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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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오늘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요? 기쁨인가요? 아니면 슬픔인가요? 어쩌면 어떤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숨 가쁜 하루를 보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은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뜻합니다. 감정은 처음에는 단순히 ‘쾌(좋다)’와 ‘불쾌(나쁘다)’로 시작해서 점차 분화하고 발달해 갑니다. 생후 일 년 정도가 된 아이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기쁨과 슬픔, 혐오와 공포, 놀람과 분노 등 기본 감정을 느끼게 되며, 차츰 양육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및 경험을 통해 세분화된 감정을 발달시켜 나갑니다.  

생애 초기, 큰 갈래를 이루는 여섯 가지 기본 감정은 죄책감, 절망감, 외로움, 불안감, 두려움, 질투, 실망, 당황, 지루함, 안도감, 사랑, 평온함, 즐거움, 어색함 등 20여 개의 섬세한 감정의 결로 분화해서 인간은 그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단독으로 인식될 때도 있지만, 이중, 삼중, 더 많은 감정의 결들이 합쳐져서 복합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동안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어떤 감정들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섬세한 감정의 결들은 저절로 분화하거나 발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잘 발달되고 인식되려면, 지금까지 그러한 감정을 느낄 만한 다양한 경험과 관계의 역사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상대로부터 충분히 수용받는 경험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만약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 상대로부터 충분히 수용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고, 스스로 감정을 억압하는 일이 빈번하다면,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감정을 억압하는 만큼 자기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르게 되죠.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감정을 단순히 ‘쾌’ 혹은 ‘불쾌’와 같이 뭉뚱그려서 인식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을 뭉뚱그려서 인식하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울과 불안은 여러 감정이 합쳐진 복합 감정입니다. 우울은 슬픔, 죄책감, 외로움, 절망감, 분노와 같은 감정이, 불안은 두려움, 분노, 슬픔, 당황과 같은 감정이 우리 마음속에서 잘 소화되거나 배출되지 못하고 헝클어진 채 방치된 감정의 실타래로 볼 수 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울과 불안이라는 방치된 실타래가 되지 않도록 또는 이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갈래는 물론, 우울과 불안을 잘 이해하고 관리해 나가야 합니다. 우울과 불안을 잘 다루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감정이 너무 강렬하거나 혹은 장기화될 경우,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면서 일상을 무너뜨리는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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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정신질환이자, 비슷한 듯 다른 감정인 우울과 불안. 우리가 이런 감정을 잘 인식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울과 불안은 그 증상부터 좀 다릅니다. 우울은 우울한 기분이나 무기력감, 반추 혹은 자살 사고, 수면이나 식욕 문제 등의 증상을 보입니다. 반면 불안은 가슴 두근거림이나 호흡 곤란, 긴장감과 민감성, 과도한 걱정이나 강박적 사고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때 피로감이나 초조함, 수면 혹은 집중력 문제는 우울과 불안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은 각각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이나 신경전달물질도 다릅니다. 우울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결핍과 관련이 있는데요, 이들 물질은 주로 행복감이나 주의력, 쾌락 등을 느끼게 해 주는 호르몬입니다. 그리고 불안은 코르티솔, GABA(감마 아미노부티르산),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등이 관련됩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이러한 신경전달물질들이 적정한 수준으로 분비 및 유지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분들의 경우 이런 물질들이 불균형한 상태가 되므로, 필요한 경우 적절한 약물치료가 이루어집니다. 이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혹은 그 하위 유형에 따라 처방되는 약물의 종류가 다르므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죠.

그런데 우울함과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울은 과거에, 불안은 미래로 시선이 향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은 과거에 잘 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후회나 자책감이, 불안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의 감정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불안이 우울을, 우울이 불안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처럼, 우울과 불안의 관계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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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울과 불안은 일부 비슷한 증상과 관여하는 호르몬, 심리치료나 상담 기법에서도 중복되는 측면들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감정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는 순환적인 흐름과 영속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우울과 불안이 함께 나타나는 공병률은 약 50~60%이며, 학자에 따라 75%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죠. 

이처럼 우울과 불안은 무엇보다 현재의 심리 상태가 불편하고 불만족스럽다는 측면에서, 즉 ‘불쾌’한 느낌이라는 점에서 종종 구분하기가 어렵게 느껴지고, 무척이나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것에 얼마나 인색하고 서툴렀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상황이 그러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슬픈 마음이 들거나 분노가 치솟는 것은 전혀 잘못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순간 느껴지는 나의 감정을 애써 꾹꾹 눌러 담거나 외면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느껴 보세요. 고요히 바라봐 주세요.

비록 조금 못나 보이는 감정일지라도 서둘러 감추거나 쫓아 보내지 않고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의 실타래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도 좋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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