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이고 배우자 측에서 아이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혼 소송을 시작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습니다.

아이와 주기적으로 면접은 하고 있지만, 평소에도 같이 살 때처럼 아이와 전화나 문자 등 연락을 자주 하고 싶은데 아이의 태도에도 점차 변화가 오는 게 느껴집니다. 처음엔 배우자와 그 가족들의 눈치 때문에 전화 통화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노력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남자아이이고, 저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니까 딱히 연락해도 별로 할 말도 없고 즐겁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당연히 아이의 매일이 궁금하고, 사소한 이야기라도 정말 하고 싶고 듣고 싶은데 아이를 생각하면 전화나 문자 보내기가 솔직히 눈치가 보이네요.

문자를 보내도 항상 대답은 그냥 "네" 정도가 다거든요. 내색하진 않지만 내심 서운해지기도 해요. 제 입장에서 저는 정말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또한 가정을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을 했지만 상대 배우자에 의해 이런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하고 안타깝네요.

사실상 양육권도 배우자에게 유리한 상황입니다. 걱정되는 건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고 아이들도 학년이 더 올라가고, 사춘기도 오고 하면 점점 더 멀어질 거 같아서 너무 안타깝네요. 아이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 잠이 오지 않아요.

양육자가 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저와 연락하고 만나도록 지도와 배려를 해줘야 하나, 오히려 연락을 안 하고 만나지도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라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사실상 가사상담시에도 얘기는 했었지만 상대 배우자는 그런 일 없다, 본인도 아이들이 자주 만나고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면서 속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고요.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알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야 잠깐 주어진 시간 동안 보고 각자의 말을 듣는 게 다니까요. 이중적 태도에 저만 속앓이를 합니다.

제가 지금의 상황에서 아이에게 자주 연락하고 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아이가 별로 내켜하지 않으므로 가끔씩 연락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입니다.  사랑하는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요. 이혼 소송은 이미 시작된 일이지만, 상처는 오랜 기간 동안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디 이혼의 아픔을 잘 추스르게 되시길 바랍니다.

부모의 안타까움은 이해하지만, 먼저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관계의 기본은 공감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어떤 감정과 생각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이 관계의 가장 중요한 골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지요.

아이의 나이대가 질문에 나와있지 않지만, 부모의 이혼은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가 둘로 쪼개진 것과 같습니다. 몹시 혼란스러울 겁니다. 부모야 ‘단지 떨어져 지내는 것뿐’이라며 아이를 다독이지만, 이혼은 단순히 관계가 깨어진 것 그 이상이니까요.

아이는 더 이상 하나의 가정이 아님에 슬펐다가, 이렇게 된 부모를 원망했다가, 앞날을 알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불안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부모에 대한 원망, 회한, 자책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라요.

심리학자인 홈즈 등이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사건들의 스트레스 지수 순위 중 이혼(2위)과 별거(3위)가 높은 순위를 차지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가정 내 변화는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충분히 흔들릴만한 상황이지요. 아이가 데면데면하게 답을 하는 태도에 서운하기보다, 아이의 입장과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시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의 반응이 차갑고 서운하게 느껴질지라도, 당연히 아이와의 지속적 연락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이 하신 말씀의 맥락을 살펴보면 상대 배우자와의 관계, 이혼의 원인이 되었던 배우자의 행동, 그리고 아이와의 만남을 방해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태도 등이 아이와의 관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아이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감정과 아이와의 관계는 별개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 다 소중한 부모입니다. 아이와의 관계에 상대에 대한 원망, 분노와 같은 ‘때’를 굳이 묻힐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또,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보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면, 둘 간의 관계는 소원해지기 마련입니다. 이혼한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관계를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조금은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대치를 조금만 낮출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에 더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요. 필요 이상의 기대는 더 큰 실망을 부르기도 하니까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상황이 변한 이상 그 안에서 관계의 맥락 또한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아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안타까우시겠지만 분명 아이가 성장하며 시야가 좀 더 넓어지고 이혼 상황에 대해 성숙한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질문자님과의 관계 또한 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성장할 것이고, 부모도 마찬가지로 성장합니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깊게 팬 상처도 시간이 그 틈을 채우기 마련이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이와 부모 모두 그저 인내하며 견디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아이와의 계속적인 접촉은 필요할 거 같네요. 법적으로 보장된 아이와의 시간을 잘 활용하실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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