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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만 타면 두려워요 - 비행공포증과 공황장애신재현의 <공황장애 알아보기> (14)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9.11 09:57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A씨는 직장에서 해외 영업 일을 담당하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비행기를 자주 타야 하지만, 공항으로 갈 생각만 하면 두려워진다. A씨가 가진 두려움은 3년 전에 시작되었다.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던 A씨는 귀국 전날 즐거움에 취해 새벽까지 술을 잔뜩 마신 뒤 아침에 피곤한 몸으로 겨우 짐을 꾸려 공항으로 향했다. 급하게 탑승 절차를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에 올라 좌석을 찾아 앉는 순간, A씨는 갑작스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답답함은 이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으로 바뀌었다. 물을 마셔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고, 급기야 심장이 터질 듯 가슴이 뛰면서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이미 이륙했고, 창과 문은 모두 닫힌 상태. 순간 A씨는 비행기 안에 공기가 통하지 않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금세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을 가라앉힐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내에서 닥터 콜을 부르자, 승무원 두 명이 A씨를 부축해 바닥에 눕혔다. A씨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살려…… 주세요…….”

A씨의 증상은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됐다. 그 후에도 5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시간 내내 탈진 상태는 계속되었다. 5시간 동안이나 언제 또 같은 증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어졌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A씨에게 비행기라는 공간은 끔찍한 악몽이 되어버렸다.

A씨는 출장을 갈 때마다 망설여졌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장거리 출장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꼭 필요한 출장 건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바람에 인사 고과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느낀 공포감이 결국 A씨의 삶에 큰 상처를 낸 셈이다. 
 

사진_픽셀


공황발작, 흘러넘치기 직전의 물그릇 

A씨가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 그리고 심한 공포감을 공황발작(panic attack)이라고 한다. 대개 첫 공황발작은 몸과 마음이 취약해져 있는 시기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피로해져 있거나, 심리적인 압박감이 심할 때 주로 발생한다.

공황발작이 일어날 당시의 몸과 마음은 마치 ‘물그릇에 물이 가득 담겨 흘러넘치기 직전의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물이 가득 찬 그릇은 조금만 ‘툭’ 건드려도 금세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이전에는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일상의 자극들에도 쉽게 영향을 받아, 공황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신혼여행 막바지의 피로감과 과음 탓에, A씨의 그릇은 언제라도 흘러넘치기 직전의 상태였을 것이다.

공황발작은 몸 전체에서 나타나는 반응이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가슴이 뛰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며, 과호흡이 생기고, 몸 전신에 식은땀이 나는 동시에 몸이 떨리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다. 증상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신체 증상은 공포감까지 유발한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거나, ‘기절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 식의 공포감 말이다. 비행기에서 느꼈던 ‘공기가 통하지 않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처럼, 특정 장소에 따라 공포감의 구체적 양상은 달라지기도 한다. 

 

특정 장소에 대한 공포감, 뇌가 열심히 일한 탓?

어떤 장소에만 들어서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곳, 엘리베이터 안, 영화관 가운데 좌석 등이다. 사람마다 불편한 장소는 다양하지만, 그 양상은 비슷하다. 특정 장소에 있을 때 생기는 심한 공포감을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라고 한다. 사실은 장소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관 가운데 좌석은 영화 감상을 위한 최적의 장소이며, 비행기 안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설렘이 느껴지는 최고의 장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특정 장소에서만 유독 힘들어하는 걸까? 이는 우리의 뇌가 나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의 뇌는 처음 겪어본 심한 공포감을 비행기라는 장소와 연결했다. 공황발작이 일어난 순간의 끔찍함은 비행기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인간의 뇌가 ‘위험을 회피하고, 개체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신호가 발생할 수 있는 장소는 뇌에서 위험한 장소로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저장한다.

본능적이라는 말은 정밀한 정보가 조금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우리 뇌가 세부적인 상황을 다 따져서 위험 여부를 판단한다면, 우리는 이미 위험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위험과 안전이라는 영역에서만큼은 뇌가 조금은 성급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무서운 사자가 바로 코앞까지 왔을 때라야 비로소 알아보고 도망가기보다는, 멀리서 사자 비슷한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부터 미리 경계하고 도망가야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이치다. 

그렇게 공포감과 특정 장소가 뇌 안에서 결합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위험한 장소에 가까워지는 순간부터 뇌에서 온 전신의 감각을 이용해 경보를 울린다. 즉 A씨가 비행기만 보면 거부감이 생기고, 나아가 비행기에 대해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면서 회피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A씨의 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는 탓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 칼럼에서 계속하겠지만, 비행공포증,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등 여러 장소에 대한 공포증 모두 이러한 속사정을 가지고 있다. 장소에 대한 이와 같은 공포증은 공황장애에서 흔히 동반되는 괴로움의 한 가지 형태다. 

 

비행공포증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비행공포증과 공황장애가 동반될 때도 치료를 관통하는 원칙은 하나다. 바로 자신의 증상과 상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현실적인 측면을 알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갑자기 나타난 증상이 내 몸에 엄청난 큰 병이 생긴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취약해져서 생긴 증상임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객관적으로 알게 된다면 증상의 ‘불편함’이 ‘위험함’으로 번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증상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더라도 공황발작으로 결코 숨이 막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공포감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알아차림을 바탕으로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비행기를 비롯한 여러 교통수단에 직면하는 경험을 늘려나갈 수 있다면, 비행공포증은 나아질 수 있다. 알아차리고, 불편함에 직면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인지행동치료(CBT)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비행을 앞두고 오는 심한 불안감은 약을 통해 가라앉힐 수 있다. 특히 비행에 국한된 불안 증상이라면 필요한 때에 사용하는 약물치료만으로도 경감되는 경우가 많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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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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