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리차드 파인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차드 파인만은 단순 계산도 아주 빠른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가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의 한 단골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시간이 늦은 오후여서 그런지 손님은 오직 파인만 밖에 없었는데 한 주판 장수가 식당에 들어왔다. 주판에 관심이 없던 웨이터는 잡상인을 쫓아낼 요량으로 단골손님 파인만을 계산으로 이길 수 있냐고 도전을 걸었는데 주판 장수와 파인만 모두 이에 응해서 대결이 시작된다.

덧셈에서는 파인만이 문제를 채 베껴 쓰기도 전에 답을 낸 주판 장수가 압승을 거두었다. 곱셈에서는 그 격차가 줄어들었는데 결국 최종 승자를 가리기 위해 세제곱근 풀이를 하기로 했고 웨이터가 무작위로 고른 1729.03이라는 숫자의 세제곱근을 구하기 시작했다. 주판 장수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파인만은 몇 초 가만히 생각하더니 12.002라는 답을 쓴다. 완패한 주산 달인이 어떻게 답을 구했는지 묻자 파인만은 나는 12의 세제곱이 1728인 걸 원래 알고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어림해서 답을 구했다고 대답한다. ("파인만 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 中)

 

13세기 초 중세 유럽에 아라비아 숫자가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까지 사용하던 로마 숫자가 더 익숙할뿐더러 아랍이라는 이교도가 만든 숫자이기 때문에 뭔가 사악함이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까지 계산은 많은 훈련을 거친 소수의 사람들만이 로마 숫자와 주판(abacus)을 가지고 할 수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많은 특권이 주어졌다.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하면 주판과 긴 훈련과정 없이도 쉽게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계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바키스트와 알고리스트 간의 시비는 수세기 동안 이어졌다. 과학자들이 보기에 새로운 방식의 우수성은 너무나 확실했지만 보수적인 상인과 은행가, 금융가, 관리 등은 주판을 버리기를 주저했다. 알고리즘 계산을 한 후에도 꼭 주판을 써서 한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늦게까지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의 재무장관을 Chancellor of exchequer라고 부르는데 exchequer는 주판의 별명이다.
 

그레고리아 리슈의 목판화 ‘마르가리타 필로소피카’


아바키스트와 알고리스트의 대결은 어떻게 끝났을까? 모두 알고 있듯이 아라비아 숫자와 알고리즘의 완승으로 끝났다. 목판화 그림에서도 수호성인이 알고리스트를 바라보고 있다. 알고리스트 승리의 원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큰 수와 소수를 다룰 필요성이 커지면서 아라비아 숫자와 십진법이 더 적당했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알고리즘이 누구나 쉽게 계산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고리스트의 승리도 잠시, 승리의 왕관은 새로 나온 컴퓨터라는 계산 기계의 차지가 되었다. 점점 사람들은 골치 아픈 계산을 직접 하지 않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싶어 했고, 사람들의 수감각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수 특정 계급만 문자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난독증이 없었듯이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계산을 할 수 있던 시절에는 난산증이 없었다. 의무교육이 시작되고 누구나 학교에서 알고리즘 계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유독 계산을 배우기 힘들어하는 학생이 나타났을 터이고,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이해할까 연구하다 보니 난산증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지금 기업과 상점은 이미 강력한 컴퓨터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학교와 교사만이 외로이 미래의 알고리스트를 길러내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컴퓨터가 있으니 알고리스트를 길러내는 교육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가 수감각 뇌를 활성화하는 교육을 포기한다면 커서 뛰어난 과학자나 경제학자, 외과 의사가 될 학생을 길러낼 수가 없다. 수감각은 수를 이용해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이며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은 창의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스트의 시대가 끝나고 컴퓨터의 시대가 왔기 때문에 난산증 학생 교육은 전보다 쉬워졌다고 할 수 있다. 계산을 정확하고 빠르게 해야 하는 부담은 줄어든 대신 수감각과 패턴인식능력이 강해지도록 하는 교육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수학을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 누구에게나 이런 방식이 가장 좋은 수학교육일 가능성이 있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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