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명지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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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인데 강박증까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DH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집중하기 어렵거나 충동을 참기 어렵다는 뜻이다. 해야 할 일을 빠뜨리는 실수를 하거나, 생각 없이 행동했다가 후회하는 일이 흔하다. 나이를 먹어도 증상이 지속하여 계속 지적당하면서 살다 보면 많이 나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욕을 먹어도 똑같은 실수를 평생 반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실수하지 않으려고 과도하게 애쓴 나머지 실수는 줄지만, 완벽주의와 강박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집을 나서며 ‘핸드폰이랑 지갑 챙겼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빠뜨린 거 없겠지?’, ‘오늘 할 것 중에 빠뜨린 거 없나?’, ‘아까 내가 한 말을 친구가 오해하진 않았겠지?’, ‘아까 비누칠한 정도면 설마 코로나에 걸리진 않겠지?’ ADHD로 인해 평생 실수와 함께해온 사람에게 있어 걱정과 확인은, 실수를 줄이는 매우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해결방법인 동시에, 강박증이라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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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이 ADHD로 인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나중에 이차적으로 발달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ADHD와 함께 지니고 태어난 기질인지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있었으나, 현재는 ADHD와 불안 성향 모두 기질로 타고난 것으로 보는 입장이 우세해 보인다. 어쨌건 ADHD로 진단된 사람의 약 1/3에서 강박증이 동반된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강박행동의 종류는 확인, 청결, 대칭, 완전, 공격, 성, 종교 등 몇 가지 주제나 테마로 분류해볼 수 있는데, 사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강박의 양상도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가 읽은 글자가 맞는지 확인하느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옷 안의 라벨들이 거슬려서 다 잘라버리기도 하며, 벽에 건 그림의 위치가 맘에 들지 않아 조금씩 이동시키는 일을 1시간 동안 계속할 수도 있다. 벽돌이나 무늬 속 반복되는 패턴을 끊임없이 세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으며, 더러워졌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소지품을 계속 버려야 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자신의 물건을 건드리면 안 되는데 엄마가 자신의 책상 위 마시던 컵을 치웠다고 큰 사고가 날 뻔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든 강박적 행동들은 사실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기 나름대로는 필사적으로 고통을 줄이려는 해결 시도이다. 따라서 모든 강박행동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 원인은 아니다. 사실 이런 강박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속의 찜찜, 답답, 불편, 불안 등으로 표현되는 극심한 고통이다. 이 고통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숨을 쉬지 못해 답답해하며 미친 듯이 손발을 휘젓게 되듯이, 그 순간 다른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강박행동만 하게 만든다. 이 느낌은 공황과도 매우 비슷해서 어떤 행동을 해서라도 이 느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다양한 행동을 시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시도해본 여러 행동 중에 미칠 것 같은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던 행동을 이후에도 반복하게 되며, 그 행동이 그 사람의 강박행동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사실 강박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적당히 있으면 삶에 도움이 된다. 꼼꼼하고 실수가 적다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박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장점보다 단점이 커진다. 감정 기복과 우울감이 심해지고, 분노 폭발하게 되며, 자살 충동도 심해지지만, 강박증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낭비다. 강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안에 떨며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확인하고, 씻고, 걱정하고, 반복하느라 바빠서, 실제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저녁만 되면 극도로 피곤해서 지쳐 잠들게 된다. 사실 이들은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강박질을 한 것이며,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것이다.

강박증을 겪는 이유는 크게 1) 유전적으로 즉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성향을 타고난 점, 2) 환경적으로 가족 내 양육태도, 학교에서의 경험, 자신의 다양한 해결 시도를 통한 학습경험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ADHD인데 강박증까지 동반되는 경우 치료의 원칙은, 각각 별개의 문제로 보고 증상이 심한 것부터 치료하는 것이다. 강박증은 1) 약물치료와 2) ‘노출 및 반응 방지’ 원칙을 적용한 행동치료를 함께 적용할 때 가장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 강박증이 심하면 강박이 생기는 상황을 아예 피하거나,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참다가 결국 강박행동을 해버리고 마는데, ‘노출 및 반응 방지’란 그처럼 강박이 심해질 상황을 피하지도 말고(노출, 직면, 도전), 그 상황에서 그렇다고 강박행동을 해버리지도 말자(반응 방지)는 것이다. 얼핏 보면 무조건 강박을 참는 것과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불안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아주 서서히 강박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이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 치료기법이 해내기만 하면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괴로운 상황에 직면한 채 참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불안이 줄어들 때까지 충분히 견디지 못하고 금방 포기하거나, 아예 그 고통이 너무 두려워 치료를 거부해서, 시작도 못 해보고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반면 약물치료는 찜찜하고 불편한 느낌을 당장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지만, 아무리 오래 약을 먹어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좋아지지 않는다거나,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강박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약물치료를 하면서 행동치료를 함께 하는 경우 강박증의 치료효과가 가장 뛰어나다.

요즘 마음 챙김(명상, 마인드풀니스)이 ADHD와 강박증 모두에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흔히 우리는 문제에 닥치면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대개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최선을 다할수록 더 꼬이고,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아무리 되돌려 해결하려 해도 이미 지난 일은 해결할 수 없으며, 강박적인 찜찜함도 아무리 손을 씻어도 개운해지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도 계속 해결하려고 시도하면, 고통이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해결 중심적인 태도를 카밧진은 하기 모드 Doing mode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가만히 호흡이나 발바닥의 감촉,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서 관찰하기만 하는 태도를 있기 모드 Being mode라고 한다.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나도 그 행동을 해버리지 않고, 가만히 있기 모드를 연습하는 것을 마음 챙김이라고 한다. 마음 챙김은 ADHD에서 돌발적으로 행동을 해버리려는 충동과, 강박증에서 강박행동을 해버리려는 충동 모두를, 당장 해결하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실천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루에 몇 분이라도 수개월간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최근 마음 챙김 요소를 포함하는 많은 치료기법이 개발되어, 그 효과를 입증하는 논문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참고문헌]

Martin L Kutscher. ADHD 부모 지침서. 시그마프레스.

Jon Hershfield, Tom Corboy. 강박장애 극복을 위한 마음 챙김 워크북.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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