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일단 저는 성인 ADHD 증상이 너무 저와 비슷해서 정신과에 가서 풀배터리 검사를 해 봤는데, 결과는 어떤 질환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근데 저는 차라리 정신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심각한 상태입니다.’라고 해 주시면 솔직히 기분은 괜찮아질 것 같거든요. 근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더 힘들어요. 저는 정말 노력하고 있지만, 제 일상은 무너지고 있는데… 그냥 병 탓 하고 싶은가 봐요.

근데 다른 분들 보니까 처음엔 아니라고 진단받았는데 병원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결국 ADHD 진단을 받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저도 다른 병원에도 한번 가 봐야 할까요? 아 그리고 저는 CAT 검사에서 저하 두개, 경계 하나 뜨긴 했어요. 근데 같은 상태인데 맞다고 하는 병원도 있고, 아니라고 하는 병원도 있는 거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진단받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요?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정신과는 증상을 치료하는 곳이고, 구체적인 어떤 상황에 대해선 상담 선생님과 함께 치료하는 걸로 구분되는 것 같던데 그러면 정신과 선생님한테는 어느 정도까지 질문하고 말씀 드려야 하는건가요? 궁금합니다. 답변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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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스스로 ADHD 증상이 평소 자신에게 상당 부분 해당한다고 생각하셔서 관련 검사를 하고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검사 결과 크게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려 주셨네요.

ADHD의 진단은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관련 검사 결과와 함께 DSM에 근거하여 내려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DSM이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약자로, 미 정신의학협회에서 출판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분류 도구로서, 정신과 환자의 진단 및 연구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진단 도구 중 하나입니다. 정신과 의사 혹은 자격이 있는 상담사 등이 관련 검사 결과와 면담을 통해 진단 기준에 해당하는 증상들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평가하여 진단을 내리는 데 활용됩니다. 따라서 해당 질환과 관련해 겉으로만 보이는 증상이 유사하다고 해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여러 질환이 중첩되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존재하므로 관련 검사 및 환자의 전반적인 삶 전체, 증상의 경과 등을 파악하여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사연글에는 평소 어떤 부분에서 불편감이 크고, 어떤 증상들을 보이고 있으신지 나와 있지 않아 자세한 상담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검사 결과, 약물치료나 집중적인 치료를 요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생활 중에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불편감이 상당하시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더라도 ADHD로 확진될 만큼 증상이 중한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씩 노력하신다면 많은 부분 개선될 수 있으리라 믿음과 희망을 가지셔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사연자님께서 질문을 주신 ADHD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림으로써 이와 관련한 사연자님의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ADHD란,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의 약자로, 적절한 주의 집중력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 증후군을 말합니다. 흔히 소아 때부터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고, 성인이 되며 자연히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지만 일부 혹은 전체 증상이 남아 성인기에도 지속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구체적인 증상은 크게 ‘주의력 결핍군’과 ‘과잉 행동군’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주의력 결핍으로 인한 증상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업무 수행 및 업무 완결의 어려움, 해야 할 일의 망각,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대인관계 문제, 계획적인 일상생활 관리의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 ‘과잉 행동의 증상’으로는 정서 및 행동 안정의 어려움, 과소비,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알코올이나 담배를 비롯한 물질 남용, 게임 중독, 사직이나 이혼 등 충동적인 중대사 결정, 법규 위반 등이 있습니다.

ADHD의 경우 여러 기분장애, 불안장애 등 타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질환들로 인한 증상이 ADHD의 증상과 부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보다 자세한 이전 증상의 경과, 현재 발현되는 증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등이 필요합니다.

어떠신가요? ADHD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셨을까요? 사연자님께서 생활하시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나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시는지 사연을 통해서는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는 보통 성인 ADHD 환자들을 위한 인지행동치료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불편감과 연관되거나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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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객관적인 시간 인식의 필요성

일부 ADHD 환자들은 소요 시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 마감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류를 작성할 때 최소한 4시간은 걸리는데 2시간 만에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다시 말해, 지루한 일은 실제보다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일을 할 때 실제 얼마나 걸리는지 예측을 하고 실제 시간과 차이를 비교하는 객관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2. 규칙적인 계획 세우기

일상 행동 패턴에는 규칙성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출근하여 일을 시작합니다. 일을 할 때는 주 단위, 월 단위, 분기별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이 있습니다. 퇴근해서는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잠이 듭니다. 업무 중에는 단순하고 일정한 패턴을 세워야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어떤 ADHD 환자분들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나 이내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혹은 몸이 지치고 힘들 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 즐거운 일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집중력이나 컨디션이 좋을 때, 동기가 높을 때는 복잡하고 평소 꺼려지는 일들을 시도해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일을 하다가 힘들 경우에는 쉽게 포기하지 말고,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도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업무 중 실패했을 경우에도 자책, 자기 비난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충분한 휴식을 가진 뒤에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거절하기와 일의 우선순위 정하기 

일부 ADHD 환자분들은 거절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혼자 모든 일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일이 점차 쌓여서 정신이 없고 마감 시간을 넘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어떤 환자들은 일에 대한 순서 개념 없이 상황 혹은 순간에 즉흥적으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이런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일의 우선순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에 사람에 따라 효율성, 실행 가능성, 개인적인 목표, 가치관 등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업무의 중요도와 시간의 긴급성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성(+), 긴급성(+) → 중요성(-), 긴급성(+) → 중요성(+), 긴급성(-) → 중요성(-), 긴급성(-)의 순서로 일을한다면 좀 더 효율적이고 실수를 줄이면서 일 처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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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깔끔하게 정리하기 

많은 분들이 정리하기를 힘들어합니다. ADHD 환자분들은 특히 주변 공간을 잘 정리하지 못해 힘들어합니다. 정리를 잘하는 가장 좋은 습관 중에 하나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즉시 버리는 것입니다. 안 입는 옷, 오래된 종이 서류 등을 모아두는 이유는 첫째로 지금 당장 하기에는 귀찮고, 둘째는 언젠가 필요한 순간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 년 내에 입지 않은 의류는 다시 입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정말 중요한 서류는 파일에 정리해 체계적으로 분류해 놓으면 나중에 찾기 위해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고, 공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옷이나 가전제품의 경우 보관 장소를 명확하게 정하고 사용 즉시 제자리에 놓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매일, 매주, 매월 일정한 시간에 정리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앞서 제시한 방법들 중에서 사연자님의 일상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적용해서 한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사연자님께서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정신과 의사에게 어느 정도까지 질문하거나 오픈해야 할지 문의를 주셨는데요, 일반적으로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가지신 분들 중에서도 반드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거나 정신질환이 중증이신 분들께서 많이 정신과에 방문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주기적인 상담이 가능하지만, 증상은 다소 약하더라도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상담과 심리치료가 필요하신 환자들의 경우나 심리상담을 함께 병행하면 효과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어떤 질환명에 속하는 환자 분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응어리진 심리적 불편감이나 생활하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어서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담당의 분께 허심탄회하게 질문하고 말씀해 주셔도 괜찮겠습니다. 환자에 대한 비밀 보장은 의료진의 의무 사항이기도 하니 이 또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잘 해소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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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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