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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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읽는 찰나의 순간,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감정을 잘 다스리는 법을 알고 싶어 이 칼럼을 클릭했더니 별안간 여러분의 감정을 묻는 질문에 약간의 짜증이 묻어나나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어딘가 불편하고 당황스러움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신선한 질문이라 생각되어 흥미가 느껴지나요, 그것도 아니면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우리는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곤 합니다. 월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할라 초조한 마음으로 ‘지옥철’에 몸을 실으면 숨쉬기조차 힘든 인파 속에서 떠밀리듯 겨우 회사에 늦지 않고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어젯밤 늦게까지 작업한 프로젝트 파일이 제대로 저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방금 전 느꼈던 안도감은 사라지고 어느새 분노와 자책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조하고 짜증 나며 자책하는 날들이 연이어 이어진다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요? 왠지 모르게 우울감 또는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기력한 기분에 젖어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서와 얼굴 표정에 등에 관해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그의 저서 『감정의 본질』에서 감정과 기분의 차이점에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먼저, 감정(emotion)은 특정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정신 생리학적인 반응으로, 반응 시간이 몇 분이나 몇 초 이내로 비교적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반면에, 기분(mood)은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동안 유지될 만큼 지속적인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을 일으킨 외부 사건이나 자극 요인을 찾을 수 있는 반면, 어떤 기분이 지속될 때는 그런 기분에 젖어들게 된 명확한 이유나 요인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의 감정과 기분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면 한동안 저조한 기분이 지속될 수 있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에서는 누군가의 당연한 지적이나 가벼운 질책조차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때로는 강렬한 분노 폭발을 일으킬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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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나 그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감정이란 그야말로 외부 자극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으로, 인간의 감정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에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특정한 한두 가지 감정에 유독 자주 사로잡히거나 어떤 감정이 너무 강렬해서 그 감정의 발산이 부적절한 상황이나 대상에게로 향하게 될 때,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아닌 감정이 시키는 대로 휩쓸려 가는 감정의 하수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당연히 분노나 두려움, 슬픔이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외면하거나 억눌러야 하는 쓸모없는 감정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느껴지는 주기가 잦아지거나 그러한 감정이 너무 강렬하다면, 이러한 감정이 우리에게 보내는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요즘 들어 무기력감과 짜증이 심해졌다면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우울함과 무감동을 자주 느꼈다면 나의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나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요. 또 누군가에게 자꾸만 화가 난다면 그가 나의 경계나 권리를 무시한다는 경보음일 수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런데 이때 자신의 ‘화’를 너무 뜨거운 상태인 날것 그대로 표현한다면, 기대하는 관계의 개선이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가 어렵게 됩니다.

뜨거운 감정의 열기를 조금은 가라앉히고 ‘화’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시기와 상대에게 자신의 권리와 주장이 잘 전달될 수 있는 표현 방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중요한 시험에서 실패했을 때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나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나의 욕구를 살펴보며 보살피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감정들은 우리가 어떠한 목표나 행동을 추구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 삶의 숨겨진 가치나 의미를 발견하게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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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에게는 기쁨이나 행복처럼 긍정적인 감정은 물론 슬픔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역시 우리를 인간답게 해 주고 한층 성숙하게 해 주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떠한 감정이나 기분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흐르는 물이나 변화하는 날씨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바로 감정의 속성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우울한 기분이나 화나고 슬픈 감정에 너무 침잠해 있기보다 그 감정을 충분히 느껴 보고 그 감정이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어느 시인의 한 시구절처럼 우리에게 날마다 찾아오는 ‘귀한 손님’으로 손님 하나하나를 대한다면, 어느덧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함과 평온이 깃들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오늘 여러분의 집에는 어떤 손님이 찾아오셨나요.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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