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난산증을 의심하고 진단을 의뢰하기 위해서는 난산증을 의심하게 하는 징후들을 알 필요가 있다. 취학 전 아동이라면 또래보다는 수세기의 발달이 느리다면 의심한다. 7살 유치원 아동 중 상당수는 1부터 100까지도 셀 수 있고 10이 넘는 덧셈을 하기도 한다. 아직 정확한 국내 데이터는 없지만 10까지 세기도 어렵거나 10부터 1까지 거꾸로 세는 게 어렵다면 수세기의 발달이 늦다고 의심할 수 있다. 여기서 고려할 사항은 수세기 활동에 위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냥 물건을 보지 않고 입으로 수를 세는 건 그냥 읊는 수준이고, 눈앞에 바둑돌 12개를 주고 모두 몇 개인지 알아내기 위해 바둑돌과 수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건 보다 윗 수준이다. 더 어려운 수준은 바둑돌이 가득 들어있는 통에서 12개만 달라고 하면 그만큼 세서 줄 수 있는 수준인데 이를 count out이라 한다. 100까지 읊을 수 있지만 일대일 대응으로 세기는 30까지도 채 하지 못하며, count out은 10개도 못하는 아이가 많다. 읊는 능력보다 count out 능력이 중요한데 수감각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 중에서는 계산할 때 손가락을 사용하는 경우 의심할 수 있다. 5 더하기 8을 할 때 손가락 다섯 개를 펴고 또 손가락, 발가락을 8개를 더 편 다음 모두 세서 푸는 방식을 모두 세기 전략이라 한다. 더 발전해서 5부터 이어서 6,7,......,13처럼 세서 풀면 이어세기 전략을 사용하는 학생이고 더 발전해서 5 더하기 8은 8 더하기 5와 같으므로 9,10,11,12,13처럼 풀면 큰 수부터 이어세기 전략을 사용하는 학생이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 큰 수부터 이어세기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면 이후로 수학에서 뒤처지게 될 확률이 높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학생은 모두세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이므로 손가락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게 아니라 이어세기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 이어세기 전략을 가르치려면 8을 7 다음에 나오는 수로만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 8을 1이 여덟 개가 모인 전체로 생각하는 인식의 발전이 필요하다.
 

출처_계산자신감


8을 전체로 생각하는 학생은 위에 나오는 그림을 보고 점이 8개라고 1초 이내에 대답할 수 있으며 점을 하나씩 세는 학생은 2-3초 이상 걸린다. 사람은 타고나기를 4-5개의 점만 한눈에 보고 몇 개인지 알 수 있는데 이를 지각직산(perceptual subitizing)이라 한다. 직산은 세지 않고 한 번에 몇 개인지 아는 능력을 말한다. 네이버에 직산을 치면 검색되는 정보가 거의 없지만 구글에 subitizing이라고 치면 523000개의 정보가 검색된다. 위의 그림을 8개로 알아보는 능력은 개념직산(conceptual subitizing)이라 하는데, 4와 4가 모인 패턴으로 보거나 5와 3이 모인 패턴으로 볼 수 있어야 가능하며 이는 후천적 학습의 결과이다. 어떤 아이는 어른이 알려주지 않아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점점 큰 수를 개념직산할 수 있게 되어 만 6살에 20까지 개념직산할 수 있게 되나, 같은 나이의 난산증 아이는 10도 개념직산하지 못한다.
 

출처_계산자신감


난산증은 학습장애의 일종으로 난독증의 이란성쌍둥이라고도 불리는데, 난독증 학생의 60퍼센트 정도가 난산증을 가지고 있고 난산증 학생의 60퍼센트 정도가 난독증을 가지고 있다. 진단 방법은 난독증과 비슷하여, 첫째, 지능검사를 통해 지능지수가 70 이상임을 확인해야 하는데 모든 영역에서 학습능력이 떨어지면 학습장애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학업성취도가 떨어져 있음을 확인해야 하는데 난독증은 글을 읽는 정확도와 속도를 측정하는 반면 난산증은 한 자릿수 덧셈, 뺄셈의 속도와 정확도를 측정해서 판단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90퍼센트 이상의 정확도와 분당 20개 이상, 고학년이라면 95퍼센트 이상의 정확도와 분당 40개 이상의 속도가 넘는다면 괜찮은 수준이다.

한 자릿수 계산을 잘하면 연산유창성이 좋다고 하는데, 계산할 때 그냥 기억에서 나오는 수준이어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을 수 있어 장차 어려운 수학을 해도 풀이과정에 집중할 수 있다. 연산유창성이 부족하면 계산하는데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심화된 수학을 할 때 계산에 신경을 쓰느라 풀이과정을 잘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읽기가 유창하면 읽는데 에너지를 뺏기지 않아 독해에만 온전히 신경을 쓸 수 있는 것과 같다. 국내에는 BASA라는 검사가 수학의 유창성을 측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감각을 측정하여 유의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음이 확인되면 난산증으로 최종 확진할 수 있다. 수감각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보통 직산과제, 수크기 비교과제, 마음속 줄자의 정교함을 측정하는 어림과제를 실시하는데 국내에서는 전산화 검사프로그램인 CLT-M으로 검사 가능하다.

난산증의 치료는 일찍 발견하지 못할 경우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으며 효과가 충분히 검증된 프로그램도 적다. 미국의 ‘넘버월드’, ‘빌딩블럭’, 호주의 ‘매스리커버리’ 프로그램이 유명하며 국내는 ‘계산자신감’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와 있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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