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작은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반려견을 쓰다듬는 척하면서 실제로 만져 주지는 않는 ‘블루투스 터치’입니다. 주인들의 사랑과 부드러운 손길을 기대했던 반려견은 손이 가까이 오기는 하는데 닿지는 않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강아지들은 주인에게 호소하듯 몸이나 머리를 주인에게 갖다 대거나 앞발로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서 자기를 쓰다듬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반려견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와 유사한 실험이 일찍이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Frederick Harlow)에 의해 1950년대에 진행되었습니다. 원숭이 애착 실험으로 유명한 이 실험에서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원숭이들이 먹이를 주는 철사 인형과 먹이를 주지 않지만 포근한 감촉을 주는 천 인형 중 무엇을 선택하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새끼 원숭이들이 먹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온기를 제공하는 천 인형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윤리적 측면에서 비판받았지만, 물질적 보상과 정서적 애착 중 후자가 더 중요할 수 있으며, 생애 초기 정서적 연결과 물리적 접촉이 애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을 보여 주었습니다.

블루투스 터치 역시 반려견 입장에서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원숭이 실험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연결과 상호작용, 정서적 교류에 대한 욕구를 잘 보여줍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는 사람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이어진 거리 두기와 격리로 외로움과 우울증,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람들과의 물리적, 정서적 접촉이 줄어들 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을 때,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외로움이 심해지면 우울증을 비롯한 심리적 문제와 면역력 저하, 뇌졸중, 영양 불균형, 고혈압, 당뇨병 등 다양한 신체적 질병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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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우울증은 우리 뇌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미국 MIT의 레베카 색스(Rebecca Saxe) 교수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금식한 사람이 음식 사진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된 사람이 사람들이 웃으며 어울리는 사진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동일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중뇌 흑질(substantia nigra)이라는 이 영역은 근육 활동 통제 및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합성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위에서 도파민 생산을 담당하는 세포가 다량 상실되면 파킨슨병의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실험에서 음식이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갈망이 클수록 흑질이 많이 활성화되었으며, 평소 외로움을 오랫동안 느꼈던 사람들의 경우,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통해 중뇌 흑질이 다양한 욕구에 관여하는 영역이며, 사회적 관계 욕구가 배고픔과 같은 생리적 욕구와 마찬가지로 꼭 충족되어야 하는 중요한 욕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흑질이 도파민 합성에 관여한다는 점을 통해 외로움과 깊은 관계를 갖는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도파민 부족과 관련된 뇌의 기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외로움과 우울증은 인지 기능 및 기억력과도 연결됩니다. 선행연구를 통해 외로움과 우울증은 인지 기능 저하 및 알츠하이머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외로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혈관 수축과 심박수 증가로 질병의 위험성을 높입니다. 미국 오클랜드의 의료기관인 카이저 퍼머넌트 연구진들은 50세 이상 미국 성인 1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2년간의 추적연구를 통해 우울증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경미한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18%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처럼 외로움과 우울증이 뇌의 변화와 함께 심리적, 신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만큼 외로움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이 도움이 될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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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기  

다양한 모임이나 취미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거나 가까운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며 연결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처음부터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여유와 현실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혹은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을 기르는 것도 좋습니다. 단, 반려동물이나 식물의 경우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2.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기

외로움(loneliness)와 고독(solitude)은 매우 다릅니다. 철학자 틸리히(Tillich)는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 아닌,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혼자 있는 시간에 명상, 산책, 사색, 뜨개질, 악기 연주 등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3. 이타적 활동하기 

자신에게만 향했던 초점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로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요? 도움이 필요한 친구나 가족, 이웃을 위한 일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과 삶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손님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통해 연결감을 느낄 때, 외로움은 어느새 고독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우리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독한 삶을 응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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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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