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혼하고 비양육자인 아이 둘의 아버지입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아이들의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아이 엄마는 아이한테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이 된다면서 추가적으로 금전을 요구하였고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더니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아이들에게 저를 자식한테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하는 매정한 아빠로 만드는 등 상황을 안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돈을 보낼 거라는 계획하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돈을 몇 차례 보내 주었는데, 그런 요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나도 힘들다. 도대체 양육비로 주는 돈과 당신이 버는 돈은 어디에 쓰이기에 돈이 자꾸 부족한지 나도 좀 알아야겠다.”라고 물으니, 이래저래 쓰이고 자신도 일을 하고 있어서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시기 때문에 부모님께 월마다 드리는 돈이 있다고 저에게 큰소리치며 볼멘소리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계속해서 돈을 보내주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 양육에 돈이 많이 들고 줄 수 있으면 주는 게 맞겠죠. 그런데 저는 이혼하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고, 아이들과도 떨어져 살면서 깊은 우울감을 느끼며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을 전처에게 보내고 있는데도, 전처는 고마워한다거나 그런 것은 일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지내라.”, “새해 복 많이 받아라.”처럼 인사를 해도 아무 대답도 없고, 오직 돈을 보내달라는 말을 할 때만 연락을 해 옵니다. 사실상 아이한테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고 부족하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양육비는 제가 혼자 대는 게 아니잖아요. 양육자도 양육비를 부담하고, 그렇게 둘이 합한 금액을 양육비로 쓰는 건데 왜 부족한지 모르겠으며, 또한 본인 부모님한테 주는 돈까지 제가 고려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돈을 안 보내면 아이들에게 매정한 아빠가 되고, 돈을 보내면 제가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됩니다. 제가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다 보내고 나면 저는 이혼 전이나 후나 제가 버는 돈은 최소한의 용돈만 쓰고 다 주는 것이거든요. 전처가 요구하는 돈을 안 보내면 그나마 애들을 못 보게 하거나 나쁜 아빠로 만들어 애들과 멀어지게 할 테고, 아니면 양육비증액 소송을 통해서 양육비를 올려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법원이야 아이들이 최우선인 요즘 같은 세상에서 당연히 또 올려 주라고 나오지 않을까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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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그간 힘든 결혼생활과 이혼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고생이 상당하셨으리 짐작됩니다. 한때는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와의 관계나 단란한 가정이 와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자님과 가족 분들에게 나름의 연유와 사연이 있으셨겠지요. 힘든 시간을 잘 버텨 내시고 또 담담히 본인의 고민을 꺼내 놓아 주신 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사연자님을 비롯해서 자녀분들 또한 크고 작은 마음의 아픔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더 이상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없다는 상실감,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자녀들을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비양육자로서 자녀들을 매일은 볼 수 없다는 괴로움과 외로움, 늘 함께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같은 마음의 짐이 사연자님을 짓누르지는 않을지 염려도 됩니다. 하지만, 힘든 이혼 과정을 잘 겪어 내셨듯이 혼자 사는 삶에도 차차 적응하면서 평온을 되찾으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사연자님께서 혼자 사는 삶이 아직은 불편하고 외로운 것처럼, 어쩌면 사연자님의 전처나 자녀분들 또한 남편과 아버지가 부재하는 삶에 적응하는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확한 이혼 사유가 무엇인지, 어떠한 결혼생활과 이혼 절차를 밟으셨는지,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어떠한 소통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결정과 시간이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더 이상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고독한 시간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처럼, 전처분의 경우, 이제는 남편 없이 혼자서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녀분들은 두 부모님과 온전히 함께할 수 없음에 한동안은 공허감을 많이 느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렇듯 가정이 와해되는 과정을 겪으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또 다른 삶의 형태에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얼마간 필요하겠지요.  

 

또한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이렇게 이혼하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혼 후에도 여전히 자녀들과의 관계를 이어 가야 하기에 이전 배우자와의 관계나 양육비 문제, 부모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법원에서 판결한 대로 성실하게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복해서 추가 양육비를 요구한다고 하시니 부담도 크실 테고요. 그렇다고 요구하는 추가 비용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아이들에게 아빠를 매정한 사람으로 인식시키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아무리 사연자님께 정해진 양육비를 받는다 해도 엄마 혼자서 일도 하며 두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꽤 많은 비용과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소요되리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본인 부모에게 들어가는 돈까지 왜 고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처분도 이혼과 동시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아이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육아를 해주시는 대가로 드리는 보수이기 때문에 고려되어야 할 부분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사연자님 입장에서는 이미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요구하는 비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명확히 알 수도 없고, 언제까지 아이들을 볼모로 불시에 추가 비용을 요구할지 몰라 많이 난감하고 답답한 마음일 듯합니다. 두 분 사이에 자녀분들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화를 통해 잘 풀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원하는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참고할 만한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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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현재 사연자님의 전체적인 경제 흐름을 잘 살펴보고 경제적인 계획을 세워 보셨으면 합니다. 연 수입을 비롯해 양육비나 생활비에 들어가는 지출 내역을 바탕으로 소액이라도 꾸준히 저축하시고, 추가 양육비로 줄 수 있는 한계선을 한번 정해 보세요. 예를 들면, 현재 지급하고 있는 양육비 대비 연 10% 정도는 따로 모아 두셨다가 전처분이 추가 비용을 요구할 때마다 무조건 보내 주는 게 아니라, 양육비가 더 들어갈 만한 적합한 사유가 있을 때 지급하는 것이죠. 평소에 사연자님의 경제적 상황에서 크게 무리가 없는 선에서 어느 정도 비축해 두고 여유 자금을 만들어 두면, 추가로 비용 요청이 왔을 때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면서도 자녀분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금전적 지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마음은 정말 주고 싶지만, 여력이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두 번째로, 전처분에게 비록 이혼은 했지만 자녀들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이해타산적이거나 자존심 문제 등을 내려놓고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최선의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협의해 나가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미 자녀분들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다치거나 힘든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비양육자인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한다는 식으로 전남편을 매도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전처분께서는 사연자님께서 이 대목에서 마음이 약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겠지만, 추가 비용을 줄 수 있느냐와 상관없이 당연히 자녀들에게 해서는 안 될 언사일 것입니다. 결코, 자녀들에게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식의 방법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부모로서도 진정 자녀들을 위한 방법으로 행동해 줄 것을 강건하게 요청하셨으면 합니다.   

세 번째는 비록 비양육자이지만 사랑하는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이어 갈 수 있을지 찬찬히 고민해 보시고 실천해 나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혼과 동시에 이러한 고민을 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당장에 사연자님 본인의 혼란감이나 아픔을 회복하기에도 여념이 없으셔서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한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현재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크신 데다가 직접 양육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고 여겨지실 것 같고요.

 

하지만, 이미 부모가 되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당연히 아이들은 ‘돈’으로만 키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비록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관심과 연락을 기다릴 것이고,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표현하거나 어색하고 서운한 마음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부모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항상 자녀에게만은 열려 있고, 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태도와 진심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비록 경제적인 지원을 풍족하게 못해 줄지언정 언젠가는 자녀분들도 사연자님의 진심을 알게 되는 날이 오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사연자님의 관심과 애정을 자녀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실천으로 옮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분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전처분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처분이 양육하는 고생스러움을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현해 주신다면 원하는 경제적 지원을 다 받지 못하더라도 전처분의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이혼과 동시에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이 났지만,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면에서는 말 못할 고충과 노고가 많을 것입니다. 전처분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잘 지내라.”거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형식적인 인사보다는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는 표현이나 양육하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도울 의사가 있다는 의사 표현이 훨씬 더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혼 절차를 밟으면서 많이 지치셨을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한 번의 아픔을 겪으셨지만 마음의 상처를 잘 치유하시고 행복해지시기를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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