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세종 대왕의 업적 하면 우선 한글 창제를 떠올리겠지만 측우기, 물시계, 해시계 등의 발명을 후원하고 천문학, 농업, 인쇄 기술 같은 분야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한 것은 세종이 수학을 중요시한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다. 세종실록에 “산수를 배움이 임금에게 필요 없을 듯하지만, 이 또한 성인이 만든 것이므로 이것을 배우고자 한다.”는 말이 남아 있듯이 세종은 정인지를 스승으로 삼아 수학 공부를 했다. 당시 가장 어려운 중국 수학책으로 연립 방정식까지 나오는 《산학계몽》으로 수학을 배웠고, 신하들에게도 수학 공부를 하도록 권했으며 수학 연구를 위해 중국에 유학생을 보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산학(算學)’이라는 말을 널리 써 왔는데 1853년 영국인 선교사 알렉산더 와일리가 서양 수학책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수학계몽’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인 ‘수학’이라는 용어 사용의 시초가 된다. 와일리는 기존의 중국 산학과 구분되는 의미로 수학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 용어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수입되게 된다. 일본에서는 수학이란 용어가 수학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산수(arithmetic)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어오다가 1870-80년대에 이르러 지금처럼 일반적인 수학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바뀌게 되었고 근대화 흐름에 맞춰 교육 제도가 바뀌면서 ‘산학’과 같은 기존 학문 이름 대신 ‘수학’ 이란 명칭이 공식적인 교과목 및 학문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나중에 ‘수학’이라는 명칭을 접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수(數)에 대한 학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수는 수학을 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의 일종일 뿐으로 수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수학은 수가 아니라 패턴에 관한 학문이다. 패턴을 알면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수를 잘 다루는 것만 강조하다 보면 수학이 쓸모없는 학문이라 생각하게 되기 쉽다. 영어 mathematics의 어원은 '배우는 모든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mathemata(마테마타), 또는 mathema(마테마)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number)와는 어원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신 배움, 지식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mathesis(마테시스)란 어원에서 온 것이다.

 

우리 고등학생 중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높게는 70퍼센트까지 될 거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2015년 '한겨레'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미국·일본·싱가포르·영국·독일·핀란드와 한국의 초·중학교 수학 교육과정 및 교과서를 비교한 결과 초등학교 수학 항목 68개 가운데 한국이 6개국보다 빨리 배우는 항목은 평균 23.2개였다"고 보도하면서 수포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쉽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반해 ‘수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인 수학자 폴 록하트는 수학이 대단히 아름답고 재미난 창의적 예술인데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삼으면서 학생들이 아름다운 과목을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음악이 수능의 주요 과목이라면 학생들이 학교에서 음악은 듣지 않고 음표, 조바꿈, 음계, 박자, 화성법, 대위법 같은 기술을 실수 없이 하도록 연습했을지도 모르며, 미술이 주요 과목이라면 그림은 안 그리고 수많은 색깔 이름을 외우거나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게 붓질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며 오늘날 수학교육이 처한 현실을 비판한다.
 

사진_픽사베이


인지과학자들은 수감각(number sense)이 좋은 유아들이 나중에 수학을 잘 하며 수포자가 될 확률이 낮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수감각에서 감각이란 단어는 ‘패션 감각’이란 용어에서 사용되는 ‘감각’이란 단어와 의미가 다르며 차라리 수에 대한 직관 또는 폴 록하트가 말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수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학자들은 숫자를 빨리 쓰고 읽거나 계산을 빨리 한다고 해서 장차 수학을 잘 하게 되는 게 아니라 수천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문자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던 미개인이던 시절에 어느 나무에 열매가 더 많은지 판단할 때 사용했던 원시 수학 뇌의 작동방식을 알고 그 수학 뇌를 제대로 이용하는 아이가 장차 수학을 잘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수학 뇌의 신비를 알아내고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달려들었으며 덕분에 수학 영재를 만드는 비결과 수포자를 방지하기 위해 수학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눈부신 문명을 누리고는 있지만 뇌는 원시인 시절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문자를 배우거나 감정조절을 훈련할 때도 원시 뇌의 작동방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세종이 말한 수학을 공부할 필요성이 성인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라 했는데 바로 그 ‘성인’이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시 호모사피엔스가 아닐까?

 

앞으로 후속 편에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원시 수학 뇌의 작동방식 즉 수감각에 대해 알아낸 사실들을 다루려고 한다. 동물들의 수감각, 갓난아기들의 수감각, 학교나 문자가 없이 수렵채집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아마존 원주민의 수감각, 수감각이 결여된 병인 난산증 환자의 수감각에 대해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의 성과를 정리해볼 예정이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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