자님이 아니라 그 사람이 부족한 사람일 겁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겪게 되는 무수한 일들에서 사연자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그릇된 신념이나 비합리적인 사고가 있는지 잘 파악하셔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합리적인 신념으로 대체하는 연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명상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요, 굉장히 좋은 습관이라고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꾸준히 명상을 하시면서 긍정적인 자기암시와 마음챙김을 실천해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 훈련 중에 ‘일상생활 속에서 알아차림’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즉 밥을 먹거나 운전할 때 혹은 목욕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처럼 여러 활동에서 마음챙김 수련을 응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매 순간에서 알아차림 능력을 키워 나갈 때, 특별히 하루 중 인상에 남는 사건, 유쾌하거나 불쾌한 사건 등에 주목해서 기록하고, 생각과 감정, 감각 등을 알아차릴 때 자신의 습관적인 반응 패턴을 이해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점차 수정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 사연자님께서 마마보이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이 과연 근거가 있는 생각인지, 근거가 있다면 그동안 어떻게 부모님께 의지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보다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성인으로서 생활해 나갈 수 있을지 실질적인 대안을 고민해 보고 실천해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는 친구나 또래 관계에 대한 욕구와 그리움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혹시 그동안 보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연락해 보지 못한 친구 분이나 선후배가 있으시다면, 한번 용기를 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또 새로운 또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채널을 통해 새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시도를 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거나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나 깨달음이 열릴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사람들과 조금씩 연결되고, 소통하게 된다면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외로움과 우울함은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는 이와 관련된 뚜렷한 욕구가 있고, 충분히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관계적으로도 확장되고 성장 가능한 잠재력이 있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사연자님의 콤플렉스가 플러스가 되는 시간들로 채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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