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현재 열아홉 살인 한 여학생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조금 특별한 사람’으로 불립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제가 좋게는 ‘유별나다’고 하고, 안 좋게는 ‘눈치 없고 나댄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요. 예를 들어, 애들은 교장실에 가기 싫어하는데 저는 교장실에 가서 책을 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든가, 면접을 보고 있는데 뒤에 있는 책들이 보고 싶으면 “면접 끝나고 저 책들 봐도 돼요?”라고 스스럼없이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솔직히 ‘유별난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범하지 않은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친구들이 저를 외면하거나 안 좋은 소문도 내고… 그래서 학교생활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나 교수님, 상담사님과 같은 어른들이 또래 애들보다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제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 주고 옆에 있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한 친구들보다 친한 어른들이 더 많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친구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자기를 괴롭힌 가해자’ 같다고요.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고, 나댔었나?’ 싶고, ‘말도 조리 있게 못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또래 애들을 다룰 용기가 안 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들을 사귀지 않았습니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이 끝나 가는 과정에서 저는 대학에 붙었는데, 대학교 운동회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한지도 2년이나 지났더군요. 저를 상담해 주시는 상담사 선생님께서 저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인지적인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또래 애들은 보통 감정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지적인 사람이기에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진지했을 거고, 책을 많이 읽고 심리학을 좋아하기에 애들이 저와 이야기할 때 지루했을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이나 교수님, 상담사와 말이 더 잘 통하고, 쉽게 정을 줄 수 있었던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많은 수를 썼습니다. 친구들이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기도 하고, 눈치도 챙겨 보고, 가끔은 내키지 않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구가 해 달라는 것을 다 해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에게 불안감만 주었고, 그들은 더욱 저에게 뭐라고만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지쳤습니다. 대학교에 가서도 저는 친구들을 사귀지 않을 것이고, 교수님과만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삶이 제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잖아요. 한 상담사 분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평범함의 의미는 무엇이니?” 저는 대답했습니다. “적어도 남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단계요.”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고독함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튀는 행동, 유별남 때문에 저의 기본적인 욕구를 억압하고 있으며, 결국 남들과 소통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독함을 받아들이고 저만의 길을 가야 할까요, 아니면 친구들을 사귀면서 함께 활동해야 할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의 사연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열아홉 살의 여학생으로 친구들과의 관계나 사연자님의 특성이나 성격, 성향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사연자님에 대해 좋게는 ‘유별나다’고 하고, 안 좋게는 ‘눈치가 없다’는 평판을 내리시는 듯합니다. 

그런데 사연자님은 그러한 사연자님의 특성과 관련해 앞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나, 지금처럼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면서 살아야 할지, 튀지 않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동하면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조금 유별나다고 해서 이상하다거나 배척해야 할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소 ‘보편적’이라거나 여러 사회적 상황에서 통용되는 ‘무난한 반응’이나 ‘상식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그 스펙트럼 안에서 행동하는 것이 좀 더 자신에게 안전하다거나 유리하고, 또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좀 솔직하지 못하다거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그 사람이 비겁하다거나 솔직하지 못해서 혹은 모자라다거나 평범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사연에는 사람들이 사연자님을 바라보는 시선인 ‘유별나다’, ‘눈치 없고 나댄다’는 것 외에 사연자님을 설명해 주거나 이해할 만한 단서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동안 가정이나 학교에서 사연자님께서 어떻게 생활해 오셨는지, 다른 성격적인 면이나 성향은 어떠신지, 관심사나 욕구는 무엇인지 등 사연자님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부족해 상담 가능한 내용에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연자님께서 기술해 주신 내용 중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사항을 중점적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사연자님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사연자님을 ‘눈치 없다’고 여긴다는 부분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또 사연자님께서는 ‘평범하지 않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사연자님을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있으시네요. 그리고 교수님이나 상담사처럼 어른들이 또래 친구들보다 좋은데, 그 이유가 ‘그분들은 사연자님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 주고 옆에 있어 주기 때문’이라는 점 등입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제가 드리는 설명이 조금 아프게 들리더라도 결코 사연자님을 비난하거나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첫 번째로 ‘사연자님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말씀하시는 데서 약간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중심성’이란, 남을 의식하지 않고, 모든 정신 활동이나 행동을 자기 위주로 행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자아를 남이나 외부 세계로부터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해하고 판단하려고 하는 사고 형태를 뜻합니다. 몰론 항상 그런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분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사연자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일상에서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이시는 듯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여러 가지 요인들을 고려해서 해야 할 말이나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모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나 처지가 난처해지지 않도록, 또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행동하기 때문에,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사연자님에 대해 ‘눈치 없고, 나댄다’고 평가를 내렸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행동’이 혹시 주변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 한번 숙고해 보셨으면 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같은 맥락에서 교수님이나 상담사처럼 어른들이 또래 친구보다 좋은 이유가 ‘사연자님께서 어떤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 주고 옆에 있어 주기 때문’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관계가 철저한 이익 관계에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에는 어느 정도 ‘Give and Take’(주고받는)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하나를 준 만큼 나도 당신에게 하나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내가 당신에게 마음을 써 준 만큼 나도 당신에게 공감받기를 원하고, 내가 당신에게 돈과 시간을 내준 만큼 때로는 당신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이 주고받기의 원리가 그런대로 균형을 이룰 때 양쪽 다 만족감을 느끼며 관계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모두 이해해 주고 항상 옆에 있어 줄 어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나 친구들 간의 또래 관계는 그런 식으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행동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끔하게 충고나 질책도 받고,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떠나가기도 하는 것이 바로 현실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받을지 모를 상처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갈 때 유독 나와 성향이 맞거나, 나를 정말로 잘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상대의 모습은 무척 이상적이고, 다소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에서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나 인간관계에 대한 현실적인 재정립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서는 ‘평범하지 않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사연자님을 괴롭힌다.’고 여기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정말 평범한 것은 별로고, 평범하지 않은 게 좋은 걸까요? 많은 분들이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만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분들에게 있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다른 사람도 나처럼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은 저마다 가치가 있고, 독특성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평범한 존재인 만큼 사람들도 평범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인 만큼 다른 사람들도 특별한 존재라고 인정할 줄 아는 것이죠. 평범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도 자기만의 히스토리와 보석을 조용히 가슴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숨겨진 보석을 자신의 인생에서 어떻게 빛나게 펼쳐 보일지는 사람마다 다르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평범하다’는 것을, ‘뛰어나지 않다.’거나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뛰어나거나 개성이 있거나 독특하기 때문에 가치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연자님의 ‘평범하지 않은 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신념에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평범함을 거부하고, 독특하고 유별난 방향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면에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와 같은 우월감, 인정 욕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말이죠.

또 유별나거나 독특한 사람도 사람들과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두 가치가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님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유별나거나 독특해도, 그래서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맺어 나갈 수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즉, 관계란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는데, 상대를 잘 이해하려면 그 이전에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이죠. 사연자님의 가치관과 바람, 생각, 감정, 욕구, 두려움, 욕망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와 상대의 가치관, 생각, 일상, 감정, 경험 등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나의 세계도 더욱 확장되고 깊어지며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인간은 자신의 고유성, 개별성을 지켜나가면서도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관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한자어도,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뜻인 것을 보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28년 전에 썼던 『정치학』에서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단락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인간은 그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본성에 있어서 사회적이 아닌 개체는 하찮은 존재이거나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존재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개체보다 우위에 있는 어떤 것이다.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없거나 혹은 공동생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한, 그래서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짐승이거나 신이다.”

 

어떠신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공감이 가시나요? 이 사회는 누구든지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고, 필요한 경우 서로 협력하거나 도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대화한 지 2년이 지났고, 눈물이 흘렀다는 사연자님의 이야기에서 사연자님의 외로움과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친구들을 사귀지 않겠다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도 젊으십니다. 또 사연자님 역시 홀로 외떨어져서는 온전히 살아가기 힘든 ‘사회적 동물’입니다.  

앞으로 대학에 입학하면 고등학교 때보다 더 다양하고 멋진 분들을 만나 볼 기회가 있으실 겁니다. 스스로 먼저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활짝 오픈한다면 충분히 좋은 인연들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연자님의 내면세계도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며 좀 더 개성 있고, 성숙한 사람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의 마음이 평안을 찾는 가운데 고립된 유별남이 아니라 함께하는 개성 있는 사람으로서 더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저희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전체기사 보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