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저는 여자 대학생이에요. 저는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했고 그 후로 쭉 당해 왔어요. 저는 학교에 적응하기도 남들보다 힘들었고 먹을 것밖에 몰랐기에 남들이 절 볼 때마다 '진짜 크다' '너무 크다' 소리를 자주 들었고, 그런 저를 보며 엄마는 한숨만 쉬었어요. 학년이 바뀔 때 선생님께서 임의적으로 자리를 정해주실 때 제 키와 비슷한 남자아이를 짝꿍으로 두셨어요. 그 아이는 절 본 첫날부터 돼지기름 냄새난다며 놀렸고,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 아이에게 주먹으로 맞았고, 대걸레에 얼굴을 파묻혀보고 쓰레기 더미를 머리에도 뿌려져 보고 돈도 뺏겼어요.

그나마 친했던 친구도 어느 순간 달라졌어요. 그 아이는 저에게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해라, 너희 엄마 돈을 훔쳐서 내놓아라 하며, 안 그러면 너희 집 가족 쫓아낼 거다, 죽일 거다. 하며 협박했고 저는 다 믿고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하다가 안 한다고 화내면 때리거나 자기 친구들 불러 욕하거나 학교에서는 같은 반 남자아이로 집에서는 오래 만난 친구로 괴롭힘과 폭력을 당해 왔고, 그때는 학교폭력을 몰랐을 때였으며 초등학생 때 부모님에게 말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네가 무슨 괴롭힘이냐, 니 덩치를 봐라 덩치값 좀 해라 라는 말로 돌아왔고 학교 가기 싫어서 울고 고집 피우면 오히려 머리를 맞았습니다.

저는 이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머리를 맞은 날은 하루 종일 울었고 커터칼로 손목을 그었고 죽고 싶어서 쉬는 시간마다 학교 제일 끝 층을 올라가 보고 집에 있던 너무나 작은 구슬들을 삼켜 보기도 했지요. 너무 작은 구슬이라 목에 걸리고 그런 일은 없어 다행이었지만,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컴퓨터만 하는 저에게 화만 내셨고 다른 애들처럼 뛰어놀지 않는다고 나가라고 머리를 때리셨지만 저는 절대 나가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맞벌이라 집에 저 혼자 대부분 시간을 지냈고, 나가도 나랑 놀 친구도 나랑 대화해 줄 사람도 없었거든요. 저와 대화를 해주는 건 오히려 게임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게 좋았고 점점 게임에 빠졌고 밤늦게까지 새벽까지 게임을 했어요.

저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르는 언니, 오빠들이 길을 걷던 저에게 와서 욕을 했고 성희롱을 당했던 때, 별의별 소문이 돌았고 모르는 아이들이 날 쳐다보는 게 무서웠고 뒤에서 수군대는 거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지냈고 조금씩 소문에 소문이 더해져 애써 모르는 척 슬프지 않은 척 가족들 앞에선 친구 있는 척하며 지내왔어요. 지나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잊히겠지 하며 잊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중학교 때도 괴롭힘을 당하니 부모님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 저에게 누구냐고 말했지만 저는 말할 수도 없었어요. 무서웠어요. 이미 그때는 부모님에게 가족에게 그 누구에게도 제 이야기는 하지 않은 후였어요. 아무도 못 믿었어요. 그냥 매일을 혼자 몰래 울었고 자해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무섭고 가족들이 나를 생각한다는 게 무섭고 나중에는 슬픈 것보다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왜 이제 와서 도와주려고 하는지 내 몸이 멍투성이였을 때는 내 덩치를 보라며 꾸짖었는데, 내가 말할 때는 도와주지 않았으면서 왜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는 이러는 건지 모든 게 화가 났고 부모님만 보면 성질났어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웃었고 집중도 안 되는 공부를 했고 나중에는 부모님 앞에서도 아무 일 없는 듯 그러고 살다 보니 괜찮아진 줄 알았어요. 그냥 가끔 울고 화도 나고 자해를 하고 지난 기억이 떠오르고 학교라는 단어만 나오기만 하면 위염에 걸릴 정도로 폭식을 하고 진정이 될 때까지 기억이 안 떠오를 때까지 먹다 보면 살겠다 싶어 그렇게 부모님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폭식하는 줄 모르게 지냈어요.

성인이 되고 나선 기억이 떠오를 때면 계속 술을 마셨고 과제를 한다고 새벽에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고 단지 그냥 나는 그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도움을 받고 싶었던 건데 내가 덩치가 작았어야 했을까. 그럼 도와줬을까 그냥 오순도순 잘 지내는 가족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를 보며 한숨 쉬는 부모님의 눈빛도 가족도 이제 무섭고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무섭고 학창 시절 아이들 마주치는 게 무섭고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걸까.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이 너무나 무거운데 진짜 뭐 하나가 내려앉은 것 마냥 무거운 돌을 둔 것 마냥 너무 무거운데 이게 나아지지가 않아 너무 무겁고 무거워서 너무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서 숨이 답답하고 턱턱 막히는 이 기분 너무 힘들고 힘들어서 여기서라도 털어봤어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이 슬픈 이야기의 시작은 따돌림이지만 사실 훨씬 더 이전 시점부터 슬픈 상황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일단 따돌림 얘기 먼저 시작해 볼게요.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고, 무리를 짓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중간 학년쯤에는 따돌림이 생기게 됩니다. 이 따돌림의 대상은 주로 구별하기 쉬운 특징을 가진 아이들이 되죠. 안타깝게도 따돌림의 특징이 되는 것들은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보통은 부모님이나 환경에 의해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남들과 구별되는 외형을 가졌거나, 질병이 있거나, 아니면 특이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이 시기에 따돌림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분도 고생하셨죠. 

 

이 따돌림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이마다 다릅니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극복할 수도 있고, 무언가를 잘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도 있고, 힘으로 극복하거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부모님이나 환경이 따돌림을 극복하는 방법에도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이 시기에 사교적인 성격이나 무언가를 잘하는 것 또는 힘은 노력이라기보다는 부모님에게서 받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역시 집안 분위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분의 학창 시절 따돌림이 시작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따돌림이 유지되고 고통받으셨던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님의 영향이 큽니다. 물론 부모님도 따돌림을 의도한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당시 부모님이 자녀에게까지 신경 쓰지 못할 만큼의 상황 속에서 살고 계셨을 것이고, 그래서 질문자 분이 학교에서 상처 받는 상황이 지속됐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경우 왜 스스로 체중을 조절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하시지만, 사실 그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체중 조절 역시 부모님의 도움이 필수이며, 따돌림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무기력감이 계속 커지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시도할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체형을 바꾸는 것 역시 따돌림을 당할 당시는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 성공하신 분들이 정말 대단한 거죠.

 

다행히 게임 속에서라도 부모님이나 현실 친구들이 주지 못하는 정서적 안정을 받으셨고, 이때 받은 안정이 질문자 분을 지켜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 속에 있는 도움이 되지 않는 부모님과 대비되며 부모님에 대한 분노는 더 커진 듯합니다. 어디서 전해 듣든 간에 부모님이 따돌림에 대해 도움을 주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그 도움에 대해 분노하셨으니까요. 

사람에 대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마음의 공허감을 위장의 포만감으로 잊으려 하는 거죠. 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을 무디게 해줘 정서적 고통을 줄여주죠.

하지만 포만감은 언젠가 허기짐으로 바뀌고, 술의 나른함은 불안함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마음의 공허감을 채워야 합니다. 마음의 공허감은 상담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채워갈 수 있고, 이 공허감이 채워지는 만큼 음식과 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누구도 스스로 결정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삶 속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그 결정을 통해서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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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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