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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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입니다. 유독 자기 주관이 뚜렷했던 A는 원하는 전공의 대학에 진학한 뒤 짧게나마 유학을 다녀왔고, 결국 꿈꿨던 분야에 취업해 탄탄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오랜 연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면, B는 그런 A를 늘 부러워했습니다. 부모님의 뜻대로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 진학했던 B는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내고, 평탄하게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할 때쯤 당시 교제 중이던 남성과 자연스레 결혼을 준비했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습니다. 부족할 것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B. 사실 성공한 인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주도적으로 삶을 사는 A를 볼 때면 자꾸만 질투심이 듭니다.

A는 B보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심리학에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기준 중에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자율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자기주도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외부의 권위나 압력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합니다. 결정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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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한 심리학자는 우울, 범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등 정신병리를 가지고 있는 환자 15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일 년간 그들의 삶을 추적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의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삶에 더욱 만족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했으며, 병리 수준도 낮아져 약 복용량이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회피적인 성향을 보인 사람들은 삶의 질이 비교적 낮았습니다. 심리학자는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율성을 삶의 질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성숙하고, 자족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편입니다. 타인에게 신뢰감을 주며, 목표 지향적이기도 합니다. 무리에서 리더가 됐을 때 사람들을 통합하는 데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스스로를 신뢰합니다. 이처럼 강한 ‘자기 믿음’을 바탕으로 업무나 학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목표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목표에 어긋나는 외부 압력을 받았을 경우 저항하고 도전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자율성의 핵심은 ‘개인의 책임감’ ‘희망적인 목표’ ‘자기 수용’ ‘자기실현 및 수완’으로 요약됩니다.

무엇보다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율성이 높을 때 필요, 동기, 선호도, 행동이 일치한다고 인식합니다. 이 네 가지가 일치할 때, 자신이 인생의 감독이자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죠.

그렇다면 자율성은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해 볼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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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자신의 결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비롯된 진심인지 진단해 보세요. 간단한 쇼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행하는 옷을 산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행하는 옷’을 구입한 게 아닙니다. 자신이 유행에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남들과 같은 옷을 입더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결정했다’는 행위 자체를 인식하는 것, 그 선택이 나로부터 비롯됐음을 기억하는 것, 선택의 주체가 ‘나’임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2. 책임 의식을 느끼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자율성이 높은 게 아닙니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인내하고 수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율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도망가지 않고 실수를 인정한 뒤, 이를 만회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유행하는 옷을 구입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입어 보니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쇼핑을 부추긴 친구를 탓하지 않습니다. 결국 구입을 결정한 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본인의 판단에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환불을 하거나,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선물합니다. 기분 나빠하며 옷장 깊숙이 넣어 두는 회피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죠.

 

3. 나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가?

자율성이 높은 자신의 장점뿐 아니라 한계를 알고, 이를 인정합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없다면 하기 어렵습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어울리는 방향으로 나아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키가 작아서 그 옷이 맞지 않았다면 어울리는 척 스스로를 속이는 게 아니라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4. 목표/가치를 향한 행동인가?

삶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자신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행동에 앞서 선행돼야 하는 것이 명확한 목표 설정입니다. 자신의 업무에서 특정한 성취를 이루고 싶은 사람은 눈앞의 유혹이나 일탈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자녀로, 부모로, 직업인으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다면 자책하기에 앞서 한 호흡, 내뱉어 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앞선 네 개의 질문들을 해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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