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이 ‘행복해야 한다’는 경직된 사명감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거창한 행복이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이든, 우리 삶에 있어서 행복은 반드시 쟁취해야 할 목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 벽두부터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 또한 ‘happy new year’ 이지 않은가. 그해의 첫 시작의 순간을 행복이라는 수식어로 감싸 안는다. 우리는 SNS에서 다시 오지 않을 결정적 기쁨의 순간을 공유하고, 사람들은 하트 표시를 누르며 그에 응답한다. 마치 경쟁적으로 서로가 행복함을 뽐내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 행복이라는 따뜻한 단어 뒤에 서로에 대한 질투심이 작동한다. 우리에게 찾아온 순간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다 여기고, 더 나아가 행복하지 않음이 삶의 실패로 귀결되는 흑백논리가 번져 나가는 듯하다. 행복해야만 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삶의 목표 첫 번째 칸에 무심코 적게 되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조금 비틀어 보면 우리 삶의 강박이기도 하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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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를 좇는다. 행복을 위한 십계명, 행복을 만드는 연금술, 행복해지는 방법, 행복, 행복… 시중에는 어떻게 좀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한 나름의 해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행복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는 공허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면 뒤쳐질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참담한 감정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더 큰 고통으로 확산된다. 행복을 위한 방법론이 저렇게 많은데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행복은 파랑새처럼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잘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존재인 듯하다.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외에서, 국내에서 행복의 기원, 성질, 방법론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행복이라는 감정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과 연결지어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있어 왔으며,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도 존재한다.  

행복의 과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책 중 하나가 <행복의 기원>이다.  저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는 왜 행복감을 느끼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행복은 우리 인간의 당연한 목표일 텐데, ‘왜?’라는 질문은 생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간 쌓인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책이 전개해 가는 논리는 명쾌하다. 먼저, 행복이 거창하고도 위대한 그 무엇, 혹은 돈과 명예와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만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행복을 구성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물질적이고 현실적 조건들은 실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데 있어 그리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새로운 것을 얻으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 즉, 객관적 조건보다 주관적 만족감이 훨씬 우선한다. 

또 행복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 목표가 아닌,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도구적 수단일 수 있다는 거다. 행복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사회적 동물로서 기능하게 만들고, 더 매력적인 존재로 가꾸며 결국 더 길게, 더 오랫동안 생존하게 돕는다는 논리다. 행복은 우리 인간의 일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더 거대하고 위대한(?) 대상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보편적인 삶의 목표로 경외시해 왔지만 실은 우리 인간의 생존과 진화를 위한 양념 같은 존재였다니. 굳이 행복을 비틀린 시선으로 보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던 행복의 본질과는 꽤 차이가 있는 시각이다. 모든 가치가 그렇지만, 맹목적 우상화는 우리의 시야를 좁아지게 만드는 법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까운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이라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결론을 남긴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과 매일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지만 그 순간을 행복하다 여기기란 쉽지 않다. 의례적인 행위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고, 때로는 아주 소소한 것이며,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삶 곳곳에서 행복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쩌다 보니 행복한 순간이기를  

높은 산을 오를 때 우리가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높은 곳에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만 생각하다가 발밑에 바스라지는 낙엽, 가끔 귀 밑을 간지럽히다 떠나는 실바람, 눈 앞에 순간순간 펼쳐지는 짤막한 절경들을 쉽게 지나치게 된다는 거다. 대단하고 거창한 목표는 삶의 중요한 방향이 될 테지만, 강박적으로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 이 순간의 의미 자체를 잊어버린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삶이란 먼 허공에 있기보다, 이 순간 바로 내 옆에, 내 팔이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반경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곳곳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항상 번갈아 찾아온다. 또는 지금 이 순간에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는 일들도 만나게 된다. 지금은 끔찍한 일이라 여기지만, 또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기게 되는 경험도 마주한다. 그러니 순간 떠오르는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하고 넓은 시각으로 눈앞의 것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 행복이라는 필터로 경험을 받아들일 때, 이 순간은 행복한 기억으로 나에게 남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들 또한 얼마든지 행복의 옷을 덧입힐 수 있다. 

작고하신 이어령 교수의 저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는 절절한 후회의 장면들이 그려진다. 매일 밤, 그에게는 인생만큼 중요했던 글을 쓰느라 어린 딸의 인사를 외면했던 그 후회의 순간들을. 만약 그 순간의 작은 따뜻함을 알아차리고 몸을 돌려 딸을 안고, 눈을 맞추고, 또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면 얼마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았을까? 우리네 삶에도 의미 없을 것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순간들은 새로운 행복으로 얼마든지 채색될 수 있다.    

 

행복을 좇다 보니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행복한 순간이 다가온다. 행복은 우리가 꼭 따라가야 하는 이정표라기보다, 삶의 순간순간에 포착되는 풍광에 가깝지 않을까. 행복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마주하는 삶의 순간들을 둘러보자. ‘어쩌다 보니’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신재현 원장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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