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를 둔 가정주부입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이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는데 아이가 생겨 헤어지지 못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부부싸움에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하거나, 도박을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저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해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소동이 많았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 덜한 편이기는 해요. 

문제는 저도 자꾸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겁니다. 별일이 아닌데 화가 나고 아이들한테 표출이 됩니다. 남편은 매번 저와 이야기하면 다툼이 늘어간다며 화내고 욕을 하고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부분이라고 제 탓만 합니다. 남편도 저를 이해하지 않고 저도 그런 제 자신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귀찮고 지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짜증도 많이 냅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많이 미안해지고 속상해서, 또 아이들이 불쌍해서 나 자신이 그저 사라지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버린 남편도 꼴도 보기 싫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살게 하는 건지, 이혼하는 것도 쉽지가 않더군요.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데리고 가서 키우면 되겠지 했는데, 요즘엔 지금처럼 감정 조절이 어려운 내가 그리고 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아이들을 잘 키워보는 것도 자신이 없어지네요. 

 

저는 지금 제 일을 하지 않고 남편 일을 돕고 있어요. 그마저도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집안 살림을 합니다. 운동을 다닐 때는 그래도 일이라도 하는 것 같아 괜찮았는데 그마저도 남편이 싫어해서 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남편은 오로지 집안일을 충실히 하기만을 바랍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통하지도 않고요.

일자리를 찾아 나가겠다니 그마저도 지금 하는 일에 아예 제가 없으면 안 되니 그 일이라도 하라는 식으로 붙잡아 두고 있습니다. 집에만 앉아 가끔 업무만을 보는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고 점점 내 삶이 없는 것 같아 불안하고 생각도 많아집니다. 내가 도리어 문제가 되어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들이 생기니 어떤 날은 사라지고 싶네요.

 

상담도 받았는데, 상담사 선생님은 저만 태도가 바뀌면 남편도 상담을 오지 않을까 하시며 제가 바뀌라는 말을 했습니다.  당연히 노력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바뀌지 않는데 제가 바뀌는 것은 한계가 있네요. 좀 변했다가도 다시 돌아가고,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그 분노는 정말 참아지지가 않아요. 저는 남편에게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결국 냉전 상황이 싫은 제가 먼저 미안하다 이해한다는 말로 그 답답한 시간을 줄이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니 저도 억울하고 힘이 드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런저런 말 할 사람도 많았는데, 이제는 없네요.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에요. 가장 엄마가 필요한 나이인데, 그냥 사라져 버리면 어떨까 마음을 다잡습니다. 누구 하나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에 필요하여 적어봅니다.

두서없는 하소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질문자님께서 절박한 심정으로 써내려가신 글을 보니,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네요. 힘내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신혼 초부터 남편분이 했던 행동 탓에 많이 힘드셨을 거 같습니다. 물리적, 신체적 폭력이 질문자님의 마음을 위축되게 하고, 이는 우울감으로 이어졌을 테고요. 남편분의 반복되는 폭력은 아내분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을 겁니다.

우울, 불안, 초조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흐리게 합니다. 예전에는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었던 이야기들도 마음 깊은 곳에 아프게 박히는 경우가 많아져요. 사소하게 여기던 일들 또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때문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투영하게 되기도 하지요. 

첫 시작은 남편분의 폭력적 행동이었지만, 그로 인해 질문자님의 마음 또한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남편을 자극하게 되고, 또 다툼으로 이어지게 될 겁니다. 즉,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분출하기 십상입니다. 서툴게 밖으로 분출된 감정은 다시 마음의 죄책감을 유발합니다. 이 또한 감정의 악순환이기도 합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먼저 질문자님의 마음을 잘 돌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상담을 받으셨던 상담사분의 말씀과도 일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 마음이 힘들면, 세상 모든 일들이 다 힘들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외부 자극들은 내가 마음대로 통제하기 힘든 경우가 훨씬 더 많잖아요. 운이 좋아서 남편이 마음을 고쳐먹거나, 혹은 주변 여건이 내 마음대로 흘러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거기 기대어 사는 삶이 그리 희망차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선 내가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숨 쉴 만한’ 시간과 공간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남편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많이 부담된다면 분리를 하여 다른 직장을 알아보거나, 아니면 일하는 시간을 조금 줄여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확보하고, 혹은 취미 생활등을 통해서 나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찾아나가시는 방향을 찾아보는 거지요. 

남편분과의 오랜 갈등과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 또한, 질문자님께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면 이전처럼 회피나 절망, 애먼 이들에게 터뜨리는 분노 외에 다른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니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우울과 절망감에 시달려오셨다면, 이에 대한 전문적 평가를 받아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글에서는 질문자님께서 가진 증상의 수준이 다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적인 우울감과 병으로써의 우울증이 삶에 주는 차이는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오랜 우울증은 식사, 수면, 활동을 극히 줄어들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나와 내 미래에 대한 관점을 부정적으로 바꾸어버립니다. 당연히도 삶을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의 순간순간에 찾을 수 있는 행복감도 모두 다 건너뛰어버리게 될 테고요. 그러니 병으로써의 우울증이 내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이를 치료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입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먼 곳에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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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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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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