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맹세리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사진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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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런데 이거 언제까지 먹여야 하나요?”

지훈이 엄마가 자리에 앉더니 우물쭈물 이야기를 꺼냈다. 지훈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수업 시간마다 짝꿍에게 말을 걸고 부산한 모습을 보여 엄마와 함께 병원에 왔다. ADHD가 진단되었고 몇 가지 평가 이후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지난번 진료에 지훈이 엄마는 약을 먹고 난 후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던 터였다.

분명 아이는 약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엄마의 마음은 또 다른 걱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모라면 누구라도 할 걱정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의 학교생활, 또래 관계에 도움을 받고 있지만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 이러다 성인이 될 때까지도 약을 끊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중독이 되거나 다른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볼 생각들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부터 진짜 치료가 시작된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부모님에게 ‘약을 먹는 동안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설명한다.

 알약 하나로 아이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 행동이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도 ADHD 치료 약물은 효과가 뛰어난 편에 속한다. 약물은 ADHD 치료에 있어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나는 약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늘 강조한다. 특히 약물치료가 주로 시작되는 학령기 초기에 약만 먹어서는 분명히 부족한 점이 있기에 아이의 모든 어려움이 사라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메꾸어 나가느냐가 약을 먹는 기간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지훈이 엄마에게 말했다. “정답은 없지만, 저는 보통 지훈이 나이에 약을 시작하면 최소한 저학년 동안에는 약을 유지해 보자고 말해요. 그러니까 2, 3년은 되는 거죠. 그런데요 어머니, 그 사이에 저희가 약만 먹는 것은 아니고 할 게 참 많아요. 그게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에요.”

 

그러면 투약하는 동안 치료자와 아이, 그리고 보호자는 뭘 해야 할까? 걱정하며 어렵게 말을 꺼냈을 보호자에게 나는 왜 꾸준한 투약이 필요한지, 그렇게 사용하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과학적 근거는 무엇인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일종의 질병 교육이자 정보 제공인 셈이다. 이것을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의학적 교육이라 부른다. 정신의학적 교육을 통해 질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새로운 진단과 투약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환아와 보호자들의 치료 순응도를 높일 뿐 아니라, 아이들의 사회성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보호자들도 있지만, 똘똘한 아이들에게는 직접 이 약을 먹고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나 효과에 대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기도 한다. 무조건 약을 받아 먹기만 하기보다는 자신의 불편감이나 긍정적인 변화를 아이 스스로 인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선생님, 신기하게 그 알약을 먹으니까 글씨가 예쁘게 써져요. 책도 훨씬 빨리 읽고요."라는 아이들의 우쭐한 자랑을 듣기도 한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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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나는 보호자에게 몇 권의 책과 사이트 등을 소개하며 아이의 증상과 관련하여 어떻게 훈육의 틀을 잡으면 좋을지, 문제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관적인 양육 태도를 제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를 함께 고민한다. 아이마다 지루함을 참고 집중을 이어가는 능력이 다르니, 무엇을 어떻게 격려하고 반응해 줄지, 칭찬 포도를 어떤 전략으로 활용하면 좋을지, 문제 행동이 나왔을 때 타임아웃을 활용하거나 어떤 말로 어떻게 지적하면 좋을지에 대해 진료마다 전략을 짜 보기도 한다. 이런 내용은 전문가들이 부모훈련이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진료실에서는 주 1회 간격의 여러 회기로 구성된 정식 세션을 제공할 수 없다 보니 핵심적인 내용을 알려드리고 부수적인 것들은 책이나 매체를 통해 얻어 보시기를 기대한다. 이런 정보 중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을 얼마나 적용해 보고 습관화하느냐가 중요하다. 아이들이 자기 조절력과 건강한 사회성을 키워서 보다 독립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연습이 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간혹 애착 문제나 정서적인 어려움이 동반된 아이들은 놀이치료나, 부모-아이 상호작용 치료를 함께 진행하시도록 권유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아이들 스스로 성장하여 보다 빨리 건강한 기능을 획득하기 기대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투약이 함께 이루어지면 이 연습을 비교적 덜 힘들어하며 이어 갈 수 있으므로 학령기 초기의 투약 시기를 잘 활용하면 보다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약물을 투약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걱정하기보다는 치료자와 함께 작업한 내용들을 아이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소화해 내 것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의 시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도 지훈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훈이가 이 연습이 잘된다면 약을 먹지 않는 날도 약을 먹는 날처럼 제법 물건을 덜 흘리고 다니고 지루해도 할 일을 먼저 끝마치고 노는 습관이 생길 거예요. 아마 그때쯤 되면 저희가 약을 중단해도 될지 상의하게 되겠지요? 저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1. Shin YM, Kim E-J, Kim Y, Bhang SY, Lee E, Lee C-S, et al. The Revised Korean Practice Parameter for the Treatment of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IV) - Non-Pharmacologic Treatment - [Internet]. Vol. 28, Journal of the Kore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Kore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2017. p. 84–95. Available from: http://dx.doi.org/10.5765/jkacap.2017.28.2.84 

 

인하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맹세리 전문의 

맹세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하대학교 병원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석사 박사
인하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강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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