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내 감정,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기쁨, 슬픔, 분노, 불안, 놀라움 등의 다양한 감정은 개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신호와 같다. 또, 다양한 감정 표현의 습득을 통해 상대와의 관계가 더욱 얽혀 들어가게 되며, '무리 중의 하나'로 사회화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강렬한 부정적 감정은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동을 유발하며,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 관계를 어긋나게 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강력 범죄 중 강렬하고 충동적인 감정이 동반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로 경찰청이 발표한 <2016 통계연보>에 따르면 강력범죄(상해나 폭행, 폭력 범죄와 방화 등) 40만 8,036건 중 충동적이고 강렬한 ‘분노 범죄’가 35%(14만 5,754건)에 달했다고 한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방법은 '참는 것'이다. 감정을 마음 상자 깊은 곳에 밀어 놓고, 보이지도 않도록 가린 다음 상자 뚜껑을 닫아버린다. 당장 내 감정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해결된 것만 같기도 하다. 물론 사소한 감정들은 덮어놓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 부스러기가 쌓여갈수록 마음 상자 안에 더는 숨길 공간이 없어지고, 결국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감정은 마음 상자 전체를 화염에 휩싸이게 할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또,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일단 덮어놓는 태도는 감정에 대한 회피를 습관적으로 만든다. 그러다 보면 작은 감정에도 쉽게 휘둘리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_픽사베이


감정은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에는 두렵다. 그러다 보니 어찌할 바 모르고 감정에 휘둘리는 행동(emotion-driven behavior)이 이어진다.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마음챙김(mindfulness)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챙김은 동양의 선(禪) 사상과 명상의 핵심 요소들을 서양의 심리학에 통합시켰고, 여러 정신질환, 심리적 스트레스 등에 큰 효과가 있음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마음챙김에서는 인지행동치료, 변증법적 행동치료처럼 감정을 변화시키거나 조절하려는 노력보다는, 감정을 객관화하여 거리를 두고 감정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는 데 주안점을 둔다. 우울, 분노, 불안과 같은 감정을 없애야 할 것, 변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는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견해와는 다소 다른 접근이라 할 수 있겠다. 

 

♦ 하나, 감정은 마음에 일어난 현상이다 : 감정에 거리 두기 (distancing)

감정으로 인해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면, 우선 감정에 조금 거리를 두도록 하자. 감정을 객관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이다. 거리를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점수를 매겨보는 것이다. 그 결과를 수첩이나 스마트 폰 메모에 기록하는 것도 좋겠다.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쉽고도 훌륭한 방법 중 하나가 기록하기(recording)이다. 

감정은 마음에 일어난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하늘이라는 공간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햇볕이 나왔다 들어가고, 밤에는 별이 반짝였다 이내 사라진다. 하늘 안에 구름, 해, 별, 비바람 등이 나타나지만,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리고, 여러 현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해서 하늘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나타났을 때 기분이 나빠지고, 몸이 경직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지만 결국 이것은 스쳐 지나가는 현상 중 하나이다. 감정을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화가 난다'는 감정의 표현이 아닌, '내가 화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내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언제든 '놓아버리고 보내줄 수' 있게 된다.

또 하나, 자신이 인식한 감정에 대해서 비판단적 관찰이 필요하다. 좋다, 나쁘다, 두렵다, 무섭다 라는 개념이 자신의 감정을 붙들고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감정이 인식되는 순간, 이를 붙잡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고 지켜볼 수 있다면 감정은 저절로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사진_픽셀


♦ 둘, 감정의 파도를 타자! : 감정의 은유화

감정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다면, 인식된 감정을 시각화(visualizaiton) 하는 것 또한 감정을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을 특정 사물로 은유화 할 수 있다면 감정의 흐름과 변화를 더욱 잘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몸에 힘을 빼고, 몸을 조이는 것들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보자. 깊은 심호흡과 함께 눈을 감고 시각화된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이다. 다음 세 가지의 장면 외에도 수조를 더럽힌 모래들이 시간이 지나며 가라앉는 장면, 낙엽이 높은 곳에서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 등 다양한 상황을 활용해볼 수 있다. 


1) 시냇물에 흘러오는 낙엽에 감정을 띄워 보내기 

자신이 숲 속 시냇가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자. 상류에서 흘러온 냇물을 따라 나뭇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상상해 보자. 자신의 감정이 인식되는 순간, 흘러오는 나뭇잎에 감정을 고스란히 띄워 보내는 것이다. 가만히 호흡에 집중하며 감정을 실은 나뭇잎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모습을 온전히 상상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에서의 끓어오르던 감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2) 마음의 파도를 타기  

높은 파도는 결국 잔잔한 물결로 수렴한다. 우리 인간의 감정은 굽이치는 파도와 비슷한 점이 많다. 급격한 감정의 오르막은 자신을 힘들게 하지만, 결국 그 감정이 내내 유지되었던 적이 있는가? 감정과 싸우려다 휩쓸릴 것인가, 감정의 파도를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릴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경험 많은 서퍼는 결코 파도와 싸우지 않는다. 그저 파도에 순응하며 파도를 탈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인식되는 순간 기세 좋은 파도가 부서져, 거품으로 화하는 것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3) 흘러가는 구름으로 비유하기 

감정을 흘러가는 구름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푸른 하늘에 움직이는 구름은 언뜻 보면 변하지 않고, 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구름이 조금씩 옆으로 움직여 시야에서 벗어남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 언젠가는 끝나 나를 벗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호흡에 충분히 집중하며,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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