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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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월요일이라면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짜증이나 귀찮음, 무기력 혹은 불안을 느끼셨을 수도 있고, 여행길에 오르는 날이라면 기쁨과 행복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감정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바뀝니다. 

특히 여러 사람과 함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상황에서는 내 감정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는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의 기분이 어떤지, 일터에서는 상사나 동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시시때때로 잘 파악하여 적절한 반응과 행동을 해야 하지요. 가령 상사가 윗분으로부터 부정적 피드백을 받고 기분이 안 좋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지금은 업무 보고를 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상사의 기분이 조금 누그러질 때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감정은 우리에게 위험이나 안전에 대한 신호로 작용하며, 행동을 취하거나 하지 않도록 조절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감정은 진화론적 측면에서 생존에 중요한 기능을 하며, 모든 문화권에 있어서 보편적인 감정이 존재한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정서의 보편성 가설(Universality Hypothesis)에서는 정서 표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Darwin은 <인간과 동물의 정서 표현(The Expression of Emotions in Man and Animals, 1892)>에서 비글호 항해 중 만난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의 얼굴 표정 분석을 통해 분노, 기쁨, 공포 등의 정서 표현이 세계적으로 공통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Ekman, Sorenson, Friesen(1969)과 Ekman, Friesen의 연구(1971)에서는 미국, 브라질, 일본, 보르네오와 뉴기니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얼굴 표정을 제시하고 상응하는 정서 단어를 고르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특정 표정에 대해 같은 정서 단어를 선택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통해 문화권에 관계없이 특정 표정은 특정 정서와 연합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밖에도 Izard와 Malatesta(1987), Wallbott와 Scherer(1988) 등이 비교문화연구를 통해 정서의 보편성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들을 제시하였습니다. 

물론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렇게 공통적인 정서 표현과 인식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보편성을 통한 설명과 함께 문화적, 환경적 학습에 의한 영향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학습이나 발달과정, 정신장애의 발현 과정에 대해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 요인,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에 대한 갑론을박이 늘 팽팽하게 맞서는 것처럼 말이지요.

선천적인 부분과 후천적 요인 중 어느 하나만을 통해서 감정 표현이나 인식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뇌에서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중추 기관을 살펴보는 것은 감정이 어떻게 느껴지고, 조절되는지를 파악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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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뇌’로 알려진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는 감정 변화와 관련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대뇌 변연계는 스트레스 통제 기능을 맡는 시상하부, 위험 감지 및 공포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 집중과 주의력을 관장하는 대상피질,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편도체는 불안, 공포 등의 부정적 정서를 느끼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전전두피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정을 조절합니다. 전전두피질은 자기인식, 계획, 억제, 문제해결, 의사결정과 같은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며 동정심, 수치심과 같은 사회적 관여, 공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또한 변연계 도파민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안이나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는 우측 전전두 피질이, 행복이나 기쁨, 열정 등의 긍정적 정서를 느낄 때는 좌측 전전두피질이 활발해집니다. 그런데 만약 지속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면 전전두피질과 편도체 간의 상호작용에 오류가 생기고, 전전두피질에 의한 정서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공포 반응, 불안, 우울 등을 계속 경험하게 됩니다. 심할 경우 기분장애나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정신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정적 정서에 의해 편도체와 전전두피질 사이의 연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미 그 상호작용에 오류가 발생한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답은 “No”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정서 명명(affect labeling)’을 통해서 말이지요. 미국 UCLA의 심리학자 매튜 리버만(Mathew Lieberman) 교수는 연구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이 부정적 감정을 단어로 표현할 때 편도체 반응이 감소하고 전전두엽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이는 감정을 적절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뇌에서의 반응이 달라지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슬플 때 “지금 나는 슬프다.”, 화가 날 때 “이건 화나는 감정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직접적으로 감정 단어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일기나 에세이를 통해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명상을 하면서 내면의 깊은 감정을 천천히 살펴보고 온전히 느끼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렇게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오늘부터 ‘정서 명명’을 연습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소중한 나의 하루와 느끼는 뇌가 조금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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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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