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전 글에서 아이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한글을 일찍 가르쳐도 문제가 없으며, 늦을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일찍 가르치면 좋다고 하였다. 늦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말이 늦게 터진 경우, 발음이 나빠서 늦게까지 애기 같은 발음이 남아있는 경우, 주의가 산만한 경우, 한글이 늦었던 가족력이 있는 경우이다. 또, 음소 인식 능력이라고 해서 말소리는 가장 작은 단위인 자음, 모음으로 분리해서 듣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이다. 음소 인식 능력이 부족하면 말이 늦게 터지거나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게 되고 또 한글 배우기도 늦어지게 된다. 발음이 나쁜 경우 혀가 짧아서 그런 게 아니고  아이의 귀가 정확한 발음과 아닌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_픽사베이

 

아이가 학교 갈 때가 되었는데 아직 한글을 다 못 떼서 걱정이라면 다음에 제시한 차례로 아이의 상황을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아이가 자음, 모음 낱자(예를 들어 ㄱ,ㄴ,ㅓ,ㅜ)의 음가(소리값)는 다 알고 있는가? 어머니가 낱자의 소리값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낱자에 대응되는 소리를 다 모르고 있었다. 낱자에 대응되는 소리를 아는 것과 낱자의 이름을 아는 것은 다르다. 'ㄷ'을 보고 /디귿/이라고 읽을 수 있다고 해서 'ㄷ'이라는 자음 낱자에 대응되는 소리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소리는 / /로 표시된다) '돌'이라는 단어에서 'ㄷ'이라는 자음 낱자가 /d/라는 발음 성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석 글자 ‘ㄱ’,‘ㅗ’,‘ㄹ’을 가지고 '골'이라는 글자를 만든 다음에 아이에게 /골/이라는 소리가 나는 이 글자를 /톨/이라는 소리가 나는 글자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어떤 아이는 'ㄱ'을 빼고 ‘ㄴ’부터 하나씩 넣어보면서 답을 찾는다. 어떤 아이는 ‘골’이라는 글자를 다 분해한 후 다시 ‘톨’을 만든다. 

아이가 즉시 찾아내지 못하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ㄱ'부터 차례로 골 놀 돌 롤 몰... 대입해보면서 답을 찾아낸다면 따로 떼서 '톨'이라는 글자에서 /t/라는 발음 성분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나중에 읽는 것은 그럭저럭 되지만 받아쓰기나 작문은 힘들어한다. 매번 글자를 하나씩 대입해서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19개의 자음 낱자와 21개의 모음 낱자에 대응되는 소리를 아는지 차례로 알아볼 수 있다

 

낱자의 소리값을 제대로 아는지 평가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비단어 읽기라는 검사를 시키기도 한다. '쥘쿱' 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전에 안 나오는 단어로 비단어 또는 무의미단어라고 부른다. 아마 누구든 이 단어를 전에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읽어야 할까? ㅈ ㅟ ㄹ ㅋ ㅜ ㅂ 각각 낱자의 소리값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 모두 합성해서 하나의 매끈한 소리로 만들어야 읽을 수 있다. 흔한 단어만 읽어보게 하면 통으로 외워서 아는 것인지 자음, 모음을 모두 알고 읽는지 정확하게 구별할 수가 없다. 난독증이 의심되는 아이들을 검사할 때는‘힐아비지’처럼 흔한 단어와 언뜻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비단어가 사용된다. 검사 결과로 아이를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하나도 못 읽는 경우, 둘째, /할아버지/라고 읽는 경우, 셋째, /힐아버지/라고 읽는 경우, 넷째, /힐//아//비//지/라고 한 음절씩 끊어서 천천히 읽는 경우, 다섯째, 부드럽게 /힐아비지/라고 정확하게 읽는 경우로 분류된다. 

 

사진_https://goonsquad.deviantart.com

하나도 못 읽는 첫째의 경우 한글 미해득 학생로 분류되고 음절 인식에 대한 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할아버지/라고 읽는 아이를 통글자 단계, 영어로는 logographic한 단계라 하는데 글자를 기업체의 로고처럼 통째로 읽는다는 뜻이다. storbucks 든 starfucks든 모두 스타벅스로 읽는다. 이런 학생은 본 적이 없는 단어는 읽지 못한다.

 

세 번째, /힐아버지/로 읽는 학생이 예상외로 많다. 난독증이나 한글이 늦었던 학생이 그러한데 이 학생들은 일단 이 단어가‘할아버지’라는 기존의 단어와 다른 건 안다. 그래서 ‘힐’이란 글자를 보고 /ㅎ//ㅣ//ㄹ/ 소리를 합성해서 /힐/로 읽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 것은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모든 글자를 그렇게 읽었다간 몇 줄 못 읽고 힘들어 나가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추측 읽기'라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절약하는데 뒤에 나오는 ‘아비지’를 /아버지/일 것으로 추측해서 읽는다. 이런 성향은 용언을 읽을 때 더 두드러지는데 ‘공부했었습니다’를 /공부했다/로 추측해서 읽어버린다. 교사나 부모는 아이가 충분히 집중하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정확히 자음, 모음을 이어서 읽는 것이 힘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부했었습니다’를 2-3번 읽어본 사람은 장차 나중에는 자음, 모음 따져가며 이어서 읽지 않고 한눈에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일견 단어(sigh word)라고 하는데 난독증은 일견 단어를 잘 축적하지 못하여 일견 단어가 적어지는 병이다.(영어교육에서 일견 단어는 다른 뜻으로 쓰인다. 자주 나오지만 파닉스 규칙을 따르지 않는 their, what 같은 단어를 말한다.)

 

건강한 학생은 ‘공부했었습니다’를 1-4번 읽으면 일견 단어로 등록할 수 있고, 난독증 학생은 12-16번 정도 꼼꼼히 읽은 경험이 있어야 일견 단어로 등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자음, 모음 낱자에 해당되는 소리를 완전히 아는 상태에서 책을 읽어야만 일견 단어로 등록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곰탕’이라는 단어를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하면 일견 단어가 되는 것이 아니고 ㄱㅗㅁㅌㅏㅇ 낱자 하나하나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알아야만 우리의 뇌는 일견 단어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무작정 책만 많이 읽어주면 된다는 생각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자음, 모음을 모두 깨우친 상태에서 책을 많이 읽어주면 일견 단어가 많이 축적되어 좋은 결과로 이끌 수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주어도 음소 인식이 안되면 자음, 모음을 깨우칠 수 없다.

 

네 번째 경우는 어떤 글자든 정확하게 읽을 수 있으나 속도가 느린 경우이고 다섯째의 경우가 우리가 한글 읽기가 완성된 상태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려면 소리값을 다 알지는 못하는 경우와 소리값을 다 아는 경우인지 아이의 현재 단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일단 소리값을 다 알지는 못하는 경우부터 이야기하겠다. 

소리값도 초성, 단모음, 이중모음, 받침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한글이 늦은 아이들은 초성부터 받침까지 모두 완전하게 모르는 아이들과 초성과 단모음은 잘 알고 받침 중의 몇 가지와 이중모음 중 몇 가지를 혼동하는 아이들로 나눌 수 있다. 두 부류의 아이들은 진도에서는 6개월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초성의 소리도 완전하게 모르는 아이를 어디서부터 가르칠지는 음절 인식 능력이 온전하냐에 따라 나누어진다. 음절 인식이 온전하지 않다면 음절 인식 훈련을 충분히 시행한 후이어서 음소 인식 훈련을 하고 초성의 소리값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음절 인식을 충분히 잘 한다면 음소 인식 훈련부터 하면 된다. 

 

사진_읽기자신감

 

음절 인식의 예를 들면 /자동차/ 를 소리로만 들려준 다음 세 개의 소리로 나누어 보라 하면 /자/ /동/ /차/ 이렇게 3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음절 인식이다. 잘 못하는 아이는 /잦//옹//차/로 잘 못 나누기도 하고 /잦//홍//차/ 또는 /자//공//차/로 조금 다르게 나누기도 한다. 어머니가 '자동차'라는 글자를 한 글자씩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읽어줄 때에도 아이의 귀에는 /자//공//차/로 들리니 글자를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음절 인식이 되는 수준의 아이에게만 글자공부를 시킬 수 있다. 음절 수준이 된다면 좀 더 나아가서 위의 그림처럼 /라면/ 과 첫소리가 같은 것이 /사자/인지 /로봇/인지 아는지 말로 물어본다. /라면/과 /로봇/의 공통적인 앞부분의 소리가 /r/=/ㄹ/라는 인식을 할 수 있어야 'ㄹ'의 소리값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음소 인식이 안 되면 ‘ㄹ’의 소리를 아무리 가르쳐도 아이의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는다. 최근 인공지능에게 읽기를 가르치면서 얻은 연구결과는 음소 인식이 되지 않는 아이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meat라는 단어를 읽을 때 음소 인식이 잘된 인공지능은 m, ea, t에 해당하는 칩만 활성화되는 반면 음소 인식이 부족한 인공지능은 n, ee, ey, d 등 관계없는 칩도 동시에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음소 인식이 부족한 아이에게 우리가 /자동차/라는 소리를 들려줄 때 아이의 머릿속에는 /자동차/,/자공차/,/자홍차/,/자봉차//자동찬/ 같은 소리에 해당하는 뇌회로도 같이 활성화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아이의 평소 언어습관에서도 이러한 사소한 발음실수가 많다. /에어콘 실외기/ 를 /에어콘 시래기/로 잘못 듣고 외우고 있거나, 이문세의 노래가사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 가 /공장으로 갈 수도 있어/로 들리는 예이다. 

 

아래에 음절 인식과 음소 인식 검사와 학습지의 예를 제시한다. 검사할 때 종이나 펜은 필요 없이 오직 입과 귀만 있으면 된다. 검사하는 방식과 훈련시키는 방식은 같으므로 단어의 종류를 임의로 바꾸어 집에서 훈련시킬 수 있으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교재도 몇 종류가 있다. 

 

1. 변별 검사

(1) 음절 변별 검사
"나비, 나방, 다방" 중에서 첫 번째 소리가 다른 하나는 무엇이지요?(정답 다방)
"공장, 한강, 사장"중에서 끝소리가 다른 하나는 무엇이지요? (정답 한강)

(2) 음소 변별 검사
"칼, 컵, 길" 중에서 처음 나는 첫소리가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요? (정답 길)
"학, 퍽, 혹" 중에서 처음 나는 첫소리가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요? (정답 퍽)

 

2. 합성 검사

(1) 음절 합성 검사
/박/소리에 /수/소리를 합하면 무슨 소리가 될까요?(정답: /박수/)
/발/소리와 /짜/소리와 /국/소리를 합하면 무슨 소리가 될까요? (정답: /발짜국/)

(2) 음소 합성 검사
/s/(ㅅ) 더하기 /i/(ㅣ) 소리는 무슨 소리가 될까요? (정답 /시/)
/그/(ㄱ) 더하기/오/(오) 더하기 /음/(ㅁ)소리는 무슨 소리가 될까요?(정답: 곰)

 

3. 분절 검사

(1) 음절 분절 검사
"연기"를 각각의 소리로 나누어 말해 보세요. (정답 연+기)

(2) 음소 분절 검사
"껌"을 가장 작은 소리로 나누어 말해보세요(/끄/ /어/ /음/)

 

4. 탈락 검사

(1) 음절 탈락 검사
"국자"에서 /국/소리를 빼면 어떤 소리가 남을까요? (정답 자)

(2) 음소 탈락 검사
"쇠"에서 /스/(ㅅ) 소리를 빼면 어떤 소리가 남을까요?(정답 /외/)
"꼭에서 /윽/(ㄱ) 소리를 빼면 어떤 소리가 남을까요? (정답 /꼬/)

 

5. 대치 검사

(1) 음절 대치 검사
"파리"에서 /파/를 /머/로 바꾸면 무슨 소리가 될까요? (정답 머리)

(2) 음소 대치 검사
"개"에서 /그/(ㄱ)를 /흐/(ㅎ)로 바꾸면 무슨 소리가 될까요? (정답 /해/)
"굴"에서 /을/(ㄹ)을 /은/(ㄴ)로 바꾸면 무슨 소리가 될까요? (정답 /군/) 

 

사진_읽기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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