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어요. 어떤 걸 선택하면 그 선택으로 생겨나는 다른 선택지들이 생기는데, 그 선택지들은 그 이전 선택으로 생겨난 선택인 거잖아요. 그럼 처음에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생겨날 선택지들은 영영 멀어지는 게 되니까… 선택 하나하나가 무서워요. 하나를 선택하지만 더 많은 것들을 잃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식사 메뉴나 옷차림 같은 사소한 선택까지 어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를 하는 장소, 진로, 사귀게 될 사람과 같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선택할 때 늘 어려워요. 지금 제가 한 선택이 아니었다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도 항상 궁금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인생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갈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내가 과거에 해 왔던 선택이 과연 좋은 선택지였을지, 그로 인해 포기해야만 했던 무수한 선택지들을 흘려보냈던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지 등등 사연자님께서는 선택에 대한 고민과 그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해 주셨네요.

사연글에서는 사연자님의 현재 나이나 그동안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들을 해 오고, 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 어떤 정보도 없어서 과연 어떠한 답변이 사연자님께 도움이 될지 저 역시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듯 느껴집니다. 

문득,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혹시 사연자님께서도 이 시를 알고 계시나요? 시인은 노란 숲속에 난 두 길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서 어느 쪽 길로 가야 할지 고민에 빠집니다. 그리고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이 덜해 보이는 한쪽 길을 택하게 되죠. 다른 한쪽 길은 후일을 기약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비록 한쪽 길을 가기로 선택함으로써 다른 한쪽 길을 포기해야 했음에도, 길은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 번 스쳐 지나간 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합니다. 또 언젠가 먼 훗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며 인생에서 선택이란, 삶의 많은 것들을 뒤바꿔 놓을 만큼 묵직한 무게감과 막중한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시적 표현을 통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문학계에서도 명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인생이란 그 누구에게도 한 번뿐인 기회이며,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결코 두 길을 모두 가 볼 수 없고 한쪽 길을 택해야 하며,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결코 되돌아올 수 없다는 데서 예외가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연자님 또한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이 아닌, 이사하게 될 지역이라든지 진로, 연인과 같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앞선 시에 잘 표현된 것처럼, 어쩌면 이러한 결정과 선택들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지대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잠 못 이루며 고심할 만큼 어려운 고민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상하다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듭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이처럼 인생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선택마다 막중한 책임감과 무게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그려 보거나 계획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아 좀 더 좋은 방향과 선택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과거의 경험이나 선택을 곱씹으면서 반성도 하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이나 상상 또한 살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고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기로 앞에서 매번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거나 선택하는 것이 무서워질 만큼 그 무게감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마치 내가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기보다 선택이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하나를 선택하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잃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한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또 다른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내가 포기한 것은, 내가 가져 본 적도 없고 시도해 보지도 않았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기에 내가 잃은 것 또한 없는 게 되는 것이죠.

 

사연자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 합니다.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 온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남성 분은 나와 성격이나 취향이 참 잘 맞습니다. 유머 코드도 비슷해서 대화도 잘 통하죠. 그러나 이성적인 매력이 좀 떨어집니다. 또 다른 남성 분은 나와 성격이나 취향이 잘 맞지는 않지만, 왠지 이성적으로 끌리고 자꾸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죠.

그러나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날 수는 없기에, 나는 두 사람 중 한 명의 데이트 상대를 선택해야 합니다. 한 남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수락하면서, 동시에 다른 남성에게는 거절의 의사 표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한 사람을 선택해 데이트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비록 마음속에서 잠깐의 아쉬움이 스칠지언정 다른 사람에 대한 미련은 그만 깨끗이 털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만약 한 남성과 데이트할 때마다 다른 남성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도 집중할 수 없을뿐더러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몸과 마찬가지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무한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해요. 그러니 내가 포기한 것이나 떠나보내기로 결정한 것에 신경 쓰기보다 지금 나의 선택으로 내 앞에 놓인 여기에 마음을 쏟고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 그 어떠한 선택을 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사연자님께서는 혹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소설을 아시나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라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자정의 도서관’에서 자신이 살아 보고 싶었던 수많은 선택지에 있는 인생을 살아 보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가 되고 싶던 존재가 됐던 삶은 예상대로 행복했을까요? 로라는 결국 어떤 인생을 선택하게 될까요? 여기서는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제가 인상 깊게 느꼈던 두 구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노라는 죽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에 고군분투일지라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조차 아름다웠다.”_ p. 381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이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_ p. 390 

 

어떠신가요? 결국 ‘선택’과 ‘후회’란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인생과 완벽한 선택 또한 애초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보다는 사연자님께서 이렇게 인생의 선택에 관해 신중하게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그동안 사연자님께서 걸어왔던 길과 선택지들이 응당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거나 흔들리기보다 스스로에게 좀 더 확신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껏 그러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앞으로도 사연자님께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하실 때 역시 사연자님께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타인의 기준이나 세상의 잣대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신다면 후회가 덜 남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중요한 결정과 선택을 앞두고 또다시 깊은 고민에 빠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선택으로 인해 사연자님의 삶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지언정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잠깐 후회의 감정을 느끼면 또 어떻습니까. 다시 삶에 집중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동안 사연자님께서 해 왔던 수많은 갈림길에서의 선택과 그 성실한 궤적에는 존경의 박수를, 앞으로의 인생에는 응원의 박수를 힘껏 보내 드립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