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메르스'나 '신종플루'처럼 난독증도 최근 나온 새로운 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난독증은 그 역사가 오래된 병명이다. 난독증은 ‘숨겨진 병’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 원인에 관해서도 좌우뇌 기능의 문제가 있어 글자를 뒤집어 읽는다고 생각하거나 ‘얼렌증후군’처럼 글자가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아직도 난독증을 둘러싸고 모든 언어권에서 존재하는지, 주의력결핍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기다리면 저절로 좋아지는지와 관련해서 너무도 오래와 억측이 많다. 1편에서는 난독증이 무엇인지 그리고 읽기 교육방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난독증을 잘 이해하면 난독증 뿐만 아니라 국어교육과 학습부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난독증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읽기의 단순 이론(Simple View Of Reading)이다. 여기서 단순 이론은 단순화시킨 이론이라는 보통 명사가 아니고 고프(Gough)라는 학자가 제안한 고유 명사이다. 고프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아래와 같은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한다.                    

 

읽기이해력 = 해독능력 × 듣기 이해력

 

어떤 사람이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은 해독 능력 즉 문자를 소리로 바꾸어 그것이 무슨 단어인지 알아내는 능력, 그리고 입으로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이해하는 능력과 비례한다. 이 수식이 이해력이 부족한 학생을 분석하고 분류하는데 중요한 틀이 된다. 예를 들어 읽기이해력이 부족한 A라는 학생을 살펴보자. 대화를 해보면 말하고 듣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책을 읽혀보면 떠듬떠듬 힘들게 읽는다. 해독능력은 책을 소리 내어 읽힐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읽기이해력, 해독 능력, 듣기 이해력 모두 평균이 1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0.7이란 것은 A학생이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또래 학생 평균의 70퍼센트 정도의 읽기 속도와 정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0.7 = 0.7 X 1

A 학생이 책을 읽어도 이해도 잘 못하고 기억도 잘 못하는 이유는 해독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기에 관해 가져왔던 가장 큰 오해가 해독 능력과 듣기 이해력이 서로 엇비슷할 거라는 기대이다. 두 능력은 서로 다른 토대에서 발전하므로 하나는 좋고 하나는 나쁠 수 있다.

 

이번에는 B학생의 예를 들어 보자. 그는 A학생과는 반대로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는 더듬거림 없이 유창하나 읽고 나서 이해를 잘 못한다. 수직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0.7 = 1 X 0.7

B 학생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은 언어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마도 어려서 언어경험이 적어서 어휘력과 배경지식 등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듣기이해력과 해독능력과 서로 비례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C학생의 예를 보자. C학생은 소리 내어 읽을 때도 떠듬떠듬하고 대화를 해보면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표현도 어눌하다. C 학생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능력은 또래의 80퍼센트 정도, 이해력도 80퍼센트 정도라고 가정해보면 

0.64 = 0.8 X 0.8

C 학생의 읽기 이해력은 두 요인이 함께 부정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또래의 64퍼센트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C학생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학습부진 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해독능력과 언어이해력 중 어느 하나만 지도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학생은 D학생이다. 어렸을 때는 책을 떠듬떠듬 읽었지만 이제는 빨리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대화해보면 아주 영리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수적으로 표현하면 소리 내어 읽는 능력은 또래의 80퍼센트 수준밖에 되지 않으나 언어이해력은 120퍼센트로 평균보다 20퍼센트 높다. 좋은 언어이해력이 약한 해독능력을 보상해주어 읽기 이해력은 평균에서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 96퍼센트 정도이다. 

0.96 = 0.8 X 1.2

초등학교 다닐 동안 D학생은 100점도 맞을 수 있고 교과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D학생은 책 읽는 것도 싫어하고 숙제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한다. 부모는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학습의욕이 부족하지 않나 의심한다. ‘게으른 천재’라고 주변에서 얘기하는데 D학생 입장에서는 그다지 싫지 않은 별명이다. 어쨌거나 천재라니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중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상황이 좀 달라지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와는 반대로 공부를 해도 노력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D 학생의 근본문제는 해독 능력의 부족이다. 책을 글자 그대로 읽지 않고 문장의 일부만 읽은 다음 앞뒤 문맥을 고려해서 나머지 부분은 추측해서 채우는 방식 소위 ‘추측 읽기’를 하고 있다. 추측 읽기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하나는 글의 내용을 잘못 임의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남들에 비해 3-4배 이상 집중력이 소모되는 점이다.                          

 

 

우리는 학습부진 학생을 분류할 때 A 학생을 난독증 유형(Dyslexic type), B 학생을 이해부진 유형(과독증)(hyperlexic type)((과독형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부 이해부진 유형 학생에서 이해도 못하는데도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이 있어서이다.), C 학생을 혼재 유형(Mixed type), D 학생을 보상 유형(Compensator type)이라고 한다. 

난독증은 A유형의 학생 중 일정한 진단기준을 만족하는 경우를 말하고 난독증 성향이 있다고 할 때는 A유형과 D유형을 모두 포함해서 말한다.

미국 등 선진 국가의 조사를 보면 학습부진 학생 중 40퍼센트 정도가 난독증 유형, 40퍼센트가 혼재 유형, 20퍼센트가 이해부진 유형인데 우리나라의 조사에서도 유사한 비율이 보고된 적이 있다. 일단 글을 읽어야 이해도 할 수 있으므로 기초학력 부진 학생의 80퍼센트는 글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감들은 하나같이 정책 우선순위에 기초학력 보장을 내세우면서 적지 않은 예산을 기초학력 부진 학생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피 같은 세금과 교사의 시간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진학생을 분류하고 책 읽는 방법부터 가르치는데 투입되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간단하지 않은데 한마디로 오랜 군부독재의 경험 때문이다. 오랜 군부독재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글 가르치는 방법이 잘못 흘러가도록 영향을 주었고 아직도 아무도 나서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사진_픽사베이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아직 우리말 용어가  통일되지 않았지만 나열해보면

(1) 통글자 방식 : whole word approach

(2) 발음 중심 접근법 : phonics approach,  상향식 접근법, 해독 중심, 코드 중심 접근법

(3) 총체적 접근법 : whole language approach, 언어경험 접근법, 의미중심 접근법, 하향식 접근법

 

(1) 통글자 방식은 우리나라 유아들이 한글 공부를 시작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대부분의 유아 한글 학습지는 받침 없는 단어들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다. 최소 단위가 ‘개’,  ‘나비’, ‘나무’ 같은 단어 또는 음절 수준이다. 받침 없는 단어를 잘 읽으면 받침 없는 단어로 넘어간다.

(2) 발음중심 접근법은 우리가 영어 같은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ㄱ''ㄴ'ㄷ' 같은 낱자 및 음소 단위의 교육을 먼저 실시하고 이들의 결합을 가르치면서 점차로 단어나 문장 같은 큰 단위로 나아가는 교육 방법이다.

(3) 총체적 접근법은 ㄱ,ㄴ,ㄷ을 먼저 가르치지 않고 학생의 흥미를 유도하는 글을 먼저 학습해나가는 방식, 다시 말해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내려가는 교육방법이다. 최근 ‘잠수네 영어공부’라고 해서 영어를 할 때도 ABC부터 가르치지 않고 만화영화나 이야기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방식도 총체적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군부독재와 애들 글자 가르치는 게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총체적 접근법’ 이 네이버 사전에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있는 그대로의 전체를 존중하는 언어교육이다. 이것은 종래의 획일적이고 ‘부분적 접근’을 통한 언어교육에 반대하여 등장했다. 또한 실제 생활과는 관련 없이, 교실에서만 사용되는 언어교육에 반대한다. 즉 총체적 언어교육은 ‘언어교육을 위한 언어’에 반대하며 자연스러운 상황에서의 실제적인 언어 사용을 강조하는 것이다. 

 

총체적 접근법은 교사의 일방적인 지도가 아닌 학생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지식을 구성해나가는 방식이다. 학습은 그룹 안에서 의미 있는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동안 일어난다고 믿으므로 의미 있는 글을 함께 감상하고 나누는 과정이 중요시된다. 군사독재 시대의 군인을 연상시키는 엄한 교사가 일방적으로 의미 없는 기호에 불과한 ‘가나다’를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 중심이고 민주적이고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점이 좋아서인지 1997년 참여정부의 7차 교육과정 때 처음으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체적 접근법’이 우리의 학교를 지배한 지 20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총체적 교육법만 사용하면 90퍼센트 학생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약 10퍼센트 정도에서 글을 아주 늦게 배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어권에서는 2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난독증이 심한 경우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약한 난독증을 가진 학생은 총체적 접근법이 아닌 발음 중심법으로 한글교육을 받았다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다문화가정 아동이나 부모가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하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다 보니 불안해진 부모들이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사교육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일부 언론은 ‘자기 나라 문자 교육을 책임지지 않는 나라’라고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농촌 지역이 많아 한글이 늦어지는 학생이 많은 교육청은 ‘한글교육 책임제’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공교육이 책임질 테니 믿고서 학교 들어오기 전에 한글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또 받아쓰기 시험을 없애고 알림장 베껴 쓰기를 없앤다고도 하고 초등 1학년 국어시간에 한글교육 시간을 많이 늘리겠다고도 한다.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은 ‘가갸거겨’ 로 시작하는 발음중심 접근법만이 진짜 한글교육이라고 믿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하던 총체적 접근법도 엄연히 한글교육이므로 지금까지 학생들의 문자교육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비판은 좀 과하다. 다만 취약한 학생의 문자교육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비판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난독증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나라 읽기 교육정책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총체적 접근법은 태생적으로 듣기이해력은 좋은데 해독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어 경험을 통해 문자가 습득되는 것이므로 듣기이해력과 해독능력이 따로 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력부진 학생을 평가할 때도 이해력과 해독능력을 따로 평가하지 않는다. 또 학생이 글을 어느 정도 정확하고 빨리 읽어야 하는지,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1분에 60 단어 이상, 2학년이라면 80 어절‘처럼 해독 능력 기준을 미국처럼 매년 만들고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아이가 키가 크다 작다고 판단하려면 자기 나이의 평균치 자료가 필요하다. 이런 자료가 없으면 읽는 게 빠르다 느리다 교사가 판단할 수가 없으니 난독증 학생인지 판단할 수 없는 구조이다. 

 

총체적 문자 교육 정책이 난독증 학생에게 어려움을 주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난독증 학생을 지도하는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현재 글자를 잘 알지 못하는 학생도 기역, 니은, 디귿부터 차례로 지도하지 않고 긴 글을 그냥 많이 감상하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난독증 학생은 통글자 방식이나 총제적 접근법으로만 배우면도 나비의 ‘ㄴ’과 ‘노래’의 ‘ㄴ’이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난독증 학생은 발음중심 접근법으로 교육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난독증을 가진 학생의 부모들은 교육부의 대책을 요구하지만 난독증 대책을 세우다 보면 총체적 접근법의 근간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난독증과 총체적 접근법은 같은 지붕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사이이다.                       

 

 

위 그림은 미국에서 총체적 접근법과 발음중심 접근법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총체적 접근법에 가깝고 위로 올라갈수록 발음중심 접근법에 가깝다. 파란색은 도시지역이고 빨간색은 시골지역을 나타낸다. 미국도 우리처럼 총체적 접근으로 왔다가 점차 발음중심 접근법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서구 선진국에서는 발음중심법과 총체적 접근법 사이의 오래된 논쟁이 끝났다. 총체적 접근법은 학생들에게 추측 읽기라는 좋지 않은 독서습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으며, 발음중심법으로 배운 학생이 갈수록 책을 더 잘 읽는다. 우리도 이제 발음중심 한글교육으로 다시 바꿀 때가 되었다. 더 미루다가는 다 망해가는 사회주의 제일 늦게까지 붙들고 있는 북한처럼, 다 망해가는 총체적 접근법 제일 늦게까지 붙들고 있는 대한민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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