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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이제 그만 열심히 살고싶어요
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6.11 05:50

[정신의학신문 : 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저는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습니다. 공부는 물론이고, 친구들과 지내는 것, 부모님께 잘하는 것, 심지어 노는 것까지요. 실제로 남들과 비교했을 때, 거의 대부분 일을 잘 해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뭐든지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안 그러고 싶은데, 이미 제 몸은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게 됩니다. 쉬는 시간도 없이 혼자서 뭔가를 연습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거나 이렇게요.

억지로 멈추려고 해도 잘 멈춰지지 않아요.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져서 결국 뭔가를 다시 하게 됩니다.

이상한 건 제가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하는 와중에도 스스로 만족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다행이다'하는 생각 정도지, '내가 해냈어!'처럼 이런 성취감 같은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성공한 뒤에도 자책하고 걱정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하루에 수백 번씩 걱정이 꼬이고 결국에는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이제 그만 열심히 살고 싶어요. 어쩌면 좋을까요?

사진_픽셀

 

A) 오늘 하루도 슬픈 표정으로 열심히 달리고 계실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적절한 불안은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또, 불안은 사람에게 추가적인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사나운 동물을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무리를 짓고, 굴을 찾고, 밤에도 불을 끄지 않았죠. 무언가를 만들고, 찾고, 유지시키는 번거롭고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불안 때문이죠.

이렇게 불안은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강제하게 만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불안'이라는 에너지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생존뿐 아니라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좋지 않죠. 쉽게 불안을 느끼고, 그 강도도 강하다면 불안 자체가 짐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불안이 짐이 되면, 우리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쓰기 시작해요. 질문자 분처럼,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해소하는 한 가지 전략으로, '열심히 살기'를 선택합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경우도 있지만, 불안 같은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바로 이 '열심히 살기' 전략이에요.

예를 들어 5등 안에 들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5등 밖으로 밀렸을 때 자신이 느낄 부끄러움이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도 있습니다. 표면적인 목표는 '5등 안에 들기'로 같아 보이지만, 내부적인 목표는 완전히 다르죠.

 

과도한 불안의 원인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고 욕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한다면, 중요한 누군가가 나를 떠날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과도한 불안을 만드는 흔한 생각입니다.

혹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경우도 과도한 불안을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 분이 그만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_픽셀

간단한 방법을 소개해 드릴게요. 연습장을 펴고,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지, 생각을 순서대로, 한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중요한 것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다 적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조상신이 날 저주할 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빠짐없이 다 적어주세요. 그 다음에는, 그 생각 옆에 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숫자로 적으세요.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조상신이 날 저주할 거다' - 50% , 이런 식으로요.

그런 다음 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와,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씩 적어보는 거예요.

 

제가 환자분들과 함께 이 작업을 처음 할 때는,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도 못 적는 분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정도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있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오시게 되는 거죠.

이럴 때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요청하세요.

“난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조상신이 날 저주할 것 같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할 만한 이유가 있어?”

이렇게 내 생각-가능성-그 가능성이 실현될 이유/반대 이유를 적어 놓으면, 한 가지가 분명히 변화합니다. 바로 ‘내 생각이 일어날 가능성’이 변하게 되고, 보통은 가능성이 떨어지게 되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과도한 불안이 현실적인 수준의 불안으로 변하게 되죠.

 

우리는 늘 무언가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늘 옳은 것은 아니에요. 너무 오래된 자료이거나, 내가 논문이라고 믿었던 자료가 사실은 찌라시 수준의 자료이기도 해요.

이런 자료를 일일이 검토하면서 판단하기에는 세상은 늘 바쁘죠. 그래서 마음이 '과도한 불안'으로 이상신호를 보내면, 이런 식으로 간단히 내가 쓰는 자료를 검토하고, 수정해가면 돼요.

질문자 분, 딱 이것까지만 열심히 하시고, 그 뒤에는 원하는 일만 열심히 하게 되기를 바랄게요.  

 

 

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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