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재형씨는 며칠 전부터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이 스치듯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거든요. “재형씨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타입이야.” 하는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그간 팀장님이 자신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정말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뒤로는 매번 팀장님께 보고서를 올릴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주눅이 들고 또 식은땀이 나곤 했어요. 가끔 하는 잔소리, 혹은 조언들도 가시처럼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잠시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덜컹, 마치 죄를 지은 듯 불편했습니다. 퇴근 하고 집에 와서도,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말에도 내내 상사의 미움은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직장부터, 첫 번째 단추를 잘못 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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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형씨와 같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은 몹시 불편합니다. 원시 시대의 우리 조상에서부터 현대사회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감각은 탁월하게 발달해 왔습니다. 아군과는 연대하고, 또 적은 경계해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는 과거나 현재에 모두 중요한 덕목입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 감각은 DNA에 각인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졌을 겁니다.

인간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며 인간들은 다양한 층위의 관계에 얽혀 갑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아군과 적군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타인과 나 사이의 복잡한 감정들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내 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질투와 같은 감정이 끼어들고, 타인에 대해서도 불편함, 증오, 미움과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느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하고도 다양한 감정들 사이에서도, 아군이 아닌 타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본능적인 공포를 작동시킵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죠.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그리 끔찍한 걸까?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키의 절반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도, 나를 둘러싼 이들의 칭찬이 마음을 채우고, 우리를 성장시켰습니다.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사는 느낌은 우리 삶에서 당연하고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타인의 미움은 그 당연함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는 큰 사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진 듯 큰 좌절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끔찍한 걸까요? 타인의 미움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를 싫어해? 대체 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하며 초조, 불안해하는 마음이 대다수가 경험하는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완전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나를 싫어한다고? 그럼 할 수 없지 뭐. 나도 너 싫어.”라고요. 물론 후자 쪽의 반응도 썩 부드럽진 않지만, 극단적인 두려움을 벗어나면 반응의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즉,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닙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나의 상처의 크기가 좌우된다는 말이지요. 타인의 미움이라는 막연한 공포에서 나를 건져 올리려면,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정말 끔찍한 일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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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의 1 법칙, 내 삶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가

미움에 대한 시야를 좀 더 넓게 확장해 볼까요? 이 세상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글을 쓰는 저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미움의 대상입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는 없습니다. 선하고 착한, 인류를 위한 봉사가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는 이들에 대한 훈훈한 기사에도 악플은 달리기 마련이니까요.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미워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안타깝지만, 너무나 확실한 명제입니다. “인생은 고해(苦海)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리 삶은 끝이 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흘러갑니다. 고통이 삶의 디폴트(default)일지도 모릅니다. 그 고통 안에는 타인의 미움도 속할 테고요. 그 누구도 나를 싫어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사랑과 인정이, 우리의 정상적 삶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세상의 사람들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봅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세상의 3분의 1이라 합시다. 나머지 두 조각 중 하나는 나를 좋아하고 나와 잘 통하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봐야 합니다. ‘과연 나는,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무한 동력 기계가 아닌 이상, 나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과연 당신은 그 에너지를 어디에 쏟고 있나요? 글의 서두에 나온 재형씨처럼,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전전긍긍하며, 소중하고 아까운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를 향한 미움을 붙잡고, 거기 머물러 있지 말아요. 

삶의 고통은 운전하다 일어난 접촉 사고와 같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때에 우리를 덮치곤 해요. 하지만 우리는 그 사고를 매일, 매 순간 생각하며 거기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고에 대해 보험회사에 빨리 연락을 취하고, 사고를 수습한 후 그 뒤에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는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이 사고를 대하는 암묵적인 규칙입니다.

타인의 미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굳이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면 나를 거쳐 지나가는 작은 사고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불편하지만,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붙잡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아야 해요.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신재현 원장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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