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실제로 이혼한 부부들이 나와 결혼생활 기간 동안 서로 못 다한 이야기를 하며 오해를 풀거나 응어리진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며 이혼 후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쪽 부모에게 맡겨져 양육되고 있는 자녀가 주기적으로 다른 부모와 만남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그려지곤 하는데요, 함께 살지 않는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곤 합니다.

이혼을 경험한 부모들은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이후의 삶을 설계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부부간의 불화와 갈등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많이 지친 상황일 텐데요, 만약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이혼 당사자인 본인은 물론 자녀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상처받은 마음까지 돌봐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불안과 슬픔을 이해하며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자신의 아픔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부모의 경우, 미처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이혼까지 오는 동안 자녀들 역시 부부간의 싸움이나 폭언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어느 날 갑자기 한쪽 부모를 선택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해야 했던 만큼 상처받은 자녀들의 마음을 잘 다독이고 안정시켜 주는 것은 역시 부모의 몫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어떠한 심리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지금의 마음 상태는 어떤지 세심하게 파악한다면, 자녀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적절한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Bryner는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이혼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변화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경과 유사한 단계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는데요,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단계로 진행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서 이 단계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거나 모든 단계를 다 거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이 단계를 밟는다고 하니 참고한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부정 단계: 부모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며, 헤어졌다면 다시 합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결합의 공상은 수년간 지속됩니다.

2. 분노 단계: 양쪽 부모와 다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며, 이와 관련해 종종 행동화 문제를 보이기도 합니다. 학령기 아동의 경우 화를 내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3. 타협 단계: 자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변화시켜서 이혼에 의한 상처를 치료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데 학령 전기 유아들의 경우, 특히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 중 한 명이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므로, 부모가 이혼한 것은 절대로 아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님을 잘 설명해 주고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4. 우울 단계: 생활 전반에 걸쳐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나타납니다. 학령기 아동의 경우, 학교생활에서 문제 행동을 나타내거나 어려움을 보일 수 있습니다.

5. 수용 단계: 부모의 이혼이 어쩌면 최선책이었으며, 차라리 같이 사는 것보다 떨어져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인정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됩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아동이나 청소년기, 성인기 자녀에게서 나타납니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 중 본인이 느끼는 심적 고통과 힘든 마음을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비교적 자녀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쉬우므로, 필요한 정서적 지원이나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거나 자신조차 어떤 마음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겉으로는 별다른 동요 없이 묵묵히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아이들의 경우, 오히려 내면의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해 한꺼번에 묵혀 둔 감정의 파고가 휘몰아칠 수도 있으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부모의 이혼이 자녀들에게는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것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처받은 자녀의 마음에 공감하고, 행동의 이면에 감춰진 욕구의 심연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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