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노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뇌를 모방하며 시작되었다. 딥러닝의 핵심은 뇌신경망의 인지적 학습법을 그대로 차용한 알고리즘이다. 한편, 인공지능은 인류의 난제 중 하나인 정신활동의 비밀을 열어줄 유력한 도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바라보는 뇌신경과학과 인공지능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무척 흥미롭다.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껴왔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을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은 유래 없는 수준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1/3 정도가 기술공포증 (Technophobes) -로봇이나 인공지능 등의 첨단 기술로부터 느끼는 과도한 불안 -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발달로 실직과 경제적 위기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는 지난 세기 초 산업화 때와는 달리 블루칼라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직군에서도 예외가 없다. 2015년에 스티븐 호킹, 빌 게이츠, 엘런 머스크, 노엄 촘스키, 스티브 워즈니악 등 1000명이 공동서한을 발표,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핵무기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사진_픽사베이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큰 불안을 느낀다. 딥러닝 기술은 본질적으로 '불투명성'을 특징으로 한다. 심지어 이를 만든 프로그래머조차 인공지능의 사고 과정을 해독할 수 없는 '어두운 블랙박스'(Dark Black Box)와 같다. 이러한 ‘불가해성’에는 통제 불가능성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이가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알파고 제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제공하는 지식 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더 이상 인간의 지식에 속박되지 않으며,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넘어선 초인공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으로 다가가고 있다. 1950년에 이미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수학자 ‘폰 노이먼’은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을 예견했다. 이는 인간이 만든 기계들이 인간보다 훨씬 똑똑해져서 초인간적 지능을 갖게 되는 시점을 말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이 시기를 2045년으로 예측했다. 애초의 목표와 무관하게 초인공지능은 자기보존(파괴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이나 자원 보유 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유익을 지향한다고 해도 이러한 의도는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자체가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목적 외의 것들에 무관심할 뿐이다.

인공지능이 서로 소통하는 상황은 어떨까? 페이스북이 주최한 인공지능이 탑재된 챗봇(chatbot)의 시연회에서는 시연 도중에 챗봇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대화 내용은 개발자들도 이해할 수 없었고, 당황한 주최 측에서는 황급히 전원을 꺼 중단시켰다. 구글의 인공지능 번역기가 자신만의 중간 언어를 만들어내거나, 앨런 머스크의 인공지능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상황 역시 예측 못한 일들이었다.

 

사진_픽셀

 

인공지능의 확산은 분명한 시대적 흐름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며, 인류가 풀어내지 못했던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를 닮은 낯선 존재의 출현은 아이가 처음 거울을 볼 때처럼 당혹스러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현재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인공지능은 머지않아 새로운 형태의 지적인 개체로 빠르게 진화해 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급격한 변화와 낯선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 인공지능과의 성공적인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우리는 뇌의 인지적 기제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꽤 성공적으로 재현해냈다. 향후 보다 현실적이고 진일보한 인공지능을 구현하려면, 먼저 원본(original template)인 우리 뇌의 기능을 보다 깊이 탐색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간 집중해왔던 인지적 기능 외에 우리의 마음을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을 포함한 다채로운 감정, 공감, 창의성, 공평함과 도덕성이 있다. 길고 긴 뇌신경계의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특질들은 우리 안에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조화롭게 작동한다.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할 때, 진보된 인공지능은 낯선 이방인, 또는 위험한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우리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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