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00년경 독일의 고등학교 교사이자 아마추어 심리학자였던 빌헬름 폰 오스텐(Wilhelm von Osten)은 동물들도 수학을 알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와 곰 그리고 말 한 마리를 구입해서 수학을 가르쳐 보았다. 고양이와 곰을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중에 한스라 이름 불인 말은 폰 오스텐을 깜짝 놀라게 했다. 처음에는 칠판에 숫자를 쓰고 숫자만큼 발굽을 구르게 하는 연습을 시켰다. 칠판에 ‘4’라고 쓰면 발굽을 네 번 두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시키다 보니 한스는 덧셈, 뺄셈뿐 아니라 나눗셈, 분수 계산도 할 수 있었고, 날짜 계산도 척척 해내기 시작했다. 폰 오스텐은 한스를 데리고 전국을 다니며 구경꾼들에게 한스의 능력을 선보였다. 처음에 믿지 않던 학계에서도 한스를 이리저리 테스트해보더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빌헬름 폰 오스텐과 한스


독일에서 한스의 명성이 자자해진 지 7년이 지난 후 ‘한스 위원회(Hans commsion)’가 설립되면서 한스가 수학을 하는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비밀의 열쇠는 한스의 눈을 가리면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 한스와 질문자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정답률이 점점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문제를 바꿔친 다음 한스에게 다른 문제를 내면 한스는 자기가 본 문제의 답이 아니라 주인에게 낸 문제의 답을 내놓았다. 마침내 위원회는 한스가 수학을 알아서가 아니라, 주인이(또는 다른 질문자가) 보여주는 미세한 신체의 반응을 한스가 기가 막히게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수학을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훗날 심리학 현상 중에서 연구참여자가 질문에 답을 모르지만 질문자의 미세한 반응을 보고 답을 하는 현상에 대해 ‘영리한 한스(Clever Hans) 현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눈치 빠른 아이는 수학 문제를 풀 때 8을 쓰다가도 어른의 얼굴이 좋지 않으면 금방 9로 바꾸어 쓰면서 자신의 약점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

 

이후로 사람들은 동물이 수를 안다는 얘기를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몇 미국의 연구소들은 동물에게 수를 가르치려 애써봤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독일의 심리학자 오토 쾰러가 동물도 수를 안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대상이 된 동물은 예상치도 못하게 갈가마귀였다. 그는 제이콥이라는 이름의 갈가마귀에게 두 개의 상자를 보여주었는데 그중 한 상자에만 먹이가 들어 있었다. 두 개의 상자 뚜껑에는 규칙성 없이 배열된 점들이 찍혀 있었는데 두 상자 사이에 놓인 카드에도 규칙성 없이 점이 찍혀 있었다. 가운데에 놓인 카드에 찍힌 점의 개수와 같은 개수의 점이 찍힌 상자를 열어야만 먹이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여러 차례의 반복을 통해 갈가마귀는 상자를 열고 먹기를 얻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었다. 2,3,4,5,6개의 점을 구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1950년 대 미국의 메쉬너와 구브레키언은 쥐가 수를 어림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1970년대 후반에는 침팬지가 분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1980년대 교토대 영장류센터의 데쓰로 마쯔자와 교수는 앨리라는 이름의 침팬지에게 1부터 9까지의 아라비아 숫자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성공했다. 십 년이 넘게 걸리긴 했지만 앨리는 이 숫자를 이용해서 물건들의 집합이 모두 몇 개인지 표시할 수 있었고(십진법 이해의 증거) 95퍼센트 이상 정확했다. 앨리의 반응속도를 보면 그가 물체의 개수가 3 이하일 때는 한눈에 그 수를 인식할 수 있지만 그보다 많으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앨리는 숫자들을 크기 순서대로 놓을 수도 있었다. 교토대 팀의 침팬지 훈련능력은 갈수록 발전하여 마침내 2007년 숫자를 컴퓨터 화면에 표시한 뒤, 사각형 표시로 감추고는 작은 숫자부터 찾게 하는 실험을 했다. 0.7초 동안 보여주고 기억했는지 확인하는 실험에서 3마리의 어린 침팬지 가운데 아윰이라는 가장 머리 좋은 침팬지는 숫자를 모두 맞췄다. 반면, 대학생 9명은 모두 실패했다. 엄마 침팬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지만 어린 침팬지는 순간적으로 본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10초 이상 지속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아윰이라는 침팬지가 얼마나 숫자를 잘 다루는지 미국 ABC 뉴스가 인간과 침팬지의 대결이라는 제목으로 방송한 바 있다.
 


이후로 침팬지뿐 아니라 다른 원숭이, 돌고래에게 힘겨운 훈련 과정을 거쳐 수를 가르칠 수 있음이 알려졌다. 하지만 인간은 일정 연령이 되면 불과 몇 달 만에 수를 익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 말도 못 하고 수학을 배워본 적도 없는 갓난아기들은 수를 알까? 이에 대해 2가지의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수감각이 백지에서 시작해서 관찰과 체험활동을 통해서 점차 획득된다는 피아제파의 이론이 있는 반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의 수감각을 타고난다는 이론이다. 최근에는 갓난아기도 어느 정도 수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1980년 펜실베니아 대학의 프란시스 스타키 팀은 16주에서 30주 사이의 아기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말을 못 하는 아이들이 수학을 아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실험방법 중 하나는 같은 장난감을 계속 보여주다가 다른 장난감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전보다 유심히 오래 쳐다본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아기의 주의 지속시간을 카메라로 측정해서 수를 아는지 기준으로 삼았다. 아기는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실험장치를 응시하도록 했는데 처음에는 나란히 놓인 2개의 점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오래 쳐다보더니 이내 주의력이 약해졌다. 약간 비스듬히 놓인 2개의 점을 보여줘도 시큰둥하던 아기는 3개의 점을 보여주자 2.5초까지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2개에서 3개로 바뀌는 것을 알아채었지만 4개는 인지할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3개까지는 인지할 수 있음이 분명했다.
 

사진_유튜브


1982년 미국의 심리학자 카렌 윈 팀은 생후 4개월밖에 되지 않는 아기가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윈은 작은 인형극장 앞에 아기들을 앉혀두었다. 그리고 실험자의 손이 옆에서 나와 미키마우스 인형을 무대에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가리개가 올라가면서 인형을 가렸다. 실험자의 손이 다시 나타나서 두 번째 미키 마우스를 가리개 뒤쪽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가리개가 열렸다. 어떤 때에는 아기가 무대 위에 있는 두 개의 미키 마우스 인형을 보게 되고, 다른 경우에는 가리개가 치워졌을 때에도 하나의 미키 마우스 인형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상황을 제시했다. 후자의 경우에 실험자가 다른 하나의 미키 마우스 인형을 무대 뒤 개구멍을 통해서 보이지 않게 빼낸 것이었다. 스타키 팀처럼 아기의 주의 시속 시간을 체크해보니 마땅히 2개가 있어야 상황에서 1개의 인형만 있는 경우 오랫동안 인형을 응시했다. 아기들은 1+1=2 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옳지 않은 규칙인 1+1= 1인 상황이 주어지자 황당해서 오래 쳐다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기들은 막이 올라간 후 3개의 인형이 있을 때도 무대를 오래 주시하였다. 아기들이 1+1 은 1이나 3이 아닌 2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기들은 뺄셈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무대 위에 2개의 인형을 놓아둔 다음 가리개로 가린 동안 하나의 인형을 치우는 상황을 아기들에게 보여주었다. 가리개가 치워진 후에 무대에 2개의 인형이 남았을 때(2-1=2) 아기들은 인형이 하나 남았을 때보다(2-1=1) 3초나 길게 무대 위 인형을 응시했다.

 

나중에 어떤 학자가 아기들이 수를 몰라도 시각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서 수를 아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이의를 제기했다. 프랑스의 에티엔 쾨칠린은 카렌윈과 같은 실험을 하되 인형을 정지 무대가 아닌 천천히 회전하는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시각적 기억을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시각 기억의 도움 없이도 아기들은 수를 알고 있는 듯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990년대 미국의 토니 사이먼 팀이 밝혀냈다. 막이 오르고 인형 2개가 남아 있어야 할 상황에서 빨간 공 2개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도 아기들은 그다지 무대를 오래 주시하지 않았다. 빨간 공 1개가 남아 있을 때 무대를 오래 주시하는 것을 보아 아기들은 물체의 형태나 색깔보다는 물체의 수량에 먼저 주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는 우리에게 모양이나 크기, 색깔보다 중요한 특성이다.

아기가 수와 연산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1,2,3까지이다. 생후 1년 이하의 아기들은 4,5,6개의 물건을 세거나 비교할 수는 없었다. 성장하면서 어른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학교교육을 통해 4가 넘는 수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관심은 타고난 수감각 외에 이후에 수에 대한 능력을 키우기 어려웠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문자나 학교 없이 원시생활을 계속하는 원시부족 그리고 난산증을 가진 사람이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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