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 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번데기에서 막 우화 중인 나비는 아주 연약합니다. 작은 번데기에서 나온 몸은 부드러워 약한 충격도 견딜 수 없으며, 날개도 완전히 펴지지 않아 날아서 도망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의 나비를 누군가가 건드리게 되면, 몸이 휘어버리거나 날개가 굽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보통 나비의 삶을 살 수 없게 되죠.’ 

학교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학폭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물론 사람과 나비는 완전히 다른 동물입니다. 사람의 성장과 발달은 각자 차이가 커서, 나비처럼 우화를 하는 시점도 각자 다르고, 허물을 벗는 횟수도 다릅니다.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집단생활을 하기에, 같은 학년에서 허물을 벗은 사람과 아직 번데기인 사람이 섞여서 자라게 됩니다. 그렇기에 먼저 허물을 벗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아프게 하고 괴롭히는 사건이 생깁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공격성을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자가 겪을 아픔을 예상하지 못하고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학폭 이후 피해자의 삶은 망가지게 됩니다. 친구라고 부르는, 잘 지내야 한다고 교육받은 존재가 가하는 폭력은, 모르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폭력과는 맥락과 결과가 다릅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친밀한 존재가 자신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학폭을 당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 역시 삶에 악영향을 줍니다. 피해자는, 피해자가 된 것이 자기 잘못이 아니지만 미움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자기 자신뿐이기에 스스로를 비난하며 힘든 시기를 견디고 그렇게 성인이 됩니다. 이런 극복 방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오히려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하고, 부당함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패턴으로 굳혀져 삶을 힘들게 만들곤 합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누군가는 학교폭력을 학교 생활 중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폭력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학교 폭력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어린 동물들은 서로를 물고 할퀴며 사냥을 연습합니다. 아직 미숙하기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사춘기에는 자신의 공격성, 분노, 짜증을 다루는 법을 잘 모르기에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그러니 폭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폭력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것은 곁에 있는 성인입니다. 상대방에게 휘두르는 주먹을 말로, 할 수 있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을 알려주고,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등은 모두 어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기에 학폭 피해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반드시 선생님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상처, 그리고 아쉬움 등이 나오게 됩니다. 

현재 20, 30대 성인의 선생님, 부모님 세대에서는 학폭은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생존과 경제 발전이 더 중요한 화두였었죠.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폭력이 용인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학생들 사이의 폭력에 대한 대처가 미숙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젊은 선생님, 부모님 세대에서 폭력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그다음 세대는 폭력을 더 잘 다루고, 더 안정적인 대처를 받으며 성장할 것입니다. 이렇게 세대가 변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폭에 대한 폭로는 당분간 지속될 것입니다. 늘 그렇듯 그동안 외면받고 있었던 중요한 주제가 사회가 성장하며 떠오르고, 사회를 성숙시키고, 조용히 사그라들 테니까요. 물론 사회만큼이나 피해자 역시 성장해야 합니다. 과거 연약했던 본인의 모습을 성인이 된 이후에도 믿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가해자의 사과는 이런 성장과 변화를 도와줍니다. 그렇기에 가해자의 사과는 필요합니다. 

 

자연에서 날개가 망가진 나비는 곧 죽습니다. 포식자들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몇 번이고 우화 할 수 있습니다. 날개가 망가진 나비가 우화 하여 새가 될 수도 있죠. 내가 얼마를 벌지는 내가 결정하기 어렵지만, 내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정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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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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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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