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감각 발달에서 중요한 연구결과는 남미 아마존 밀림에 사는 문두루쿠 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왔다. 과거 아마존에서 가장 막강한 종족이었던 그들은 아직도 원시 채집 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현재 만이천 명 정도가 생존하고 있다. 2013년 댐 건설로 생존권이 위협받자 브라질 수도 한복판에서 시위를 벌여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수학자들의 관심은 문명과 학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정상적인 어른은 어느 정도의 수학능력을 가지고 있을지인데 문두루쿠 족은 이 의문을 밝혀주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의 언어를 살펴보면 하나, 둘, 셋에 해당하는 단어만 있고 넷 이상의 사물을 일컫는 단어가 없다. 그들이 사는 데는 4 이상의 수를 셀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림과 같은 컴퓨터 화면을 가지고 실험했다. 점 5개를 제시하고 왼쪽 끝은 1개, 오른쪽 끝은 10개인 수직선에서 대략 어디쯤 위치할 것 같은지 표시하게 하는 것이다.(이렇게 수직선에 어림하는 방식은 오늘날 많은 난산증 검사에 도입되어 있다.) 실험 화면 옆 그래프는 문두루쿠 어른과 미국 어른의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 어른은 거의 정확하게 표시했지만 문두루쿠족은 5개를 보고 7에 해당하는 위치에 표시할 정도로 4 이상의 수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또 12개의 점과 14개의 점을 보여주고 어느 쪽이 더 많으냐 하는 실험에서 문두루쿠 어른들은 40퍼센트 정도의 차이가 있어야만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 유치원생들과 비슷한 수치인데 정규 교육을 받은 미국 어른들은 나중에 15퍼센트 정도의 차이도 구별할 수 있었다.

 

난산증 연구의 대가인 영국 UCL교수 브라이언 버터워스에게 어느 날 같은 대학 심리학과 대학원생인 찰스라는 학생이 찾아왔다. 다른 분야는 아주 똑똑하지만 계산은 그에게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라며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한다. 명문대 박사과정 학생이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찰스는 계산에 젬병이어서 물건을 사고 얼마를 내야 할지 거스름돈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찰스를 대상으로 버터워스 교수는 많은 실험을 해 보았고 버터워스는 찰스의 수학 뇌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결론 내렸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은 7과 8중에 어느 것이 더 크냐 하는 문제보다 2와 8중에 어느 것이 더 크냐고 묻는 문제를 쉽다고 여겼고 빨리 풀었다. 찰스는 정반대로 7과 8을 비교하는 문제를 더 쉽다고 여겼고 두 수의 차이가 클수록 문제를 어려워했다. 수끼리의 거리가 멀수록 비교가 쉬워지는 현상을 거리 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마음속에 줄자 같은 것이 있어서 이를 이용해서 수를 비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찰스에게는 거리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마음속에 줄자가 제대로 생겨나지 못해서 수를 비교할 때 2,3,4,5,6,7처럼 말로 세어서 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속에 줄자가 정확하지 못한 현상은 다른 난산증 환자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문두루쿠 어른이나 동물 그리고 갓난아기가 보여주는 수감각은 신비하리만치 유사하다. 그것은 대략 수 시스템(approximate number system, ANS)이라는 뇌기능이 작동한 결과이다. 학교교육을 잘 받고 정확하게 반응한 미국 어른들의 반응은 정확 수 시스템(exact number system, ENS)이 제대로 작동한 결과이다. 대략 수 시스템이 바로 원시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우리가 타고난 수감각이다. 누가 내 몸을 때린다고 생각해보자. 이어서 2배 세게 때리고 4배 세게 때리고 6배 세게 때렸다면 우리는 2배, 4배, 6배 세게 때렸다고 느낄 수 있을까? 우리의 통증 감각은 2배, 4배 정도는 차이를 느낄지 몰라도 6배 세게 때린 경우와 7배 세게 때린 경우는 차이를 못 느끼기 쉽다. 수감각도 이러한 통증 감각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대략 수 시스템은 뇌의 두정엽에 있는 ‘두정열(intraparietal sulcus)’이라는 깊고 긴 고랑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뇌 촬영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두정열이란 곳에 집중해서 뇌 촬영을 해보면 건강한 학생은 계산할 때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었고 난산증 학생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정열은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사후 뇌 부검에서 일반인에 비해 3배가 컸다고 밝혀진 바로 그 영역이었다. 이제 우리는 두정열이 수학 영재와 난산증을 결정하는 부위임을 알게 되었고 비슷한 뇌 부위에 침팬지 수학 뇌도 위치하고 있음도 알아냈다. 대략 수 시스템이 위치한 두정열이 호모 사피엔스가 사용하던 그 원시 수학 뇌이다. 난산증 환자를 잘 치료하고, 나아가 수포자가 생기지 않도록 수학교육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략 수 시스템을 야생마를 길들이듯이 사려 깊고 체계적으로 길들일 필요가 있다.
 

사진_픽사베이


지금 학교 교육은 타고난 수감각을 억제하고 정확 수 시스템만 사용하는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도록 압력을 주면 정확 수 시스템만 사용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대신 12 더하기 5의 답이 20보다 크나 작나 하고 물어보는 질문이 대략 수 시스템을 사용하게 만든다. 물론 대략 수 시스템만 사용해서는 문두루쿠 어른의 예처럼 마음속에 제대로 된 줄자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대략 수 시스템이 약해진 학생에게 대략 수 시스템을 강화하는 활동 없이 정확 수 시스템만 사용하게 만들면 수의 의미를 모르고 숫자놀음만 하다가 수학을 점점 싫어하게 되고 나중에 수포자가 되기 쉽다. 대략 그리고 정확 수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여 두 개의 시스템이 만나서 조화롭게 작동하도록 교육방식을 바꾸는 것이 수학교육의 올바른 개혁 방향이다.

 

미국 뉴욕 빈민층 연구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을 못하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수감각을 발달시키는 자극을 많이 받지 못하여 초등학교 입학 당시 부잣집 아이들보다 수감각이 3년 뒤떨어진 상태에서 입학해서 그렇다는 경악스러운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3년 전부터 수감각을 강화하는 교육을 도입하자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는 가난한 집 학생과 부잣집 학생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후속 연구도 뒤따랐다. 우리 공교육이 지금 가져야 할 시대정신은 경제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막아주는 것이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해지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없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안정성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선거구호 No Child Left Behind를 우리 교육감들도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는 구호로 바꾸어 즐겨 쓰고 있다. 모든 환자를 다 고칠 수 없듯이 모든 학생이 비슷하게 공부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부시 대통령의 구호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단 한 명의 아이도 가난하다고 해서 또 흑인이라고 해서 뒤쳐지지 않게 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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