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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위한 난독증 이야기(2/10) - 다른 나라의 난독증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3.06 07:38

 

[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픽사베이

 

 

2016년 우리나라 학생의 난독증 유병율이 4.6% 정도라는 보도가 있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난독증이 12%에서 높게는 20% 정도까지도 보고되기도 한다. 과연 영어권 나라에는 난독증이 많고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적 한글 덕분에 난독증이 훨씬 적을까?     

            

Reading in the Brain by Stanislas Dehaene, A book published by Penguin Viking, November 16th 2009

 

위의 유럽지도에 표시된 수치는 초등학교 1학년 말에 혼자서 교과서를 읽는데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의 비율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영국이 압도적인 수치인 67%로 1위를 차지한다. 이어서는 덴마크가 29%, 그리고 프랑스가 28%로 뒤를 잇는다. 비교적 쉽다는 독일어와 스페인어의 경우에는 각각 3%와 6%로 못 읽는 학생의 비율이 낮다. 왜 문자마다 배우기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있을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요인은 그것은 문자와 발음의 대응,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낱자와 소리의 대응(letter-sound correspondence)이 얼마나 규칙적이냐에 달려 있다.

 

한글에서 'ㅏ'는 항상 /아/라고 읽지만 하지만 영어에서 'a'는 위치에 따라 /에이/로도 /애/로도 /이/로도 읽힌다. /에이/라는 소리를 쓸 때도 'a'로 쓸 수도 있지만 'ei' 로도 'ay'로 쓰기도 한다. 아래의 그림의 가로축이 이러한 낱자와 소리의 규칙성의 순위를 나타낸 것이다. 큰 나라의 순위만 알아보면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 순이다. 불규칙한 순위는 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읽기 어려움을 가진 학생이 발생할 비율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의 경우 문자의 불규칙 이외에도 가난한 가정이 많기 때문에 읽기 부진학생이 더 많다. 문자 교육을 시킬 때 문자의 특징 외에 사회경제적 환경도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농촌의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학생의 10퍼센트 정도가 한글의 받침을 잘 읽지 못하며 이 수치는 도시지역의 두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Reading in the Brain by Stanislas Dehaene, A book published by Penguin Viking, November 16th 2009

 

위 그림에서 세로축은 문자 체계의 종류를 나타낸다. 한문은 문자 하나가 단어 하나와 대응되는 것에 반해 일본어의 히라가나는 문자 하나와 음절 하나가 대응된다. 유감스럽게도 한글은 이 그림에서 표시되지 않았다.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이 계산해보니 이탈리어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낱자와 소리의 관계가 규칙적인 것은 아니다. 터키어나 스와힐리어가 더 규칙적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낱자-소리 대응이 불규칙한 문자 체계를 가진 나라의 학생에게는 오직 불리함만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규칙적인 핀란드어의 경우 주격, 목적격, 남성, 여성 등 격이 50개가 넘어 독해나 작문을 할 때 매우 불리하다고 한다. 한글의 경우 격은 없으나 용언 활용의 복잡함이 독해나 작문에서 불리함을 준다. 한쪽에서 이점이 한쪽에서는 불리함으로 작동한다. 대영제국의 일부인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다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생활하다 최근에 대영제국으로 합쳐졌다. 최근 웨일스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된 실험은 해독과 이해 영역에서 주고받기의 예를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웨일스 아이들은 웨일스어 문자를 배울지 영어 문자를 배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웨일스어는 이탈리아어처럼 규칙적이어서 그런지 초등학교 1, 2학년 때에는 웨일스어 글자를 배우는 학생에서 영어 글자를 배우는 학생보다 읽기 부진이 훨씬 적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영어 글자를 배운 학생이 웨일스 글자를 배운 학생보다 독해와 작문 능력에서는 훨씬 우세함을 볼 수 있다.                        

 

EBS 걸작 다큐멘터리_문자 1. 위대한 탄생

 

현생인류가 출현해서 음성언어를 사용한 것은 4-5만 년으로 추정되지만 문자는 더 한참 지나서 발명이 되었다. 이전까지 학자들은 중국 한자의 출현 시기를 기원전 2000년 무렵,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도 기원전 3000년이 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1928년 이라크의 작은 도시인 우르크에서 문자 점토판의 발견으로 인류가 만든 최초 문자가 기원전 3300년경에 탄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문자의 모양이 쐐기와 같아서 쐐기문자로 명명되었다. 문자의 발명을 기준으로 인류의 선사시대와 역사시대가 나뉘는데, 쐐기 문자의 발견으로 인류의 역사는 기원전 3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인간이 문자를 사용한 지 5300년이 되었다면 짧지 않은 시간으로 볼 수 있겠지만 진화의 역사에서는 너무도 짧은 시간으로 아직 인간의 유전자에 문자를 읽는 능력은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말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지만 글을 읽는 것은 주변 사람이 가르쳐주어야만 배울 수 있다. 스스로 또는 어깨너머로 글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실제로는 주변 어른이 무의식 중에 글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혼자서는 결코 글 읽기를 배울 수 없다. 그런데 글을 잘 못 읽는 사람들을 세계 곳곳에서 연구하다 보니 신비스러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문자의 종류에 상관없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똑같은 뇌 영역을 사용해서 책을 읽고 있었다.

 

영국에 옴니 그로트(Omniglot)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온라인상에서 언어와 문자의 백과사전 역할을 하는 사이트이다. 180종류의 문자와 500종류의 언어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어서, 세계의 모든 문자는 다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의 문자의 종류는 138종류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중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문자도 65종류나 된다. 종교나 장식용으로만 사용되는 문자가 27종류이고, 현재 사용하는 문자의 종류는 66종류이다.                       

 

Reading in the Brain by Stanislas Dehaene, A book published by Penguin Viking, November 16th 2009

 

너무도 다른 문자지만 같은 뇌 영역을 사용한다면 지구에 사는 사람 누구나 같은 방법으로 책을 읽는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손으로 읽을 때에도 같은 영역을 사용하며, 난치성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해당 영역을 어렸을 때 잘라낸 한 소녀의 경우 반대편 뇌의 같은 지점을 이용해서 글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는 글을 조금 읽을 수 있도록 원숭이를 훈련시킨 다음 MRI 기계로 촬영을 했을 때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뇌 영역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수학을 전공한 프랑스 인지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안은 ‘신경 재활용 (neuronal recycling)'가설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읽기를 하는 데 사용하는 뇌 영역은 원래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 사용하는 영역인데, 이를 재활용해서 읽기를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자동차를 잠깐 보고도 무슨 차인지 알아맞히는 자동차 박사들이나 새를 잠깐 보고도 어떤 새인지 알아맞히는 새 박사들도 같은 뇌 영역을 사용한다고 한다.                       

 

Reading in the Brain by Stanislas Dehaene, A book published by Penguin Viking, November 16th 2009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지과학자 마크 챙기지는 세계의 문자들을 모두 분석한 후 문자들이 9개의 공통적인 모양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가장 흔한 것은 'ㅣ', 그 다음이 'ㅜ', 'ㄴ' 순서이다. 그러고 보니 한글도 그가 말한 공통적인 모양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물이나 얼굴을 인지할 때도 선과 선이 만나서 이루는 접합의 형태를 분석해서 알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첨가한다. 53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세금을 걷기 위해 쇄기 문자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처음에는 밀의 그림을 모양 그대로 그리다가 점차 인간이 얼굴을 알아볼 때 사용하는 뇌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단순한 선과 선의 만남으로 단순화시켜왔다. 똑같은 일이 중국에서도, 남미에서도 발생했으며 이제 서로 교류하며 각자의 문자를 비교해보니 공통점이 많더라는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할 거라는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Reading in the Brain by Stanislas Dehaene, A book published by Penguin Viking, November 16th 2009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이 영역은 좌측 후두엽과 측두엽이 만나는 곳에 있는데 방추체 모양으로 생겼다.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의 뇌를 조사해서 건강한 아이들의 뇌와 비교해보면 바로 이 방추체 영역의 활성이 떨어져 있었다. 글을 잘 읽는 아이들은 잘 읽는 만큼 활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 영역을 문자를 읽는 기능만 전담하는 ‘읽기 센터’라 할 수 있다. 

 

읽기 센터가 있음을 알아낸 후 난독증의 진단과 치료에서는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어떤 진단 방법이 좋은지, 속독법은 과연 도움이 되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고 나쁜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은지 판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mau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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