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심리적 지지 체계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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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사의 사망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세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통계에 정부가 자살 문제에 대한 정책대응을 나서고 있습니다. 커지고 비뚤어진 권리의식으로 인해 여러 감정노동 직군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불안의 씨앗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이 자살 위험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오늘은 정신건강의 위험에 대해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 나눠 봅니다. 

사회적으로 자극적인 사건사고가 알려질 때마다 단일화된 원인에 관심이 모아지곤 합니다. 하지만, 자살을 낳는 요인은 실로 복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부검에 참여해 본 이력이 있는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자살을 부르는 인과관계를 단선적으로 말하기 어렵고, 오히려 개인적인 요인, 가정적인 요인, 경제적인 요인 등이 모두 결합한 사례가 많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살 전조를 예측하는 기술의 개발을 통해 사회적 문제 발생을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과 위험에 대한 적절한 임상적 개입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서 수년 전부터 각광받아 온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인공지능(AI)의 활용입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AI’와 ‘Mental Health’ 관련 키워드를 바탕으로 학술전문 데이터베이스 SCOPUS DB를 통해 각국의 연구 현황을 주제 검색했다고 합니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총 20년간 1607건의 관련 논문이 출판됐는데, 이는 ‘지수함수 형태로 급증하는 추세’라는 것이 연구진의 평입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은 이미 AI의 정신건강 적용 기술, 각종 서비스 개발을 통해 사람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하지요.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를 위한 인공지능 활용 사례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607건 가운데 64건(4.0%)의 논문이 한국 학자들의 논문이었는데, 이는 세계 10위의 성적입니다. 한국의 범정부적 노력은 2018년 ‘제2차 과학기술 기반 국민생활 문제 해결 종합계획’이 수립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스마트 정신건강 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AI를 활용한 자살위험 예측기술, 지능형 정신건강 상담기술, 노인마음 돌봄기술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ICT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과제로 비접촉식 치매 선별기술 과제를 추진했었습니다. 학계와 정부의 노력은 이제 민간 사업자들과 만나고 있는데요, AI가 정신건강에 기여한다는 점은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 사람보다 기계를 편안해 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생리에 기인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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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연구팀은 타인과의 비밀을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연구팀은 아바타 ‘엘리’에게 사람들이 자신의 감춰진 비밀을 털어놓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실제 타인보다 엘리에게 비밀을 말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 결과 탄생한 것이 우울증 치료 챗봇인 워봇랩(Woebot Lab)입니다. 2017년 출시된 워봇은 2년 만에 800만 달러(약 96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한편, 애플은 UCLA와 협력해 스마트폰 또는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우울증 감지 진단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구글은 이미 2017년부터 미국정신과협회와 손잡고 우울증 자가진단 서비스를 선보인 상태입니다.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 병원 역시 AI 기반의 챗봇을 활용해 공황장애 치료 장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AI의 탁월한 능력은 일상생활 중 주고받은 대화나 채팅, 검색의 기록 등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파악하는 것보다 더욱 놀랍게 분석해 내서, 관심사에 정확히 부합하는 영상과 광고를 추천하는 식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음성뿐만 아니라 생각 자체를 알고리즘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마저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AI의 무서움을 불쾌해하는 이들도 많으나, 자살과 정신건강 문제에서만큼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AI는 각 개인의 평소 생활습관, 사용하는 언어, 표정, 행동의 반경과 패턴, 스트레스 수준, 대인 상호작용 빈도 등을 ‘라이프 로그’로서 데이터화해 자살을 예측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욱 꼼꼼한 형태의 알고리즘 분석을 가능케 한 뒤 위험신호를 주변에 발송한다면, 소중한 생명의 상실을 막기 위한 예방책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정서 상태와 갈등, 섭식 특징 역시도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AI의 모니터링과 알고리즘을 의사와 공유하는 등 의료계의 일에 활용하는 것도 시도되고 있지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단일 병원 데이터를 넘어 공유 데이터를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의료진들의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연구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AI가 심리적 지지를 도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정신장애가 있는 개인들은 타인과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점에 집중하여 정신장애 위험군과 주변인들의 정서 상태, 평소 생활, 언어 사용 패턴 등을 학습하고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면,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을 감별해내고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정신건강의 위험을 미리 예측하거나 상대방이 처한 맥락을 이해해 오해를 없애고 원만한 대화를 이끄는 AI 서비스가 조금 더 일상에 들어온다면, AI를 통해 심리적 지지를 받고 의료진들과 보다 원활히 치료 받으며 심리적 지지체계를 만들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 현장에서의 자살 문제와 심리적 지지 문제가 대두되는 오늘날, IT 기술을 통해 보다 건강한 사회의 실현이 앞당겨질 수 있기를 꿈꿔 봅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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