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박증’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결벽증’은 혹시 들어 보셨을까요? 

둘 다 일상생활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단어입니다. 책상 위의 물건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일렬로 나란히 세워야만 하는 친구,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얼른 다시 정렬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친구, 혹은 방바닥에 먼지 한 올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얼른 치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친구를 보며 사람들은 흔히 “야 너 그거 강박증이야, 그만 좀 해.”라며 타박하곤 합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결벽증이 있다는 연예인의 집안을 보여주며 패널들이 놀림거리로 삼기도 합니다. 식탁에 국물을 튀기며 그걸 못 견뎌 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지요. 

그러면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강박과 결벽을 모두 정신질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요? 모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일까요?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쉬이 웃어넘기는 것일까요? 우선 자꾸 확인하게 되고 무언가에 자꾸 집착한다고 해서 무조건 강박장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깐 생겼다가 저절로 사라지거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정도의 강박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장애’가 있다고 이야기하려면 그 강박 때문에 일상생활에 중대한 지장이 생길 정도여야 합니다. 혹은 본인이 느끼는 괴로움이 너무 심해서 치료 받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수준의 강박, 그러니까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강박이 생각보다 흔하다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강박장애를 한 번이라도 앓게 될 통계적 확률은 2~3%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코 낮지 않은 수치입니다. 실제로 강박장애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는 환자분들의 진단 중 네 번째로 흔한 질환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흔하다 보니 더 그 위험성과 치료 필요성이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상당한 수준의 강박증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변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놀림거리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거 때문에 정신과를 가진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강박증이란 무엇인지, 왜 생기는지, 또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아볼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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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강박증은 ‘강박사고’와 ‘강박 행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강박사고를 Obsession, 강박행동을 Compulsion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강박장애는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라고 부릅니다. 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강박’이라는 같은 단어로 불리다 보니 혼선이 있을 수 있지만, 강박증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강박장애 환자분들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둘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강박사고에서 강박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강박증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박사고’는 ‘반복적이고 침습적인, 억누르기 힘든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침습적이라는 것은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 생각이 머릿속을 침범해 온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은 ‘떠오른다’라고 표현하지요? 하지만 강박사고는 그걸 ‘침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원치 않는데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박사고는 대부분 ‘…해야만 해.’라는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을 씻어야만 해.’라는 생각, 그리고 그 기저에는 ‘손이 깨끗해야만 해.’, ‘손에 찝찝한 느낌이 없어야 해.’라는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박행동’이란 ‘반복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강박행동은 원치 않는 강박사고 때문에 발생합니다. ‘손을 씻어야만 해.’라는 원치 않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서 괴롭고 불안해지면, 결국 손을 씻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 행동을 하면 일시적으로 불안감과 괴로움이 가라앉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이런 행동이 습관화되면서 완전한 패턴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혹은 강박행동이 일종의 징크스 같은 개념으로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매번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크게 일을 그르칠 것처럼 불안하니까 자꾸 반복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이 그렇듯, 강박증 역시 그 원인이 완전히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론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뇌신경구조 자체의 기질적 문제에 대한 관점이 가장 주목 받고 있습니다. 강박장애와 가장 연관이 깊은 뇌 부위는 기저핵이라는 부위입니다. 기저핵은 신체 움직임을 적절하게 시작하고 유지하도록 해주는 중요한 부위입니다. 또한 습관 행동과 무의식적인 행동 같은 것을 관장하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만질 때에 명령을 내리는 뇌의 부위는,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도록 명령하는 뇌의 부위와 다릅니다. 둘 다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은 오른팔 근육의 움직임이지만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다른 것이지요. 이 중 후자의 움직임,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적 움직임을 기저핵이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저핵에 문제가 생기면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조절하는 데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팔다리가 무의식적으로 마구 움직이는 무도증(Chorea) 같은 질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무도증이나 이상운동증 같은 기저핵 질환 환자들에게 강박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강박장애에서는 기저핵이 뇌의 다른 부위들로 연결되는 회로에 문제가 생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찝찝함과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뇌의 피질,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하는 뇌의 피질. 이 두 가지 영역이 바로 그 부위들입니다. 원래는 이 두 피질들 사이에서 기저핵이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주변의 오류나 문제점을 자동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무의식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박장애에서는 이 회로가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활성화되곤 합니다. 잘못된 신호가 제대로 제거되지 못하고 빙글빙글 그 영역들 사이를 맴돌며 되돌아오게 됩니다. 계속해서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고, 어딘가 잘못되어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 느낌들이 습관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도록 자꾸만 자극합니다. 그래서 뭔가를 끊임없이 확인하거나, 씻거나, 정렬하거나 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동의학적 관점에서는 강박행동이 불안감을 줄여주기 때문에 강박행동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강박사고는 대부분 원치 않는 생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을 불안하고 찝찝하게 만듭니다. 현관문을 잠갔 던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침범해오면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계속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직접 가서 현관문을 확인하고 오는 것입니다. 잠긴 현관문을 확인하는 그 순간은 잠시 불안감이 사라집니다. 뒤돌아서면 곧바로 다시 불안해진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면 방금 전에 확인했음을 알면서도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현관을 확인하러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하는 강박행동은 계속 일종의 보상을 받는 셈입니다. 행동을 할 때마다 불안감이 사라진다는 보상 말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보상을 통해 강박행동이 점점 더 강화되고 습관이 되어 강박장애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박적인 행동이 점점 조건화되는 셈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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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신역동적 분석에 따르면, 강박장애는 과도한 초자아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기도 합니다. 초자아는 우리 마음속에서 ‘…해야 해.’ 혹은 ‘…하면 안 돼.’ 같은 규칙을 외치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양심이자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내면의 규범이 곧 초자아입니다.

정신역동 발달에 따르면 3세에서 5세는 ‘항문기’라고 부릅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항문을 조절하는 방법, 즉 배변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든 짐승들이 그러하듯 사람들도 원할 때 배변을 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람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배변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훈련을 받는 시기, 항문을 조절해야 하는 훈련을 받는 시기가 바로 항문기입니다. 그래서 이때가 최초로 마음속 깊은 곳에 ‘…하면 안 돼.’라는 마음속 목소리가 내면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초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지요.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강박장애는 항문기에 고착된 신경증적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초자아와 초자아의 명령에 저항하는 본능적 욕망의 에너지가 서로 대립하면서 무의식 깊은 곳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강박장애라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 강박사고의 대부분은 ‘…해야만 해.’와 같은 규범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그 내용도 청결과 도덕, 안전 같은 기본적인 항문기의 훈련 내용과 연관되는 주제가 많습니다. 

강박장애는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해결 방법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시도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병리의 강박장애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지 또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지 이야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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