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감정 조절과 식욕 조절… 뭔가 스스로 제어하는 게 잘 안 됩니다. 이성이 감정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만한 일에도 저는 쉽게 수치심과 분노를 느낍니다.

문제는, 느끼는 것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표현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타인이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 저도 무례하게 대응합니다. 우울해지면 그 감정에 사로잡혀서 타인에게도 다 티가 날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특히 가족들에게는 더 기분 안 좋은 티를 내고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어야 하고 반응이 아닌 선택을 해야 한다는데, 저는 반응이 바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식욕 또한 마찬가지로 적당히 먹는 게 없이 과하게 먹게 되어 시간 제약이라는 외부적 조건을 만들어 스스로 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못 지킬 때도 있지만요.

이렇게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에는 단순하게 이성적인 사람이 감정 조절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책에서는 부정적인 감정 또한 수용하고 인정하며, 자신의 결핍이나 숨겨진 욕구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다독여 주고, 날것 그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잘 다듬어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데… 정신의학 측면에서 감정 조절이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감정과 나를 분리하라.’, ‘콤플렉스를 건드려서 그런 거니 그 사람의 말을 공격이라 받아들이지 마라.’, ‘똑같이 받아치면 자기파괴적인 행동밖엔 안 된다.’와 같은 조언들을 보았는데, 머리로 잘 이해가 안 가니 행동으로 잘 실행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가 모두 낮은 편인 게 문제로 작용한 건지, 아니면 과거 겪어 온 환경(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수치심에 관한 트라우마 등)이 제 뇌구조와 습관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걸까요? 그도 아니면 예민한 기질 탓에 조절이 어려운 걸까요….

자극에 반응이 아닌 선택할 수 있는 방법과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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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평소 감정 조절이나 식욕 조절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얼굴 표정이나 행동으로 바로바로 표시가 나는 것이 고민이시군요.

아마도 여기서 사연자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감정 조절’의 대상은 부정적인 감정, 그중에서도 분노 표출이나 우울감과 같은 감정을 위주로 이야기하고 계신 듯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쁨이나 행복처럼 긍정적인 감정도 느끼지만, 슬픔이나 우울, 분노처럼 부정적인 감정도 느끼게 되죠. 

이때 부정적인 감정 또한 긍정적인 감정처럼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 마치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될 것처럼 생각하거나 어떻게 다루거나 소화해야 할지, 혹은 어떻게 표현하거나 표출해야 할지 몰라서 지나치게 억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반복되는 경우에, 점차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기 어려워지거나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거의 공통적인 것과 달리,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나 느껴지는 감정의 강도 그리고 반응하는 방식 등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몹시 화가 나거나 수치심이 느껴지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정이 크게 동요될 만한 상황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우리의 생물학적이고 신체적인 건강 상태가 다르듯이 우리 뇌의 구조적인 측면이나 작동하는 방식, 즉 뇌의 연결회로나 취약한 부분,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에 의해서도 감정 조절 능력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호르몬도 영향을 미치는데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거나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될 때, 남성호르몬이나 여성호르몬이 과도할 때 역시 인지를 왜곡시켜 불쾌감이나 분노를 증폭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죠.

더불어 성장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자주 욱하고 화를 잘 내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무의식중에 그러한 방식을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도 실제로 뇌에 영향을 끼쳐 감정 조절 능력이 약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 뇌 구조적 측면이나 호르몬, 생리학적 상태, 트라우마처럼 특수한 경험이 남긴 강렬한 감정의 흔적이나, 가정에서 양육된 방식, 가까운 이들과 반복해서 상호작용해 온 방식,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 등등 한 개인의 감정 조절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각기 다르고 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때문에 사연자님께서 감정 조절이 힘든 이유를 단적으로 명시하거나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사연자님께서 사연에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혀 주시지는 않았지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슬하에서 성장해 온 배경이나, 수치심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적어 주신 것을 보면 실제로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거나,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데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고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치심이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이 잘못됐다고 느낄 때 드는 감정’을 뜻합니다. 이러한 수치심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과도한 수치심은 견디기 힘든 감정으로, 분노와 공격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수치심을 견디기 힘들 때 타인을 공격하거나 격하게 반응함으로써 수치심을 전가하려는 것이지요. 사연자님께는 수치심에 관한 어떤 트라우마가 있으신가요. 그 감정을 끄집어내서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미처 해소되지 못한 수치심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고 느껴지신다면 그 감정을 꺼내어 바라보고 어떻게 소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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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나 강렬한 감정 반응을 절제하는 방법을 소개하오니, 실생활에서 적용하면서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 1단계: 지금,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를 통제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라.

- 2단계: 수치심이 분노로 변하는 경로를 역추적하여 그 시발점, 즉 자신이 경험한 수치스러운 생각과 감정에 도달해 보라. 

- 3단계: 자신이 분노를 통해 어떻게 일시적으로 수치심에서 벗어나는지 살펴보라.

- 4단계: 수치심-분노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 수치심을 되찾아라.

- 5단계: 수치심을 나타내는 핵심 문장 다섯 가지가 가지는 타당성에 도전하라.

- 6단계: 항상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예를 다해 대하라. 

- 7단계: 비판보다 칭찬을 하라.

- 8단계: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내라.

- 9단계: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가 자제력을 넘어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게 주의하라.

 

어떠신가요? 사연자님께서 다른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만한 일에도 쉽게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다고 하셨으니 다시금 사연자님께서 수치심과 분노가 느껴지는 상황이 오면 이번에는 그러한 감정에 집중함으로써 왜 수치심이 자극을 받는 건지, 그때 드는 생각이나 핵심 신념에 어떠한 오류는 없는지 탐색하고 기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치심이나 분노를 유발한 상대에게 즉각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 사연자님께서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격렬한 감정 반응을 불러오는 순간에는 분명 그 감정이 사연자님의 욕구나 가치처럼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화’라는 강한 감정이 일어났다면, 누군가 나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자기존중감을 훼손당했다는 신호일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타인과 나의 경계를 지키고 싶다.’, ‘타인으로부터 자기존중감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다.’와 같은 욕구나 바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이나 욕구를 감정이 흥분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발산하다 보면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거나 상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강렬한 감정을 조금 식힌 다음 차분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또 한 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되면 우리 뇌의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간의 상호작용에 오류가 생기고, 전전두피질에 의한 정서 조절이 어려워지면 공포 반응이나 우울, 불안과 같은 감정을 더 자주 느끼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만약 이미 이러한 상호작용에 오류가 생긴 상태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잘 인식하고 이를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는 행위는 바로 ‘정서 명명(affect labeling)’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뇌에서 편도체 반응이 감소하고 전전두엽 활동이 증가하는 것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정서 명명을 통해 뇌에서의 반응에 변화가 생기고, 감정을 좀 더 잘 조절하도록 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그러니 사연자님께서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거나 상호작용을 할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고 이름을 붙여 주는 ‘정서 명명’을 시도해 봄으로써 감정 조절 능력을 키워 보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은 이성의 적이고 우리의 선택이나 행동을 이성적으로 하게 하는 데 방해물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결정하라.”는 조언을 많이 하지만, 사실 인간이 어떠한 사실을 판단하거나 결정할 때 감정은 결정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감정이 개입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왜 그럴까요? 보통 우리가 쇼핑을 하러 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아무리 예쁜 옷이 눈앞에 많이 있어도 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으면 그날은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자꾸만 먹을 것에 손이 가는 행동도 어떤 감정에 뒤따른 결과일 수가 있는 것이죠.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에 손상이 생기면 감정뿐만 아니라 이성적 판단도 흐려진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될 만큼,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속성이자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공포를 느끼면 우리 몸이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근육에 많은 혈액을 공급해 도망갈 준비를 하거나, 더러운 것을 보면 혐오감이 들어 피하게 하는 등 이성보다 훨씬 즉각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게 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죠.

그러니 감정과 이성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관점입니다. 이성과 감정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된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감정이 사연자님께 전해 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사연자님 자신은 물론 사연자님의 감정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시간을 통해 감정 조절 능력을 점차 키워 나가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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